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괴물
1502년 12월, 이탈리아 로마냐 지방의 요새 이몰라.
성 밖은 체사레 보르자에게 반기를 든 용병 대장들의 반란으로 피비린내 나는 긴장이 감돌고 있었지만, 성채 안쪽 군주의 방은 기묘할 정도로 정적에 싸여 있었다.
촛불은 세 남자의 일렁이는 그림자를 벽면에 기괴하게 투사하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 체사레 보르자가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채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었다.
그의 무릎 위에는 방금 닦아낸 차가운 검이 놓여 있었다.
그는 며칠 전, 자신을 배신하려던 용병 대장들을 세니갈리아로 유인해 몰살시킬 계획을 세운 참이었다.
그의 눈은 부드러운 듯했으나, 그 속에는 정적의 목을 조를 때의 차가운 광기가 서려 있었다.
그의 오른쪽 테이블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허리를 굽힌 채 양피지 위에 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다빈치의 손끝에서 탄생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평면 부감 지도'였다.
체사레가 정복해야 할 도시의 높낮이, 성벽의 두께, 강물의 유속이 신의 시선으로 해부되고 있었다.
다빈치에게 체사레는 '군주'가 아니었다. 자신의 공학적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피를 공급해 주는 거대한 기계의 엔진이었을 뿐이다.
방의 어두운 구석, 그림자처럼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피렌체의 외교관 니콜로 마키아벨리였다. 그는 수첩을 꺼내 들고 이 두 사람을 집요하게 관찰했다.
그는 체사레의 잔혹한 결단력에 전율했고, 다빈치의 차가운 지성에 감탄했다.
마키아벨리는 깨달았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도덕이 사라진 자리에 실력이 들어앉는 새로운 시대'가 태동하고 있음을...
체사레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선생(다빈치), 이 지도가 완성되면 저 성벽 안의 사람들은 제 발아래 있게 되겠소?"
다빈치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마치 기계를 수리하는 정비공 같은 목소리로 답했다.
"각도와 수치만 맞다면, 성벽은 종잇장처럼 무너질 겁니다. 자연의 법칙은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그때 어둠 속에서 마키아벨리의 목소리가 얹혔다.
"공(체사레), 성벽을 무너뜨리는 건 다빈치 선생의 지도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무너진 성벽 너머의 민심을 묶는 건 공의 칼끝에서 나오는 공포여야 합니다. 인간은 은혜를 잊어도 공포는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이몰라 성채에는 세 명의 인간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권력이라는 욕망(체사레), 데이터라는 광기(다빈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시스템으로 박제하는 차가운 지성(마키아벨리)이 충돌하며 중세라는 낡은 껍질을 깨고 '근대'라는 괴물을 잉태하고 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장면을 찬란한 예술의 탄생으로 기억해 왔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보라. 당신이 내일 아침 마주할 비즈니스의 전장은 사실 500년 전 그 해부실의 확장판에 불과하다.
다빈치가 그린 지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비의 영역에 있던 대지를 '관리 가능한 데이터'로 치환하는 인류 최초의 비즈니스 설계였다.
"자연의 법칙(데이터)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오늘날 "데이터로 성과를 증명하라"며 당신을 압박하는 알고리즘의 조상이다.
그가 지도를 완성한 순간, 성벽 안의 인간들은 통치자의 손위에서 움직이는 '수치'와 '부품'이 되었다.
우리는 왜 이 비정한 풍경에 전율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가.
사실 우리 내면에는 비겁한 욕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부품으로 해부당하며 고통받는 척하지만, 우리 역시 단 한 번이라도 저 체사레처럼 칼자루를 쥐고, 마키아벨리처럼 냉혹하게 판을 짜며, 다빈치처럼 차갑게 세상을 조망하고 싶어 한다.
"당신은 해방된 것이 아니라, 더 정교하게 해부될 뿐이다."
르네상스는 우리에게 자유를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끝없이 해부하고 증명해야 하는 '무한 증명의 굴레'를 선물했다.
합리는 풍요를 주었지만, 새벽녘 머리칼을 적시던 서정의 안개는 걷어가 버렸다.
이제 우리는 슈베르트의 선율에 눈물 흘리면서도, 내일의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존재를 숫자로 지워내야 하는 '우아한 괴물'이 되었다.
연휴의 마지막 밤, 정적 속에서 묻는다.
당신이 지난 5일간 누린 것은 진정한 휴식이었는가, 아니면 다음 해부를 위해 잠시 허락된 사육의 시간이었는가.
당신은 내일 다시 다빈치의 해부실(사무실)로 출근할 것이다.
그곳에서 당신은 기계로 남을 수도, 아니면 그 서늘한 칼날 끝에 기어이 당신만의 서정을 한 방울 묻혀 나올 수도 있다.
이몰라의 촛불은 꺼졌지만, 그들이 남긴 질문은 이제 당신이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