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걷기 시작한 사람의 지침서

(명사에서 동사의 온톨로지 시대로)

by Paz

태초의 인간은 동사로 이루어진 삶을 살았다.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짓고 배설을 하며 생식을 했다. 생존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처절하게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냥을 하다 자칫 다치기라도 하면 상처가 곪아 죽는다. 가을에 서리라도 잘못 내리면 겨울에 굶어 죽는다. 과거보다는 조금 더 나아졌다는 생각이 머릿속 한 공간에 자리하면 어김없이 대자연은 잔혹한 현실을 목숨의 상실을 통해 일깨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고 효율화시키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언어를 만들고 관념을 부여하여 소통의 효율성을 도모했다. 이미지가 생겨나고 은유가 살아나며 서사가 생겨났다. 이야기를 통해 위험은 다음 세대에 구전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했다. 그렇게 끊임없는 노력 끝에 비로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안전한 곳에 옮겨 두고 관념적인 단어를 통해 그 보금자리에 이름을 붙였다. 대장장이, 농부, 목수 등 자신의 존재는 사회 안에서 하는 일과 동일시되었고 그 단어는 나의 역할로서 내 자리를 지켜준다. 그리고 관념화는 가속되어 결국엔 의사, 변호사, 전략가, 기획자, 개발자 등 누가 들어도 명확한 이미지를 제공하거나 이름만 들어서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조차 모를 명사 뒤로 사람을 숨겼다. 사람들은 그 뒤에서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명사의 세상은 커졌다. 문제는 관념화된 명사 뒤로 들리는 커져가는 개인의 비명이다. 그룹으로 나누고 이미지로 정한 '명사'의 세상은 소통과 인식의 효용성이라는 거대한 선물을 문명에게 주었지만, 한편 명사 뒤에 숨겨진 필연적인 모호성에 의해 피해자가 생겼다. 어쩌면 모호성에 의한 운명의 비극이 가장 인간적인 서사일 수도 있다. 인간이 애정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의 일으킴도 동사로 쉽고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명사'의 세계관은 인간다움의 본질일지 모른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명사 뒤에 숨겨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지쳐만 간다. 억울한 개인들은 관념화가 가져온 문명의 효율보다는 더 정확한 사실의 세계를 갈구한다. 그렇게 새로운 기술은 탐구되었고 문명을 사실에 가깝게 만들 이성적 기계를 만들어낸다.


이성적 기계를 마주한 한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그녀가 아무 이유 없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코 끝의 날카로운 부분이 유난히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이성적 기계는 이유를 찾아내는데 효과적이다. 그렇게 '이상형'이라는 두루뭉술한 명사를 하나둘씩 동사화된 이유로 바꿔 넣는다. 세상 행복한 작업이다. 그녀에 대해 더 깊이 사랑하고 알아가는 것 같다. 단순히 '이상형'이라는 이유로 얼버무릴 필요가 없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를 천 가지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코끝의 약 2미리 반경이 근처의 다른 피부 조직보다 더 밝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코끝의 2미리는 왜 더 밝은 걸까? 태생적으로 그런 걸까? 그쪽의 피부조직만 다른 걸까? 이성적 기계는 계속해서 동사의 설명을 종용한다. 지금까지 찾아낸 천 가지의 이유는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걸 충분히 증명해 주지만 코 끝 2미리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결국 그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 비밀이 궁금해 참을 수 없어진 그는 그녀가 잠든 사이에 그녀의 코 위에 현미경을 대본다. 현미경을 통해 비춰본 코 끝 2미리 반경에는 작은 무수한 구멍들이 있고 구멍 하나하나에 모낭충이 웅크리고 있다. 어느새 '이상형'이라는 단어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는 또 다른 거대한 명사와 관계성이 사라진다. 웅크리고 있는 모낭충이 아름답다는 인식에 도달하지 않는 한, 이상형에 대한 아름다움은 영원히 상실되고 단순히 인간의 코 위의 피부 조직에는 모낭충이 웅크리고 있다는 사실만 남는다.

애초에 '이상형' 혹은 '아름다움'이라는 명사로 된 세상이 너무 안일했던 걸까? 아니면 이성적 기계의 부작용일까.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러한 동사로 된 사실이 모이면 피부 개선에 쓰일 요긴하고도 소중한 자료가 되는 것 만은 분명하다. 이것은 인류의 발전의 초석일 거다. 더 좋은 피부를 가지고 더 오래 살아갈 수 있는 단서를 찾는 거다. 다만 모낭충의 아름다움을 동사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아름다움이라는 인간의 언어는 다시 돌려받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성의 기계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세상을 새롭게 보아야한다. 명사의 세계에서 동사의 세계로 이행해야하고 이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한동안 세상을 휘감아칠 흐름에서 도태되기 쉬워진다. 이 지침서는 '비로소 (다시) 걷기 시작한 사람'을 위해서 썼다.

지침서라고 이야기할만한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자의든 타이든 이제, 명사로 쓰인 역할의 가면을 벗고 세상에 흐름에 따라 동사로 세상과 자신의 생존을 이해해야 할 사람들을 위한 작은 팁이다. 물론 첫 번째 독자는 나 자신이다.




하나.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사건이 있다면 사건을 해석하지 말고 그대로 보여줄 것

둘. 나 자신이 해석한 세상을 구태여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들려주지 말 것

셋.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공명하고 싶다면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사례를 제시할 것

넷. 머릿속에 있는 명사의 세계관으로 동사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 것

다섯. 명사의 세계가 그리운 나머지 나는 서사가 있는 사람이라고 으스되는 행동을 하지 말 것

여섯. 관념적 깊이를 강요하지 말 것

일곱. 어설프게 동사의 세계를 아는 척하고 따라하지 말 것 (지침서 '넷'의 연장선)

여덟. 조용히 침잠할 것

아홉. 답이 없어 보여도 두려워하지 말고 뭐든 주워서 담을 것

열. 지침서의 내용을 읽고 모두 이해했어도 서사를 잊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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