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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술 Sep 09. 2020

막걸리에 담긴 민주주의 철학?

막걸리의 반계급적 성질

막걸리에 담긴 민주주의 철학?
 
막걸리 빚는 법
 
막걸리 빚는 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옛 어른들이 빚었던  가장 대표적인 막걸리 빚는 법은 쌀, 누룩, 물 등으로 밑술을 만들어 10일 정도 숙성시키는 방법이었다.
 
지에밥에 같은 양의 물과 절반 정도의 누룩을 넣고 잘 섞고 25도 내외의 술독 온도로 일주일 정도 술을 익힌다. 이때 술쌀로 멥쌀을 사용하면 쌀막걸리, 찹쌀을 사용하면 찹쌀 막걸리라 했다.
 
술이 익으면 술밑을 처리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체에 거르지 않고 그대로 떠내는 방법. 둘째는 체에 받쳐 놓고 주물러 거르는 방법, 셋째는 술지게미를 재탕하여 만드는 방법 등 세 가지가 있다.
 
술밑이 숙성하면 항아리 위에 우물 정(井) 모양의 걸치개를 걸고 그 위에 체를 걸친 후, 술밑을 퍼 체에 넣고 물을 부어 가면서 거르는 것이 일반적인 술 거르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체 거름을 하면 쌀 알갱이가 부서져 뽀얗고 텁텁한 술을 얻게 된다.
 
탁주(막걸리)와 약주는 술 빚는 재료에 따라 구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술 거르는 방법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 즉 술이 다 익어 떠 낼 때에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떠내면 청주(약주)가 되는 것이고, 물을 타 넣어 걸쭉하게 걸러 내면 탁주가 되는 것이다.  
 
막걸리의 반계급적 성질
 
조선시대 판서중 막걸리 좋아하는 분이 계셨다. 좋은 약주와 소주가 있는데 하필이면 일꾼이나 마시는 막걸리만 마시냐고 자제들이 탓을 하자 판서가 소의 쓸개를 소주, 약주, 막걸리에 담아 두었다. 며칠 후 열어보니 소주에 담아 둔 쓸개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고, 약주에 담아둔 쓸개는 쓸개벽이 얇아져있었고, 막걸리에 담아둔 쓸개는 쓸개벽이 두꺼워져 있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막걸리도 약주도 같은 술항아리에서 나온 술이다. 약주는 용수를 박아 술을 떠낸 맑은 술로 주로 양반들이 마시던 술이고, 막걸리는 상대적으로 일꾼들이 마시던 술이었다.
 
한 항아리에서 나온 술인데도 소주는 쓸개를 약하게 하고, 막걸리는 쓸개를 튼튼하게 했다?
 
이 에피소드를 빗대어 혹자는 막걸리를 반계급적 평등 지향의 성깔을 부리는 술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막걸리의 반귀족적 성질
 
강화도령 철종은 보리밥에 밴댕이라도 배불리 먹기를 소원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임금이 되어 온갖 좋은 술이 궁궐에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강화도령시절의 막걸리 맛을 잊지 못했다.
 
신하들이 성 안팎의 맛있기로 이름난 막걸리를 구해 올려 철종의 입에 맞는 막걸리를 찾았다. 철종의 입에 맞는 막걸리는 허름한 토막집 막걸리있다. 이에 궁중에서 그 토막집 막걸리 빚는 법대로 막걸리를 담아올렸으나 철종의 입에 맞지 않았다. 몇 차례의 막걸리 빚기와 철종의 시음을 통해 오직 그 토막집 술항아리에서 빚어야만 제맛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걸리가 고대광실 궁중을 거부하고 허름한 토막집 항아리에서 제맛을 낸다?
 
반귀족적 서민 지향적 성격이 부각된 막걸리의 사례로 종종 인용되는 에피소드이다.
 
막걸리의 반유한적 성질
 
막걸리는 요기가 되기도 한다. 시인 천상병은 막걸리를 밥이라 했다. 일꾼들의 새참에는 막걸리가 필수여서 농주라하기도 한다. 농주는 일꾼의 허기를 달래주고, 부친 힘을 북돋아주고, 흥을 불러일으켜 일꾼들의 고된 일을 수월하게 해주었다.
 
헌데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사람이 막걸리를 마시면 속이 부글부글 끓거나, 고약한 트림이 올라오거나, 숙취로 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반유한적 노동 지향적 성격이 드러나는 막걸리의 에피소드이다.
 
막걸리가 우리민족의 술로 소중해지는 까닭은 막걸리가 반계급, 반귀족, 반유한이라는 민주주의적 철학을 담고 있는 때문이다.
 
막걸리를 좋아하면 와인이나 맥주를 좋아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급한 술취향으로 이유없는 판정패를 당하는 설움에 위의 에피소드가 반전의 답이 되어주지 않겠나? 막걸리를 폄하하는 혹자들이 막걸리의 고약한 트림과 숙취의 흉을 보거든 흉보는 자의 유한적 게으름을 안타까워하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자. 민주주의의 철학이 서린 막걸리 잔을 기품있게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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