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최초였지만, 왜 세계는 구텐베르크를 기억하는가

기술 종주국의 비극

by Paxmn


https://youtu.be/tMPRpnAWwig


인류의 의사소통은 최초에 '마임:몸짓:행동'이 있었고 그 뒤에 말과 그림이 있었으며 또 그 후에 문자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더 한참 뒤인 15세기 1455년 독일에서 #구텐베르크 (1400~1468, 독일 마인츠)가 발명한 인쇄기로 성경 '42행'을 인쇄한 것이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78년 앞선 고려 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직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의 원본 중 하권이 현재 프랑스의 국립도서관(BnF)에 있다(상권은 분실된 상태).

포도 압착기에서 착안한 인쇄기


이로써 인류 최초의 인쇄기술은 우리나라에서 시작되었음이 확인되었고 유네스코에서도 인류문화유산으로 인정해 주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유산이며 인류의 유산임이 분명하다.


구텐베르크 인쇄 방식은 와인의 고장인 독일 마인츠답게 포도 압착기에서 착안해 납 활자를 인쇄기에 올려놓고, 레버를 당기면 '유성잉크(이 또한 구텐베르크가 개발)'활자가 찍혀 나오는 방식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우리는 먹물(수성)을 사용해 금속활자에 겉돌았던 반면, 구텐베르크는 착 달라붙는 유성잉크를 사용했다.

"기술은 마인츠에서 태어났으나, 영광은 비엔나의 광장이 차지했다. 이것이 기술보다 무서운 '보급과 점령'의 본질이다."당시 합그부르크왕조의 본산인 비엔나에 그의 동상이 있다


반면, 직지는 쇳물을 부어 활자를 만들고 인쇄판에 밀랍으로 활자를 붙인 뒤 손으로 문질러 글씨를 찍는 방식이다.



직지의 금속활자와 인쇄본


우리와 서양의 인쇄술은 모두 당대의 문화 혁명을 이끈 하나의 상징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다만 알파벳과 달리 한자는 수십만 자에 이르고 제작 비용이 많이 들어 민간에 보급되기가 쉽지 않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활자를 만드는 기술은 우리가 최고였고, 서양은 보급력에서 우리보다 훨씬 더 앞서 있었던 이유다."


이 차이는 왜 서구는 그 이후 현대까지 세계를 주도했을까? 반대로 동양은 19세기부터 근 1세기가 지나도록 식민지로 전락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인쇄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자를 보고 기록하며 널리 알리는 본래의 목적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서양보다 뒤진 것이다.


더군다나 서양은 때마침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에서 번진 르네상스와 맞물려 인쇄술은 폭발적 영향력을 갖게 되었던 거고.......


이로서 창의성에선 앞서지만 보편성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사회발전에 더욱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류일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이제는 보편성에 대해서도 뒤지지 않는 우리가 변증법의 추월을 해볼 때가 된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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