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유튜브 알고리즘 속 뇌과학자는 말한다. '정치 이야기를 하게 되면 자아 관련된 뇌의 부분이 자극됩니다. 즉, 나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종교도 마찬가지예요'. 사실여부를 떠나서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로서 너무 좋은 근거다. 일단 과학적으로 보여서 뒤끝도 없다. 요즘은 정치에 대한 발언을 하지 않는 것도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새로운 풍조도 있기 때문에 위의 문장을 자주 인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날 지나가는 기사를 보다가 '트럼프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라는 주제를 접하게 되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였다. 술로 죽어버린 형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술과 담배 등 중독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 의외였다. 나 자신이 사실은 팩트에 약하다는 깨달음을 최근 독서를 통해 접하고 있었지만 너무 의외인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트럼프와 관련된 추문 기사만 몇 번을 접했지?', '아니 추문은 둘째치고 엄청난 의견과 사건들이 있었잖아? 비상식에 가까운 것 같았는데?'라는 질문과 함께.. '그러면 술 한 방울 안 먹고 그 파괴력 있는 사건들을 일으켰다고?'
트럼프 이야기에서 아버지 이야기로 흐르는 전개에 대해서는 특별히 의도한 바는 없다. 다만 그 흐름에 따라 이미지화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아들로서는 조금 미안해지는 부분이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 대목에 정확히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화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좋은 말로는 시원시원하고 나쁘게 생각하면 필터 없이 이야기하고 행동한다. 본인은 시대에 맞는 성격이라고 하신다. 뭐 아무렴 좋다. 트럼프가 술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에 아버지가 떠오른 이유는 간혹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문장에 기인한다.
'내가 건강해 보이는 이유는 나는 답답하지 않기 때문이야'
저 한 문장에 얼마나 많은 역사가 얽혀있는가 생각한다. 본인은 답답하지 않았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필터 없는 감정의 힘이주는 고통에 오랫동안 답답했다. 그런데 지금 본인의 나이보다 더 젊어 보이는 아버지의 비결이 필터 없는 성격이었다니. 한동안은 부조리에 치를 떨었다. 더 큰 부조리는 삶의 결과에 대한 것이다. 어머니의 고생을 지켜봐 온 나로서는 권선징악의 결론을 내심 기대했는데 아버지는 참 잘 지내신다. 심지어 어머니와도 잘 지내신다. 거기다 손주도 제시간에 둘이나 생겼고 손주들은 할아버지를 잘 따른다. 세상 참 알 수 없다. 역시 내가 알 수 없는 대자연의 흐름이 있는 것인가?
개인은 자신의 삶을 산다고 착각한다. 대부분 주어진 환경에서 해야 할 일을 한다. 대다수의 경우 그 환경에 불만족한다. 그리고 비판한다. 또 비판한다. 그러다 운수 좋은 날도 온다. 그날은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또 다음의 비판의 순간이 곧 찾아온다. 가끔은 비판에 지쳐 체념한다.
순간의 비판도 순간의 행복도 술과 함께 한다. 처음에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묵념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슬슬 시동이 걸린다. 그러다 보면 그 비밀 같은 현재의 환경을 입 밖으로 꺼낸다. 그리고서는 통렬히 비난한다. 술잔이 비어질수록 비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실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가 돼버린다. 정신없이 지나가면 다음날 숙취로 깨져버릴 것 같은 머리를 붙잡고 생각한다. '아, 그 정도까지 비난할 일은 아니긴 했는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행복에 대해 수줍게 털어놓는다. 술잔이 비어지면 자랑이 되고 결국 허세가 된다. 다음날 오는 후회도 마찬가지다. '아,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긴 했는데..'
사실은 두 경우 모두에도 개인에게 아무 일도 해결된 것은 없다. 단순히 감정이 양극으로 기울었을 뿐이다. 비판적인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행동에만 존재한다. 풀리지 않은 것 같은 감정도 결국 어떤 계기, 즉 행위에 따라 변화가 찾아오고 그 변화에 따라 환경을 부정하던 환경을 받아들이던 아니면 환경을 바꾸어버리던 그게 아니라면 나 자신을 바꿔버리는 행동이 있어야만 현재의 상황은 해결이 된다. 행복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 행복을 온전히 느껴지는 순간은 행복한 순간 이후에 나에게 올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이다.
트럼프가 술을 마시지도 않고 정신 나간 소리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주제가 아니다. 어떤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는 가는 또 다른 주제이지만 본인의 생각을 환경에 고정하고 중독을 통한 감정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과 행위사이에 군더더기가 없다. 물론 행위의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그 행위를 조심해야겠지만 아주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행위를 하지 않게 되는 것 자체가 문제다.
결국 감정과 중독 사이에서 나 자신을 저울질하면서 자기 연민과 만들어진 기쁨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살다 보면 어느 날 늙고 고장 나 버린 나를 만나 버릴지 모른다. 말 그대로 정말 몸이 고장 난다. 중독에 고장 난 몸은 다시 고쳐쓸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아버지나 트럼프는 건강할 것 같다. 그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중독이라는 매개 없이 직접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개념 신년 계획이다.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술을 끊겠다는 진부한 다짐도 무엇을 해내겠다는 따분한 결심도 하지 않을 거다. 다만 솔직해지고 행동으로 답할 예정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세상의 사람들을 절반을 책임지거나 남을 해치는 의도를 가진 일들이 아니다. 기껏해야 글을 더 쓰고 싶거나 요리를 더 배우고 싶은 정도다. 혹은 무언가를 팔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거나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패션은 좀 어떨까?'라는 주제가 될지도 모르지만 결국 내가 나답게 산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분명히 내 삶에는 도움이 될 것을 알고 있다.
쓸데없는 감정을 낭비하지 말자. 음악을 듣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결국 곡을 만들고 표현해 내는 창조하는 사람들에게 궁극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부록 -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 쓰는 글도 주로 깨달음보다는 이상한 '나'라는 개인이 생각하는 이상한 것들이 될 것 같다. 예비 주제는 아래와 같다.
1. 종점에 있는 학교를 향하는 만원 버스의 가장 뒷자리 양쪽 끝에 앉아가는 즐거움
2. 모기의 피는 무슨 색이지
3. 방금 닫힌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는 교묘한 눈치싸움에 대해
4. 읽지도 못하는 해외 서적을 전리품처럼 구매하는 습관에 대하여
5. 좁은 골목길이 주는 오묘한 기쁨에 대해
6. 콧수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