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는 좀 괜찮을까?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에 질겁하고 온 고인물

by 파즈

예전에 태어난 이유로 거저 블로그 1세대라는 타이틀을 갖은 적이 있었다.

나란 사람, 구글, 아마존, 네이버, 다음의 창업을 지켜본 사람이다. (아..IT 고인 물..)

심지어 네이버 아이디는 지금은 절대 만들 수 없는 3자리 수다.

불안정한 네이버 창업 초창기에나 가능 했던.. 희귀 아이템이랄까 하하..

그때만 해도 워낙 초창기라 내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내 블로그 글이 노출되기가 그나마 좀 쉬웠던 세대였다.


한 번은 친구랑 뉴질랜드 배낭여행을 다녀와서 그냥 느낌대로 여행기록을 적었는데

블로그 조회수가 폭주하는 것이다.

잘 보고 간다며 댓글 남기시는 분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아시고 여길 오셨어요?" 라고 물어봤더니

내 글이 네이버 메인에 걸렸단다 글쎄.

그 힘을 받아 네이버에서 주최한 여행기 공모전에 블로그 글 그대로 제출했더니

옳다구나, 대상을 받아 선물로 일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뭘 특별히 잘한 것도 아닌데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에 대한 글을 쓴다는 거 자체가

좀 희귀한 때였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여행작가님들의 콘텐츠와 비교해 보면 어우, 감히 도전장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시대를 잘 타고났었다. 그 때 블로거로 자리 매김을 했어야 했는데, 그 땐 그것이 귀한 줄 모르고 방심했다가 지금 블로그는 거미줄이 쳐져있다. 물 들어 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그 땐 왜 몰랐을까.


20년 직장생활과 15년 육아로 바쁘게 살아온 세월 동안 "기록"이라는 것을 거의 못했다.

기껏해야 카카오스토리 육아일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그날 먹은 것들, 산 것들, 요리한 것들, 간 곳들 등 간략하게 사진으로 남기는 게 전부였다.


나이가 들수록 하루하루 기록 없이 스쳐가는 삶이 좀 공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정신을 차리고 나도 기록용 글을 좀 남겨보자 하는 생각이 다시 든다.

나름 꽃 같지 않고 불꽃 같은 삶을 살아왔고, 파란만장했는데 기록이 없다.

이력서? 자기소개서로는 나의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없다.


나만의 콘텐츠가 무엇일까, 글로 쓸 때 가장 흥분되는 카테고리와 장르, 소재가 무엇일까?

고민해 봤는데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뭘 하나 진득하게 제대로 하는 것이 없기에..

난 정말 그냥 제너럴리스트 직장인이었구나 한 사람으로서의 내 킬러 콘텐츠가 없구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만의 색깔이 무엇일까.

이제는 누군가를 위한, 어떤 회사를 위한 콘텐츠가 아닌 내 콘텐츠를 제대로 찾아 남겨보고 싶다.


어쨌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네이버 블로그를 다시 정비하고 새 블로그도 만들어보고 했는데

와! 정말 너무 많은 "선수"들이 있어서 기가 죽어 못하겠다.

단순히 일기라면, 아무도 안 보는 일기장에 쓰면 되건만 글이라는 게 또 남한테 보일 때 빛을 발하기도 하니까 내가 쓴 글을 남들도 좀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당연한 거라 생각한다.

요즘 핫한 인스타나 유튜브는 재주도 없고, 부지런함도 없어 감히 엄두도 못 내겠다.


그러다가 예전에 계정을 만들어 둔 브런치에 오랜만에 들어와 보았는데, 편안한 안정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브런치를 우습게 보는 건 절대 아니다!

여기야 말로 진정한, 좀 덜 상업적인 "진짜 글 꾼"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잘 안다.

제품소개글이 아니어도, 여행지 맛집 소개글이 아니어도 진정성 있는 글들을 서로 알아봐 주고 응원해 주는 그런 곳인 것 같다. 다른 채널들에서 상처받고 기죽어 온 이 한 몸, 글자 몇 자 살포시 적어놓고 잠을 청해 본다.

내일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이곳에 들어오는 나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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