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본의 경계

by Paz

그런 날이 있다. 실제로는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일인 데다가 절대 기억할만한 내용이 아닌데도 평생 기억에 남는 그런 장면이 있는 날이다. 긴 대학 생활을 통틀어서 수업이 기억에 남는 날은 오직 이날 하나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분명히 글감으로 썼을 줄 알았는데 지금 찾아보니 없다. 신기한 일이다.

수강 신청에 유난히 약했던 나는 앞으로 학교 생활 내내 경험할 최초의 저주를 맛보고 있었다. 원하던 수업은 하나도 못 넣은 나는 마지못해 이야기했다. '철학?, 이거 들어도 괜찮나?' PC방 옆자리 친구가 만류한다. '야, 그거 교수님 완전 괴짜래. 나중에 학점도 예측이 불가능하대. 듣지 마' 물어보나 마나다. 들을 수업도 없고 뭘 바꿀 만한 근성도 없었다. '에이 뭐, 어떻게 되겠지. 걍 넣어'

실제로는 두 번째 수업이었던 교양 철학수업이었다. 첫 번째 수업은 휴강이어서 사실상 교수님을 처음뵈는 자리였다. 교수님은 10분 느지막이 들어와서 말했다.

'어차피 너네 지금 수업에 관심도 없잖아? 그냥 이야기 하나 듣고 가서 날도 더운데 맥주나 한잔해'

모든 수강생들의 입이 늘어진다. 이게 웬 횡재냐 싶다. '저렇게 이야기해 놓고 1시간 15분 꽉 채워서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라고 같이 수강신청에 망한 친구가 속삭인다.



의외로 이야기는 약 5분 만에 끝났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옛날옛적에 사울과 바울이라는 두 친구가 살았다. 사울은 감각대로 살아가는 친구다. 그런데 운이 참 좋아서 시험공부를 벼락치기로 해도 벼락치기에서 공부한 부분이 90% 시험에 반영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바울은 그 반대다. 매일 부지런하게 공부한다. 시험기간 2달 전부터 예습복습이 확실하다. 그런데 잠깐 못 봤던 페이지에서 시험 문제가 하나 꼭 나온다. 물론 시험점수는 바울이 더 좋지만 사울이 한 두 문제 차이로 뒷 등수를 차지하니 바울 입장에서 부아가 치민다.
어느 날 옆동네에 신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흐른다. 소문은 흘러 흘러 두 친구에게 들어온다. 사울은 고민의 흔적도 없이 자리를 일어나며 외친다. '이건 진짜 신이다. 난 가봐야 해' 그리고선 그 자리를 떠나선 돌아오지 않는다. 바울도 사실은 신의 존재가 느껴진다. 그런데 사울이 아무 의심 없이 일어난 모습에 다시 한번 부아가 치민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여 신이 진짜인지 파악해 본다. 열심히 파악한 바, 진짜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바울은 사울을 따라가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며칠 뒤, 신이 마을에 당도하고 믿지 않는 바울은 사형에 처해진다.

꽤 재밌게 설명을 하던 교수님은 다소 찝찝한 결말에 덧붙여 이야기한다.

'뭐 철학교수가 종교이야기하는 건 아닐 거라는 거 여러분들은 뻔히 알 것이고.. 말하자면 '일관성'에 대한 이야기니까 맥주 마시면서 시간 있으면 천천히 생각해 봐. 살아가면서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선 마치 사울이 옆동네의 신을 찾아가듯 교수님은 유유히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아주 잠깐 들었던 이야기가 불혹이 되어가는 지금도 머릿속 한 곳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일종의 불안의 감정과 함께 항상 같이 찾아오는 이야기다.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한마디로 표현하면 '변덕쟁이'다. 좋게 말하면 어느 방향이든 이해가 빠르지만 나쁘게 말하면 그 어느 곳에서도 서있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변덕이 마음에 들어올 때마다 5분짜리 사울과 바울의 이야기가 귀에 맴돈다. '일관성'이 없는 변덕쟁이는 어떤 허무한 결말을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며칠 전 친구 A를 만났다. 최근에 이직한 친구 A는 마음으로 아끼는 친구다. 서로 많이 다르지만 멈추지 않는 방황 (나는 변덕에 가깝지만)에 대해 항상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 친구의 최근의 이직은 상당히 오랜 방황 끝에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그리고 친구는 어떻게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거다. 그 움직임에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나는 '변덕쟁이'이기 때문에 왠지 그 반대편에 서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직접적인 말을 던지지 않았지만 각종 은유를 통해서 '왜 너는 그렇게 늙을 거야?', '너는 그대로 충분한 거야?', '그렇게 안정적이어도 된다고?'라는 화살을 던졌다. 어쩌면 방황의 길 위에 함께 있었던 친구가 안정의 길을 찾아간 것에 변덕이 난지 모르겠다. 이 친구도 당연히 티 나는 은유를 이해했고 단단해진 자아(혹은 본인도 노력하는 자아)로 '선택한 방향에 대해서는 존중해 달라'는 이야기를 어른답게 그리고 직선적으로 해왔다.



또 다른 친구 B는 친구 A와 비교하자면 조금 더 유연했다. 굳이 예술가와 일반인으로 구분하자면 B는 예술가의 삶을 택한 것이다. B의 사고의 메커니즘은 내가 알 수가 없지만 난 그런 B가 좋다. 어쩌면 B를 포함한 예술가를 계속해서 동경해 온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변덕쟁이'는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할 때부터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예술가는 변덕쟁이가 아니라 내부의 갈등을 하나의 예술적 자아로 풀어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예술가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모든 예술가가 그렇듯이 그냥 그렇게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B는 그 삶을 선택했다. B는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결과가 좋아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당연히 잘될 것이라는 나의 믿음도 있다. 그런데 변덕쟁이인 나는 B의 자유로움이 부러우니 한마디를 던진다. '삶을 더 단단히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닐까?' B의 사려도 고고하고 깊다.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을 움켜쥐고 삼킨다. 변덕쟁이는 완벽한 빌런이 된다. B가 잘될수록 빌런은 자신의 한말을 반성해야 한다.



친구 A와 B의 마음을 깊게 이해하면서도 변덕을 부리는 횡포는 부끄럽기만 하다. 사실은 '나의 결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라는 비교하는 심정보다는 가까운 이들이 사울과 바울의 삶을 선택해 나가는 모습에 변덕적 자아는 겁을 먹은 것 같다. 허무만큼 무서운 결말도 없다고 5분짜리 이야기의 결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이놈의 변덕은 대체 어디가 끝이고 언제까지 경계에만 서있을건지. 그리고 언제까지 그렇게 고고한 척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지 않고 방관하면서 유리한 방향의 입장만 고수할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 안의 자아와 이야기를 시도해 본다. '너희들은 대체 왜 다 다르게 날뛰니?, 일관성을 가질 수 없겠니?'라고 묻자 하나하나 대답한다.

1번 변덕이가 대답한다. '너, 네가 일관성을 가졌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 모르겠어?',

2번 변덕이가 뒤를 잇는다. '너는 그렇게 남들이 이상해하는 고민을 하기 때문에 눈치가 빠른 거야. 그게 널 먹여 살리는 거 아니었어?',

3번 변덕이는 관심이 없다. '난 모르겠고 술이나 한잔하시던가'

4번 변덕이는 비로소 이야기한다. '그럼 노래를 하나 듣고 글을 써봐'


4번 변덕이의 말에 오랫동안 이상하게 끌렸던 노래인 요네즈 켄시의 '지구본'을 틀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TEOZnpGJdKE&list=RDTEOZnpGJdKE&start_radio=1

僕ぼくが生うまれた日ひの空そらは 高たかく遠とおく晴はれ渡わたっていた
내가 태어난 날의 하늘은 높고 아득하게 개어 있었어

行いっておいでと背せ中なかを撫なでる 声こえを聞きいたあの日ひ
다녀오라며 등을 어루만지는 목소리를 들었던 그날

季き節せつの中なかですれ違ちがい 時ときに人ひとを傷きずつけながら
계절 속에서의 엇갈림 속에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光ひかりに触ふれて影かげを伸のばして 更さらに空そらは遠とおく
빛에 닿아 그림자를 뻗어 하늘은 더욱 아득히

風かぜを受うけ走はしり出だす 瓦礫がれきを越こえていく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 시작해 잔해를 넘어가

この道みちの行ゆく先さきに 誰だれかが待まっている
이 길이 향하는 곳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어

光ひかりさす夢ゆめを見みるいつの日ひも
언제나 빛이 비치는 꿈을 꿔

扉とびらを今いま開あけ放はなつ 秘ひ密みつを暴あばくように
지금 문을 열어젖혀, 비밀을 파헤치듯

飽あき足たらず思おもい馳はせる 地ち球きゅう儀ぎを回まわすように
질리지도 않고 떠올려, 지구본을 돌리듯이

僕ぼくが愛あいしたあの人ひとは 誰だれも知しらないところへ行いった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갔어

あの日ひのままの優やさしい顔かおで 今いまもどこか遠とおく
그날 그대로의 상냥한 얼굴로 지금도 어딘가 먼 곳에

雨あめを受うけ歌うたい出だす 人ひと目めも構かまわず
비를 맞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남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고

この道みちが続つづくのは 続つづけと願ねがったから
이 길이 계속되는 건 계속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야

また出で会あう夢ゆめを見みるいつまでも
언제까지나 다시 만나는 꿈을 꿔

一ひと欠片かけら握にぎり込こんだ 秘ひ密みつを忘わすれぬように
한 조각 움켜쥔 비밀을 잊지 않도록

最さい後ごまで思おもい馳はせる 地ち球きゅう儀ぎを回まわすように
끝까지 떠올려, 지구본을 돌리듯이

小ちいさな自じ分ぶんの 正ただしい願ねがいから始はじまるもの
작은 나의 올곧은 소망에서 비롯되는 것

ひとつ寂さびしさを抱かかえ 僕ぼくは道みちを曲まがる
외로움 하나를 껴안고 나는 길의 방향을 바꿔

風かぜを受うけ走はしり出だす 瓦礫がれきを越こえていく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 시작해 잔해를 넘어가

この道みちの行ゆく先さきに 誰だれかが待まっている
이 길이 향하는 곳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어

光ひかりさす夢ゆめを見みるいつの日ひも
언제나 빛이 비치는 꿈을 꿔

扉とびらを今いま開あけ放はなつ 秘ひ密みつを暴あばくように
지금 문을 열어젖혀, 비밀을 파헤치듯

手てが触ふれ合あう喜よろこびも 手て放ばなした悲かなしみも
손이 맞닿는 기쁨도, 놓아주었던 슬픔도

飽あき足たらず描えがいていく 地ち球きゅう儀ぎを回まわすように
질리지도 않고 그려가, 지구본을 돌리듯이

어쩌면 '변덕'도 '일관성' 중에 하나가 아닐까?

백번 양보해서 변덕도 일관성이라면 좀 세련되었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광고보다 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