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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Dec 27. 2020

1. 프롤로그

- 내돈내공 : 내 돈내고 내가 공부한 거 쓰기 프로젝트

벌써 10년전, 호주 캔버라에서 미술사학 석사를 마치기까지 정말 힘들고 고단한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아마 다시는 그때처럼 치열도록 열정을 갖고 살 수 없을것이다. 어쩌면 이제는 그때처럼 앞 만 보고 달려갈 수 없을 것 같다. 현실적인 상황도 그렇고, 현실에 적당히 타협한 탓도 있고, 체력적이고 심리적인 것도 문제가 될 것이다. 핑계라면 핑계일 수 있지만 지금은 확실히 이전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계속 호주를 그리워했다. 그때의 화이팅 넘치는 내가 너무도 그리웠다. 때문에 현재의 내가 너무도 초라해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을 더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그 곳을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깊숙한 곳에 구겨놓고, 지금의 나는 거들떠보지 않았던 시간들이 오래되자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과 달리 마땅히 쓸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배운 것, 알고 싶은 것을 공부하며 써 보자 했던 다짐은 흐지부지. 거의 매번 자책과 위로섞인 말들, 아니면 알맹이없이 타자 치기를 반복하다가 2020년 연말을 맞이하고 있다.


무엇을 쓸까?


이 고민만 대체 몇년째 하고 있을까.


이걸 쓸까 하다가 누가 썼을거야 시작도 전에 포기하거나, 저걸 쓸까 하다가 딱히 재밌을것 같지 않아 끄적거리다가 포기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다 오랜만에 미술 그림책을 펼쳐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내가 호주서 뭘 배웠더라? 이 생각에 예전 블로그에 쓰다만 글을 읽어보았다. 꽤 알차게 썼던 시절이 있었지. 각종 글 중 미완성인으로 남은 글이 있었다. '히스토리 미술사' - 석사 1년차 세미나 수업의 일환으로 들었던 수업 내용을 기반으로 쓴 글 이었다. 말 그대로 배운 내용 아까워서 정리하던 글이다.


바사리, 빈켈만, 뵐플린, 부르크하르트, 그린버그, 존 러스킨 등 - 곰브리치 정도 밖에 몰랐던 때, 생소한 이들을 공부하며 머리가 터질 뻔 했다. 솔직히 우리말로 해도 어려운 내용을 '단기간에 영어 점수 받아서 입학한' 유학생인 내가 완전히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잠도 거의 못자고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내 첫 과제가 바사리였는데 그의 책은 성경을 읽는 것 같았다. 근대 영어로 써 있어서 영어 공부를 다시 해야했던 기억이 있다. 수업 중 현타가 크게 두번왔었는데, 첫번째는 칸트와 헤겔이었고, 두번째는 기호학이었다. 다시 공부하라고 해도 엄두가 안날 것 같다. 사실, 다른 것도 거의 기억에 없다는 것도 안 비밀.


오늘따라 내년에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어쩐지 결국 내가 쓸 글이란 내가 배운 것, 그나마 내가 아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다시 공부할 겸 '쓰다만 글을 끝내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거의 10년만에 다시 미술사글을 쓰기 시작하려고 한다. 딱히 재밌을 것 같지는 않지만, 정말 이 글의 목적은 "돈 주고 배운 거 아까워서 쓴다"이다. 혹시라도 함께 글을 즐길 구독자분들이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할 것 같다.     


Fine art is that in which the hand, the head,
and the heart of man go together.

- John Rusk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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