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출소 이틀 전 일제의 93가지 고문을 못 견디고 옥사한다."
[4k Live] 안예은_8호 감방의 노래(Ahn Ye Eun_Women's March)
'오른손이 잘리면 왼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왼손마저 잘리면 입으로 태극기를 들것이다.' - 류관순 열사 -
병천(並川)의 우리말 이름이 바로 '아우내'다. 한자어 "병천(並川)"은 아우를 "병(並)", 내 "천(川)"으로 '두 물줄기가 어우러 지는곳'이라는 뜻이다.
언젠가부터 아우내 즉 병천의 순대는 전국 브랜드의 먹거리가 되었다.
약 50년 전 이곳에 돈육 가공공장이 들어오면서 가공 과정의 부산물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창자에 각종 채소와 선지 등을 넣어 순대를 만들며 지역 토속음식이 되었다.
특히나 장날이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팔려나가 오늘날의 전국 브랜드가 된 것인데 이 병천의 장터가 불과 백여 년 전 류관순 열사의 '아우내 장터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비극의 현장 바로 그곳이다.
1902년이 출생년인데 1920년에 사망한다. 만 18세.......
만세운동 현장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제에 모두 잃고 그 자신마저 헌병에게 붙잡혀 갖은 고문을 당하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만기 출소 이틀 전인 9월 8일에 수형생활 중 입에 담기조차 힘든 93가지의 갖은 고문을 받아 그 후유증인 '장독'과 '영양실조'로 옥사하고 만다.
일제는 시신 수습이라도 하려는 열사의 모교 이화학당의 요청마저 거부하다 외국인 선교사인 교장의 반협박 반 설득으로 시신을 내어주어 10월 14일에야 정동교회에서 장례를 치렀으나 묘지는 이장을 거듭하다 없어져 고향인 병천의 생가 뒷산인 매봉산에 가묘(초혼묘-유골이 없는 분의 혼백을 모신 묘)된 상태다.
우리 후손들은 그 유해조차 관리를 못한 현실에 그저 입이 있어도 열지를 못하고 죄송하기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