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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술 Jan 25. 2017

막걸리는 마구 거른 술?

우리나라 전통술은 크게 막걸리, 청주(약주),소주, 침출주 등 네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그중 막걸리는 우리나라에만 전래되는 술이다. 오랜 역사도 역사지만 온 국민이 즐겨 마시는 술이기도 하다.

사전적인 막걸리의 뜻은 막 = 마구, 함부로 또는 조잡하다는 뜻이고, 걸리 = 거리는 걸렀다는 뜻으로 막걸리는 마구 거른 술을 뜻한다. 많은 막걸리 강좌에서 막걸리의 뜻을 사전적으로 알려주었고, 나 역시 ‘그렇구나’하며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던 차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 사용자를 상대로 막걸리 강좌를 준비하면서 막걸리란 용어가 사용된 근거를 찾아보게 되었다. 한데 막상 막걸리라는 용어가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그 시기를 밝힐만한 근거는 찾을 수 없었다.

막걸리에는 별칭이 참 많다. 그 색이 맑지 못하고 탁하다 해서 생긴 탁주(濁酒), 탁료(濁), 또는 탁배기라고도 했다. 한자로 표기 할 때 막걸리는 莫乞里로, 濁白伊로 기록하기도 했다. 비슷한 뜻으로 재주(滓酒) 또는 회주(灰酒)라고도 했다. 술 맛이 좋지 못하다는 뜻으로 박주(薄酒)라고도 했다. 나라의 대표적인 술이라는 뜻으로 국주(國酒), 집집마다 담는다고 해서 가주(家酒), 농가에서 담는다 해서 농주(農酒), 큰일을 치르는 집에 부조를 보낼 때에는 색이 희다고 해서 백주(白酒)라고 했다.

제주에서는 막걸리의 종류를 모주(母酒)라고 했다. [세종실록] 권128의 <五禮, 吉禮序>에는 사주(事酒)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는 탁주의 별칭이다. 한시에는 막걸리를 백마(白馬)라고 표현한 경우가 있다. 시인 조지훈은 막걸리를 쌀, 누룩, 샘물로 빚은 술이라 하여 삼도주(三道酒)라는 멋스러운 별칭으로 이름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막걸리는 지방 방언으로 막거리, 막걸레, 대포, 왕대포, 젖내기술(논산), 탁바리(제주), 탁주배기(부산)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렇게 별칭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막걸리가 서민의 술로, 생활술로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 전해 내려온 술이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헌데 막상 막걸리라는 용어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용어의 시작 또는 근거를 찾지 못하니 막걸리 뜻도 사전적인 뜻이 맞는지 시작부터 혼란스러웠다.

당시 내 온라인 강좌에서는 근거를 찾아가며 자료적 가치로서 유용하게 풀어보자 마음먹고, 관련 분야 몇몇 선생님들께 원고 감수를 부탁드렸다. 기꺼이 내 원고를 처음부터 읽어주신 분들 중에는 죽력고 인간문화재이신 정읍의 송명섭 선생님도 계셨다.

아래는 송 선생님께 당시 새벽 3시경부터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 본 것이다. 송 선생님은 술 독을 살피며 내가 온라인에 나타나기를 기다리시다가 전화를 하셨다.(이런 송 선생님의 특강은 이후로도 여러 차례 있었다. 술 독 살피시는 새벽 또는 한밤중에)

며칠 만에 열리는 장에는 주막이 있다. 주막에서는 장날에 팔 술을 담기 마련이고, 장을 오가며 장사하는 장돌뱅이 중에는 부지런한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오늘 파한 장에서 퍼지르지 않고, 부지런히 발을 놀려 다음 장에 먼저 도착하는 장꾼들 말이다. 어스름한 저녁 내일 장에 도착하는 장꾼들은 주막에 짐을 풀고 술을 청한다. 주모는 서둘러 술상을 보아 내 놓으면서, 이제 막 걸러서 술 맛이 어떨지 모르겠다며 술을 한 잔 따르고 제 손가락으로 술잔을 휘휘 젖는다. 손가락의 술을 맛보면서 “글쎄? 장이 내일이라 내일 걸러야 맛있는 술인데….” 하루 먼저 와 술을 보채서 금방 거른 술이라 맛이 덜할 거라는 표현이다.

여기에서 막걸리의 ‘막’이 시간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구 거른 술도, 함부로 거른 술도 아니다. 장이 열리기 하루 전, 주막에 도착한 부지런한 장꾼들을 위해 그 밤에 막 걸러 낸 술이라는 뜻이다, 막걸리를 걸러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금방 거른 술의 맛이 ‘술맛 따로, 물맛 따로’라는 것을. 막걸리는 물을 탄지 서너 시간은 족히 지나야 술과 물이 서로 어우러져 술맛, 물맛이 구분되지 않는다. 막 걸러서 어떨지… 라며 내어 놓는 막걸리는 지금 막 걸러서 아직 술이 물과 충분히 어우러지지 못했다는 뜻도 있는 것이다.(술독 속의 알코올 도수는 18도 정도 되는데, 물과 혼합해 6도 정도로 만드는 술 거르기 작업을 할 경우 물과 술이 어우러지는 시간이 서너 시간 필요하다)

해서 막걸리는 술맛, 물맛의 어우러짐을 재촉하는 주모의 손가락 휘휘 돌리기도 자연스레 따랐을 것이다.
막걸리의 어원은 수많은 별칭과 함께 정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송선생님의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마구 거른 술이 아니라 미완성된 술. 지금 막 거른 술이라는 해석이라니. 정확한 근거를 찾기 전까지 나는 이 이야기를 나의 막걸리에 담기로 했다.

마구 거른 술이 아니라 부지런한 장꾼의 노곤함을 풀어주던 막걸리. 지금 막 술독에서 술을 걸러 주모의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건네주던 막걸리. 물맛과 술맛이 충분히 어우러지지 않아서 우리에게는 조금 당혹스러운, 그 막걸리 맛이야말로 진정한 ‘막걸리의 맛’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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