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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술 Sep 09. 2020

술과 탄산

술 맛과 풍미를 돋구는 공기와 탄산

술 맛과 풍미를 돋구는 공기와 탄산 
 
술과 탄산
 
청년기에 내가 즐겨 가던 대학로 맥주집은 두 곳이 있었다.
 
그 중 한 곳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전면을 차지하고 있던 집이었다. 이 곳의 맥주는 20L 케그에서 잔이나 피처에 따라주는 맥주가 맛있는 곳이었는데, 이 맥주의 비법을 알게 되면 절대로 피처 주문은 하지 않게 된다. 비법인 즉슨 탄산가스를 맥주에 얼마나 넣고 골고루 넣느냐? 하는 기술인데, 아직도 그만한 기술자를 만나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힌 기술력이었다. 한 여름 탄산이 톡톡 터지는 시원한 맥주 한모금의 마력에 김이 빠질까 싶어 쭈욱 들이킬 수 밖에 없는 그 상큼하고 쌉싸레한 맛을 피처에서 덜어 김 빠지게 마실 수는 없지 않겠는가?
 
글로벌한 행보의 애주가라면 꼭 한 번은 가봐야지 마음 먹는 부커앤닥스(BOOKER AND DAX)는 뉴욕 차이나타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찾기가 쉽지 않아 초행의 방문자들은 지나치기 십상이라는 이 바가 애주가들의 명소가 된 이유가 뭘까?


이 바의 칼테일 제조자인 데이브 아놀드 때문이다. 아놀드의 칵테일은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제조되는 칵테일이다. 손님이 원하는 맛과 알콜 농도를 정교한 계산과 첨가물로 표준화 해낸다. 대부분 세가지 정도의 첨가물을 사용하는데 유화제, 점증제, 청징제가 그것이다. 대부분의 바에서는 텀블러를 얼음에 채우고 보드카와 탄산수를 넣고 흔들어 잔에 따른다. 하지만 부커앤닥스에서는 먼저 손님이 원하는 도수를 묻고, 희석 비율을 계산한 뒤 정량의 얼음과 소다수, 보드카를 넣고 증류수로 불순물을 제거한 라임을 추가한 뒤 탄산을 집어 넣는다. 술 맛 나는 조합이다. 과학적인 칵테일을 맛 보기 전에 맥주 한 잔을 시켜 한 모금 넘겨보면 그동안 마셨던 맥주가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날 것이다. 역시 탄산의 맞춤이 비결이다. 보태서 온도까지.
 
톡 쏘는 상쾌한 청량음료는 사이다와 콜라 뿐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해졌다. 탄산수는 물론 음료와 샴페인이 대중화 된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관능적으로 살균막걸리와 생막걸리를 구분하는 방법은 탄산 함유의 여부였다. 살균막걸리는 탄산이 없어 톡 쏘는 맛이 없고, 생막걸리는 탄산이 뽀글뽀글해 톡 쏘는 청량감이 있었다. 헌데 요즘은 살균막걸리와 생막걸리를 톡 쏘는 맛으로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살균막걸리 병입 과정에서 탄산을 주입하기 때문이다. 살균막걸리인데도 콜라처럼 거품물고 넘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술과 공기 
 
일본 기린맥주 시음장에서 가이드는 캔 맥주 한 캔을 유리컵에 정확히 한 컵 따르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기린맥주 광고에서 볼 수 있는 거품이 가득한 맥주컵을 완성한다. 캔과 컵 사이의 거리를 30cm정도 두고 낙차를 이용해 따라서 거품을 만드는 간단한 방법이다. 맥주 사이에 공기층이 얼머나 골고루 생기느냐가 관건이다. 목넘김이 부드럽고 상큼하다. 맥주 거품이 생겨 맛이 싱거워질 것을 고려해서 잔을 기울여 따르는 보통의 술 따르는 방법과 전혀 다른 방법이다. 찬 맥주잔에 맥주를 높은 곳에서 천천히(이 부분이 중요하다) 따라 마셔보라. 잔을 기울여 마시는 맥주보다 그 맛이 한결 부드럽고 풍미가 좋아질터이니. 술 분자 사이 사이에 공기 함유층을 고루 분포하는 비결이다.
 
와인은 디켄팅을 해서 마시면, 더 좋은 맛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디켄팅이란 디켄터로 불리는 용기에 와인을 붓는 것을 말한다. 와인을 마시기 전에 디켄터에 미리 따라 놓으면 공기와의 접촉면을 넓혀서 병속에 갇혀 있었던 와인이 숨을 쉬게 되어 한결 부드러운 향과 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해서 와인 가격의 고저를 막론하고 와인은 뚜껑을 열자마자 바로 마시는 것보다 30분 이상 놔두고 마시는 것이 더 맛과 향이 좋아진다는 것이 와인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디켄터도 없고 디캔팅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면 에어레이터(aerator)가 유용하다. 와인 애주가들은 하나씩 가지고 있는 에어레이터(aerator)를 통해 와인을 다르면 와인이 공기를 효과적으로 머금게 된다. 즉석 디켄팅 기구이다. 탄닌이 많은 와인을 에어레이터를 사용해 따르면 떫은 맛이 덜 느껴지고, 스위트 와인을 에어레이터를 사용해 따르면 단맛이 덜해진다.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등장하는 디켄팅(Decanting)
 
우리술의 약주를 에어레이터를 통해 따르면 그 맛의 부드러움과 풍미가 놀랍게 배가된다. 좋은 술일수록 맛과 향이 그윽해진다. 막걸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에어레이터를 애용하는 이유이다.
 
탄산이든 공기든 균질화된 분포가 관건이다. 물이라고 다 균질화된 상태가 아니다. 어디는 뭉쳐있고, 어디는 느슨하다. 여기에 막걸리처럼 고형물질이 함유되면 그 뭉침 현상은 차이가 더 많아진다. 밀가루를 체에 치는 이유가 밀가루 사이사이에 공기층을 균질하게 두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술에 공기나 탄산을 균일하게 주입하면 부드럽고 풍미가 좋아진다. 이에 탄산은 청량감도 보태어 준다.


만약 에어레이터나 탄산주입기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 찬 술을 차가운 술잔에 조금 높은 곳에서 천천히 따르는 것만으로도 공기와의 접촉을 통해 술을 좀 더 술 맛나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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