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E=mc2"
*곡 설명-Mozart Sonata in B-flat KV378
어린 시절 학교 담임선생으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20세기는 물론 21세기인 지금껏 불세출의 천재로 평가받는 그지만 중고등학교(Gymnasium)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평가였다.
그 천재성조차 담지 못할 만큼 좁았던 교실의 평가는 가혹했다.
심지어 퇴학시키는 문제까지 논의되어 자퇴형식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이 있는 이탈리아로 돌아간다.
아인슈타인 ( Albert Einstein, 1879.3.14 독일 ~ 1955.4.18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하고 더 공부하고 싶었으나 아무도 받아주지 않아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독일 베른 특허국의 서기가 되고 대학 동창인 밀레바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다.
대학시절 성적은 6점 만점에 4.96으로 평균 정도였으나 짓궂은 농담과 잦은 결석으로 화가 난 교수는 취직이 불리할 만큼 불리한 추천서를 써준 결과다.
아인슈타인은 베른의 특허국 시절인 1905년 38장의 논문 초안과 3장의 보충 논문을 완성해 과학 잡지인 "물리학 연보"에 보낸다.
드디어 "E=mc2"의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F=ma (F: 힘, m: 질량, a: 가속도)" 라는 뉴턴의 공식 이후 인류 역사상 또 하나의 아름답고 명쾌한 공식의 탄생이었다.
"E=mc2" 즉, "질량이 속도의 터널을 지나면 거대한 에너지로 전환된다"는 공식이 세상에 알려진 후 당시 히틀러의 독일은 불리한 전세를 뒤엎기 위해 비밀리에 원자폭탄 개발에 들어가고, 이를 눈치챈 미국과 영국은 2차대전의 전세를 결정지을 "가공할 폭탄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 "맨해튼계획 (Manhattan Project)"에 돌입한다.
역사가들은 이 경쟁에서 미국의 승리가 산업적인 우월성에 기인한 당연한 결과라고 얘기하지만, 독일 역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실제로 미군 사령관 조지 마셜은 1944년 6월 노르망디공격 개시 예정일을 바로 앞둔 순간까지도, 프랑스에 상륙하는 아군들에게 "가이거 계수기 (방사능 측정기)"를 장착시켰을 정도였다.
"E=mc2"가 전후에는 종양을 찾아내는 데 쓰이는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 스캐너(PET scanner)와 같은 많은 의료 기구들의 중추적인 개념이 되었고, 또 텔레비전이나 화재경보기와 같은 일상적인 가전제품들에 쓰이게 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그 공식이 저 멀리 우주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는 데 있다.
어떻게 별이 타오르는지, 별은 또 어떻게 행성을 따뜻하게 유지하는지, 어떻게 블랙홀이 생기는지 또 어떻게 세계의 종말이 올 것인 지까지도 설명해 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현재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것은 인간의 호기심이 만든 공식이 파멸의 도구가 될지,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될지는 결국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는 반증이 되지 않을까
"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않는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호기심은 그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인간은 진리와 인생 그리고 불가사의한 현실의 구조를 직시할 때,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두려움에 빠지곤 한다.
그저 매일 이 불가사의한 세계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걸로 족하다.
신성한 호기심을 잃어서는 결코 안 된다.
하나의 목적에 자신의 온 힘과 정성을 다해 몰두하는 사람만이 진정 탁월한 사람이다.
이런 까닭에 탁월해지는 데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요구된다. “
이론물리학자인 그가 철학적 혜안까지 비친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은 "타인이 내린 성급한 판단은 내 삶의 악보를 단 한 마디도 연주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모차르트를 켜며 고요히 다음 악장을 준비할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