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소녀의 죽음

"만기출소 이틀 전 일제의 93가지 고문을 못 견디고 옥사한다."

by Paxmn


https://youtu.be/ITDlWk_8QQY

[4k Live] 안예은_8호 감방의 노래(Ahn Ye Eun_Women's March)


'오른손이 잘리면 왼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왼손마저 잘리면 입으로 태극기를 들것이다.' - 류관순 열사 -


병천(並川)의 우리말 이름이 바로 '아우내'다. 한자어 "병천(並川)"은 아우를 "병(並)", 내 "천(川)"으로 '두 물줄기가 어우러 지는곳'이라는 뜻이다.


언젠가부터 아우내 즉 병천의 순대는 전국 브랜드의 먹거리가 되었다.


약 50년 전 이곳에 돈육 가공공장이 들어오면서 가공 과정의 부산물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창자에 각종 채소와 선지 등을 넣어 순대를 만들며 지역 토속음식이 되었다.

병천시내
동그란 점선 유관순 열사

특히나 장날이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팔려나가 오늘날의 전국 브랜드가 된 것인데 이 병천의 장터가 불과 백여 년 전 류관순 열사의 '아우내 장터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비극의 현장 바로 그곳이다.


1902년이 출생년인데 1920년에 사망한다. 만 18세.......

생가와 매봉교회
병천기념관의 동상
일제의 복심법원 판결문

만세운동 현장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제에 모두 잃고 그 자신마저 헌병에게 붙잡혀 갖은 고문을 당하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만기 출소 이틀 전인 9월 8일에 수형생활 중 입에 담기조차 힘든 93가지의 갖은 고문을 받아 그 후유증인 '장독'과 '영양실조'로 옥사하고 만다.


일제는 시신 수습이라도 하려는 열사의 모교 이화학당의 요청마저 거부하다 외국인 선교사인 교장의 반협박 반 설득으로 시신을 내어주어 10월 14일에야 정동교회에서 장례를 치렀으나 묘지는 이장을 거듭하다 없어져 고향인 병천의 생가 뒷산인 매봉산에 가묘(초혼묘-유골이 없는 분의 혼백을 모신 묘)된 상태다.


우리 후손들은 그 유해조차 관리를 못한 현실에 그저 입이 있어도 열지를 못하고 죄송하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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