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교토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

1장 - 미츠이 가든 교토 산조 프리미어

by Paz

[들어가며]


'깊이 있는 것들에 대한 탐색'이라는 주제로 앞으로 채워져 갈 것들을 무엇이라 부를까 고민해 본다. 아무래도 큐레이션(Curation)일까? 검색을 통해 확인한 사전적 의미의 핵심은 '수집'과 '추천'이다. 수집이라는 내가 하려는 행위의 본질에 가깝지만 추천에서 망설여진다. '과연 내가 이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의도로 쓰는 글일까?' 추천이라는 단어 아래서 내가 제공하는 정보는 대중적이지 않다. 주제를 찾는 사람들이 의례히 기대하는 정보 꾸러미가 있을 텐데 난 그것을 제공하지 않을 거다. 어쩌면 어떤 정보는 의도적으로 무시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큐레이션은 맞지 않겠다.

개발용어에 역설계(Reverse Engineering)이라는 용어가 있다. 서비스가 완성되기 전까지의 순서를 역으로 추적하고 분석함으로써 전체를 파악하고 개선점이나 또 다른 것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역설계는 논리적 코드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나의 행위 다른 점이 있지만 목적과 행위의 방식은 비슷한 것 같다. 큐레이션의 '수집'과 역설계의 '해체'를 합쳐 놓은 일을 뭐라고 해야 할까? 큐-리버스(Cu-Reverse) 정도가 좋으려나? 아무튼 의도만 전해지면 된다. 앞으로 '수집'하고 '해체'할 예정이다. 물론 해체의 키는 나 자신의 관점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대중적으로 공감이 가지 못한 부분도 많이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때문에 더더욱 '추천'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물]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건 뭘까? 내 경우에는 단연코 '물'이다. 수많은 SNS 속 건강 피드가 강조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응당 일어나자마자 수면동안 부족했던 '물'을 보충하고 싶기 마련이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나는 물을 정성껏 전기주전자에 받아 끓이고 차를 끓여낸다. 오늘은 특별히 아들이 손님으로 내 방에 방문하여 의자를 끌고 앉아서 글 쓰는 작업을 구경한다. '어쩔 수 없지'. 꿀을 조금 준비해서 민트 티백을 아들의 찻잔에 먼저 우려낸다. 그리고 남은 티백을 가지고 오랫동안 마시기 위해 많은 양의 물을 붓는다. 단순한 작업이지만 어쩌면 이 시간을 살아내기에 가장 평범하지만 밀도 있는 시간일지 모른다. '이 차에서는 좋은 향이 나서 입안이 즐거워'라는 아들의 말에 나는 우쭐하며 있지도 않았던 '아빠의 특제차'라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물'의 노예다. 인간의 몸의 절반이상이 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의 연장선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술과 차는 결국 물이 근원이다. 그 물이 다양한 물질과 만나서 만들어내는 향과 맛을 나는 많은 시간을 들여서 탐구한다. 그뿐만일까. 술과 차 이외에 가장 즐겨하는 것은 욕조에서 책 읽기다. 유년기 살던 본가에는 욕조를 따로 두지 않았는데 독립하면서 생긴 욕조는 내가 제일 아끼는 일순위 보물이다. 미래에 금전적으로 조금 더 넉넉해지면 편백나무 욕조를 설치하고 싶다는 오래된 꿈도 있다.

술과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한 문단에 끝낼 순 없다.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에는 술과 차를 유일한 대체재라고 보는 선조들의 지혜가 있었다. 유려한 문장이 하나하나 생각나지 않지만 정리해 보면 술을 대체할만한 향과 맛에 대한 유희는 차밖에 없다는 말이다. 아직 차로 술을 이기는 해피엔딩을 발견하지 못한 나지만 미루어 짐작하면 동감할 이야기다. 아무래도 더 많은 세월이 흘러 평온함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나의 절반을 채우게 되면 갑자기 술을 끊고 차를 마신다는 선언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중요한 이야기는 결국 같은 '물'을 근원으로 술은 열정에 기름을 붓고, 차는 냉정에 물을 끼얹는 작용을 하는 것을 보니 어쩌면 한평생 '물'을 잘 다스리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과 맞닿아있는 것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교토]


평소 업무의 연장선으로 일본으로 출장이 잦은 편이다. 출장지는 도쿄다. 도쿄에서의 삼일 혹은 나흘은 밀도가 상당히 높다. 업무라는 것의 특성 자체가 사람의 밀도를 높이지만 도쿄라는 동네 자체가 주는 기본적인 밀도가 높다. 신주쿠역만 해도 그 출구가 몇 개던가. 한 음악 서비스의 광고에서 신주쿠역을 귀멸의 칼날의 무한성에 비교한 영상을 보면 공감의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도쿄라는 도시는 희로애락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곳이다. 같은 회식이어도 다양하고 뜨거운 음식에 고양된 나머지 조금 더 마시게 된다. 음식의 다양성으로만 따져도 도쿄는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이 흐르고 귀국하는 공항에 도착하면 어쩐지 몸이 세배는 부어버린 느낌이다. 실제로 부은 것도 있겠지만 한 사람이 받아들일 정신적 밀도를 넘어 들이마셔버린 도시가 나를 풍선처럼 부풀린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개인 여행이라면 단연코 '교토'로 향한다. 교토는 그 많은 관광객에도 불구하고 심적 밀도는 낮은 곳이다. 그래서 자주 찾게 된다. 오사카는 도쿄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애초에 간사이 공항부터 오사카를 가로질러버린다. 그렇게 신 오사카와 오사카역을 지나고 교토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기차 창밖을 바라보면 산토리 위스키 공장이 보인다. '아 이제 거의 도착했구나'라고 생각한다.

위스키 공장에서도 유추할 수 있지만 교토는 '물'의 도시다. 그들이 자랑하는 두부, 사케(니혼슈)등은 물이 중요하다. 물의 청결함도 중요하지만 포함된 성분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경수와 연수의 차이는 알고 있다. 독일에서 사계절을 지내본 나에게 경수의 무서움은 분명하다. 항상 뻑뻑한 느낌의 경수의 무서움은 여러 가지 루머를 생산했다. '독일 유학생은 에비앙으로 세수한다며?'에서 '독일 사람들은 물이 나빠서 맥주를 만들어 먹었대'등 상당히 많은 버전이 있다. (맥주와 경수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실제인듯하다) 딱 그 반대가 교토의 경수다. 경수는 기본적으로 부드러움을 지향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경수에서 씻고 나면 피부가 부드럽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위스키나 사케등 술에 있어서도 그 알콜향이 강하지 않고 부드럽게 만드는 특성이 물과 큰 연관이 있다고 한다. '정말 좋은 술은 물에 가까워'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물과 술의 연관성은 크다. 물이라는 단어로 교토를 바라보면 재밌는 상상도 가능하다. '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카페(커피)도 발달하나?' 누가 알까? 실제로 그럴지.



[미츠이 가든 호텔, 산조 프리미어]


고급 호텔에 대한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다. 결국 고급이라는 것은 그 끝이 없어서 한도 끝도 없이 확장하다 보면 나의 경험이 닿지 못하는 영역이 항상 있을 거다. 아주 일반적인 관점에서 호텔을 들여다본다. 서비스에서 공간 구성 혹은 동선에서 나오는 배려 등이다. 경험이 늘어갈수록 (혹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관찰의 기준은 더 늘어나는데 까다로운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만 최근에 아주 간단한 지표가 생겼는데 바로 첫째 아들의 '호텔' 인증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어떤 숙소에 갔을 때 아들이 '호텔'이라고 하면 대부분 고급 호텔이다. 한편 호텔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이름에 붙어있어도 아들이 '호텔 아냐'라고 하면 영락없이 뭔가 부족한 곳이다. 어떤 기준을 사용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뭐 아이들의 오감정도가 아닐까.

미츠이 호텔은 체인점의 정점이다. 체인이라는 것은 결국 효율성과 확장에 그 가치가 있다. 서비스의 본질을 올리려 노력하겠지만 효율성과 확장이라는 확실한 마지노선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서비스는 정의되기 마련이다. 완전한 프라이빗과 초고가를 추구하며 소수의 만족을 위한 컨셉이 아니라면 절대적으로 그렇다. 그렇기에 여행에서는 위치를 중심가치로 사진 몇 개를 골라보며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다음에는 예산이다. 사진도 괜찮고 리뷰도 좋은데 예산 범주에 들어오면 결제를 망설일 필요가 없다. 미츠이 가든 호텔 산조 프리미어가 딱 그 범주에 있었다.


도착하니 역시나 위치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담한 건물이지만 순간 '교토스럽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작은 입구를 통과하여 길게 나있는 통로의 조명은 꽤 어두웠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라는 책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의도된 그늘일까?' 의도된 그늘까지 기대하진 않았기 때문에 우선은 깊은 생각은 않기로 했다.

체크인은 소파에 앉아서 한다. 각 직원들이 전담하여 체크인을 돕는다. 체크인 중 웰컴티도 메뉴판까지 준비해서 챙겨주는데, 뭐랄까 료칸의 친절함과는 차이가 있다. 완벽한 가이드에 의해 만들어진 오모테나시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좋다. 체인점에서 가이드된 서비스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지에 대해서는 각자 다른 기대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애초에 수십만 원짜리 일류 료칸과는 다른 서비스일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에 그 프로세스에 의한 서비스는 과함도 부족함도 없다.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을 제외하면 큰 문제없이 체크인을 마친다. 호텔이 서로 다른 두 개의 건물은 붙인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객실까지 찾아가는데 미로 같은 곳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중간중간에 중정 같은 곳을 두어 시선을 분산시킨다. 시선이 분산되지 않을 때 바닥 카펫을 보게 되는데 색의 조합이 남색과 주황색이다. 이것은 미츠이 브랜드 이미지의 색과 일치한다. 크게 모나지 않은 호텔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방도 괜찮다. 여행을 한다. 지쳐서 호텔에 들어올 때 다시 경험은 이어진다.

호텔의 특이점은 대욕장이라고 부르는 지하의 시설에서부터 시작한다. 최대한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객실키를 사람의 수만큼 발급해 주고 각 객실키를 대욕장의 키로서 사용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조용한 공간에 아주 조용한 음악이 가득 찬다. 사실 혼자 들으면 무서울 수도 있는 음악이지만 뭔가 동굴 안에 들어온 느낌으로 대욕장에서 쉴 수 있게 한다. 욕조에서 나오면 미끄러워진 피부가 느껴진다. '어? 이거 엄청 미끄럽네? 온천 수는 아닌 것 같은데 물에 뭘 한 건가?' 이때 머릿속에 '물'이라는 단어가 들어오고 갑자기 스쳐 지나갔던 호텔의 주요 시설들이 떠오른다.

호텔 로비 한편을 크게 차지하는 치즈 전문점이 있다. 치즈는 우유와 물이 핵심이다. 이 치즈 전문점에서 조식에 신선한 리코타 치즈를 제공한다. 다른 한쪽 깊은 곳에는 YBar라고 하는 사케(니혼슈) 전문 바가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지역사케를 전문 소믈리에에게 서빙받으며 그 스토리를 들을 수 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이곳의 컨셉은 확실히 '물'이다. 체인의 효율성과 확장성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나머지 '물'을 스토리로 깔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서야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까지 한다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표준화된 경험이 부릴 수 있는 사치의 극단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살아간다는 것]


'일상이 여행이 되도록'. 이 비슷한 말들의 광고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차가운 이야기지만 일상은 여행이 아니다. 말장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일상이 여행이었다면 왜 굳이 '여행'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쓸 필요가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이 여행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 묻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여행을 원하는 걸까?

일상은 지루함의 영역으로 인식된다.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보고 기존과는 다른 맥락의 이야기를 인생에 흘려 넣음으로써 삶을 조금 더 다양한 관점에서 살아가게 된다. 여행이 계속되면 경험의 밀도가 너무 높아져서 나 자신의 밀도의 한계치가 높아진 채로 여행도 일상이 되거나 혹은 높아진 밀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어딘가 내가 원하지 않은 모습으로 완전히 변해버릴지 모른다. 그래서 일상과 여행이라는 말속에서 우리는 각자에게 맞는 균형을 잡고자 한다.

표준화된 서비스는 그 항상성 측면에서는 여행보다는 일상에 가깝다. 그런 표준화된 서비스가 지역의 의미를 기꺼이 담아내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도를 하는 것은 무슨 의미 일까? 여행 전체에서 많아야 3분의 1 정도의 시간을 사용하게 될 표준화된 호텔에서의 진정성 있는 시도는 최소한 나로 하여금 '교토에 살아보고 싶다'라는 감정을 남겨주었다. 물론 살아간다는 일상의 영역에서의 교토는 내가 여행하고 있는 교토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준화의 극단에서 보여준 그들의 이야기는 한번 정도 이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교토라는 동네의 진정성이라면 나 또한 기꺼이 그 흐름을 내 일상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일으키게 한다.

지금은 다시 서울에 와서 일상을 지내고 있지만 그들의 귀띔해 준 '물'에 대한 서사를 간직하고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집에 물이 좀 센 것 같으니 연수기 좀 설치하는 게 어떨까?'라고 말하는 시시한 남편의 모습이지만 교토에서 느낀 물처럼 흐르는 서사가 내 인생에 흘러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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