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짜리 journey

by 파즈

며칠간 집중하던 일을 끝내고 나니 허무함이 몰려왔다. 몸과 정신이 피곤하기도 하고, 기분이 다운되어 일단 잠을 푹 잤다. 해가 중천인데 이 시간에 일어나다니... 하고 한심해질뻔 했는데 냉장고에 있는 김밥재료가 생각이나서 벌떡 일어나서 김밥을 열줄 쌌다.

사업이 힘들때면, 엄마라는 역할에 충실하면서 다른 역할이 있다고 핑계를 댈 수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김밥 꼬다리를 먹으며 창밖을 보니 오랜만에 해가 반짝 뜬다. 창문을 열어보니 오랜만에 온기가 살짝 돈다.

이때다 하고 집안에 창문, 방문, 장농 문을 있는대로 다 열고 환기를 시켰다. 그간 추워서 제대로 된 환기를 못했는데 봄 기운이 집에 싹 스미는 느낌이 들었다.

맞바람이 집을 훑으니 고양이 털들이 공기중으로 민들레 홀씨 처럼 솨아악 올라온다. 덕분에 로봇청소기도 돌려본다.


오랜만에 춥지 않은 날씨가 이렇게 반가울수가 없다. 매번 달리던 곳이 지겨워서 다른 곳에 가서 달려 보고 싶단 생각을 하다가 오늘이 딱 그날이다 싶었다.

러닝화를 신고, 기모 러닝복으로 무장하고 겨우내 눈과 먼지로 찌든 차를 세차하고, 기름을 가득 넣고 가까운 서울대공원으로 갔다.

대낮인데 뛰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저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이길래 낮에 저렇게 팔자좋게 달리기를 할까?라는 생각이 잠깐들었는데 그러고보니 나도 마찬가지군.


조금 달렸는데 동물원에 사는 길고양이가 나를 보고 반갑다고 달려온다. '어머 우리 아는 사이였니?' 동물들은 착한 사람을 알아본다던데 어머 그게 나였군.

사람들이 잘 챙겨준 고양이인지 배부르게 먹은 빵빵한 배를 뒤집고 한껏 애교를 부리더니 종종 따라온다.


"어머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기분이 좋아졌다.


내친김에 현대미술관까지 뛰어 갔다. 마침 이어폰에서 우즈의 journey가 흘러 나온다. 우즈가 어려움을 겪던 시절을 이겨내면서 쓴 가사인데 마치 사업을 시작하고 고군분투하는 나의 얘기를 하는 듯해서 듣다보면 코끝이 찡해지는 곡이다.


"걸어온 날을 기억해

바라던 순간을 위해"


힘들때면 도착지가 안보이는 앞만 보지말고 뒤도 한번씩 돌아보면서 출발지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래도 이만큼 멀리 왔잖아 하고 위로가 된다.


날씨도 춥고, 끝나는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한~명도 없다. 오히려 좋다. 아무도 없길래 혼자 노래를 따라 부르며 뛰었다. 아이 어릴 때 삼복 더위에도 유모차 끌고 다니던 이 곳을 이제는 친구도 없이 혼자 와서 산책하다니. 나도 참 기특한 어른이 되었군 하는 마음도 들었다가 잠깐 외롭기도 하고 혼자도 괜찮네 싶었다.


5키로를 걷고 뛰다 땀에 흠뻑 젖어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행복이 별건가 싶었다.

건강하여 뛸수 있고, 좋아하는 가수 노래를 무제한 스트리밍으로 맘껏 들을 수 있고, 돌아갈 집이 있고, 저녁밥도 해놓고 나왔고, 모르는 고양이가 나를 좋아하고, 혼자도 이렇게 씩씩한데.


그냥 젖은 담요처럼 집에 있었으면 자기 전까지 기분이 안좋았을텐데 운동화 신고 집을 나섰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다운 된다고 죽을 상을 하고 누워있으면 누가 알아주냐. 내가 나를 알아줘야지.


앞으로도 기분이 쳐질때면, 문을 박차고 나가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충분히 해보기로 했다.

가까운 전시도 가고 핫하다는데도 혼자 가보고 영화도 보고 그래야겠다.


journey의 가사처럼 나를 감싸주는 햇빛이 나를 비추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내가 이 문을 나설 때

저 너머 끝없는 길 위에

햇빛이 날 비추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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