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준 Oct 10. 2019

제갈공명 빌런

삼고초려가 아니라 삼고결재

#1 제갈공명 빌런



제갈공명 (왼쪽) [동아DB, shutterstock]


과유불급. 회사 일인 만큼 언제나 신중해야 하지만 과도한 신중함은 오히려 일 진행을 막는다. 신중함을 가장한 태업이나 폭언이라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광고회사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김모(29) 씨는 상사와 후배 때문에 당장이라도 퇴사하고 싶다. 김씨는 동료들에게 직속 상사와 후배를 ‘제갈공명’이라고 소개한다. 명칭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직장 동료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삼고초려’에서 따온 별명으로, 후배는 뭐든 세 번 지시해야 업무를 해온다. 후배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깜빡 잊었습니다” “제가요?”다.



상사도 꼭 3번 이상 말해야 일의 진행을 허가해준다. 그는 “처음에는 상사도 후배처럼 결재를 잊어 문제가 생긴 것인가 싶어 상기시켜주기도 했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없었다. 매번 다양한 핑계를 대며 결재를 미뤘다”고 밝혔다. 기획안이 문제인 경우 다시 쓰라고 지시하면 될 텐데, 김씨의 상사는 기획안을 문제 삼지도 않았다. 결재를 미루는 이유는 돈이었다. 비용 집행을 해야 하는데 상부 눈치를 보느라 망설이는 것. 김씨는 “매일 자리에 앉아 일은 안 하고 결재만 기다리고 있으니 답답했다. 차라리 비용 관련 설명을 내가 하겠다고 나섰다. 그제야 단숨에 결재가 떨어졌다. 그때 이 사람이 책임을 피하고 싶어 결재를 하지 않고 뭉개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예와는 조금 다르지만 무역회사에 다니는 정모(26·여) 씨가 지난해까지 가장 무서워하던 상사도 결재를 해주지 않았다. 결재를 올리면 퇴근할 때쯤 책상에 서류를 집어던지며 다시 해오라는 식이었다. 정씨는 “처음에는 내가 일을 잘 못해 혼이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또 두 번째 서류마저 폭언과 함께 반려되자 정씨는 기약 없이 야근을 했고, 너무 피곤한 나머지 실수로 처음 만들었던 서류를 그대로 올리고 퇴근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차린 정씨는 벌벌 떨며 출근했지만 상사는 별말 없이 서류를 통과시켰다. 시간이 꽤 지난 뒤에야 상사는 회식자리에서 “한 번에 통과시키면 기고만장할 것 같아 그랬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