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지경선을 지우고 인간을 조각하다"

체사레 보르자

by Paxmn

암흑의 천 년을 깨운 굴욕과 갈망


서양의 중세는 천 년에 걸친 '신의 시대'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찬란했던 인문주의가 잠들고, 인간성이 말살된 야만과 봉건의 시대가 이어졌다.


하지만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으로 이탈리아로 유입된 고대의 지혜는 르네상스라는 찬란한 꽃을 피울 거름이 되었다.


이는 우리 역사와도 닮아 있다.

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들이 발해의 기틀을 세웠고, 발해 멸망 후 고려로 흘러든 수만 명의 유민이 고려의 인적·문화적 지평을 넓혔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특히 1494년, 속주에 불과했던 프랑스군에 무력하게 짓밟힌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굴욕은 '통일 이탈리아'를 향한 처절한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이 혼돈과 열망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세 명의 거인이 서 있었다.


체사레 보르자 : 우아함 속에 숨긴 살인마의 칼날


체사레는 르네상스가 배출한 가장 잔혹하고 아름다운 '몸'이었다.

다빈치의 예수상(Salvator mundi)은 체사레가 모델이었다는 설이 있다

“거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제물은 타인이 아닌, 자신의 혈육이었다.”


어느 날 아침, 체사레의 친형 후안이 테베레 강에서 9군데의 자상을 입은 시신으로 발견된다.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확신했다.


군권을 독점하고 여동생 루크레치아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던 체사레의 소행임을... 그는 권력을 위해 혈육의 피로 제단을 쌓았다.


자신을 배신하려던 용병 대장들을 시니갈리아의 연회에 초대해 안심시킨 뒤, 문을 잠그고 그 자리에서 전원을 처형했다.


비명이 울려 퍼지는 연회장에서 체사레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와인을 들이켰다.


이것이 마키아벨리를 전율케 한 '우아한 냉혹'의 실체였다.


체사레는 분열된 이탈리아를 하나의 칼날로 벼리려 했던 거대한 야망가였으며, 정복한 영토에서 보여준 강력한 행정력과 법질서는 그가 단순한 약탈자가 아닌, 근대적 국가를 꿈꿨던 통치자로 다빈치가 그린 차가운 지도 위를 마키아벨리가 쓴 잔혹한 각본에 따라 거침없이 질주했던, 르네상스라는 광기의 페르소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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