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주는 무게감 < 살이 주는 무게감
그렇다, 내게도 스스로의 외모에 한 점 부끄럼 없었던 때가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 열이면 아홉은 '제 친구랑 진짜 닮았어요' 라거나'완전 똑같이 생긴 오빠 있는데' 따위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을 정도로
평범한 평평함
미적 허용을 넘어선 여백의 미
이렇게 작을 필요가 있을까 싶은 이목구비
를 가진 나이지만, 그래도 열의 하나는
평평함이 주는 안정감을
여백의 미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을
작은 이목구비에 걸맞는 안빈낙도의 소박함을
사랑해 주는 이가 있었을 정도로 (비록 간신히 혹은 우연히 찾아냈겠 지만) 내게도 스스로의 외모에 한 점 부끄럼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보았다,
내생애 최고의 몸무게를.
33
기러기가 날아가는 형상이 아닙니다,
뽀뽀를 갈구하는 연인의 이모티콘도 아니지요,
소화되지 못한 잔여물이 만들어낸 공기의 배출일 순 있겠군요.
이것은 다름 아닌 내가 먹은 나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이라고들 하지만 그 숫자가 건네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허나 그 정도의 슬픔은 감히 명함도 못 내밀만큼 더 크나큰 슬픔을 대동한 숫자를 오늘 받고야 만 것이다, 그것은 바로
78
강타 이지훈 신혜성의 탄생연도가 아닙니다,
78에 56은 더욱 아니지요,
두뇌풀가동.
그저 내게 주어져 마땅히 견뎌내야만 하는 중력과도 같은 숫자이다. 그저 나이만 먹은건 아니구나,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먹긴 했으니 견뎌내야지, 암 그렇고 말고.
슬프지만 외롭지는 않다. 왜냐하면
볼살과 뱃살
삶이 주는 무게감보다 커진 살이 주는 무게감
거울에 비친 낯선 중년의 몸과 보란 듯 우뚝선 배
가 함께 와주었기 때문에.
나이와 무게
허무와 고독
미련과 미안
늘어나는건 많은데 까닭모를 허전함이 가득한 요즘의 삶.
웃을 일이 아니에요,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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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8
삼천포에 진짜 인생이 있다고 믿었던 시절은 어디로
삼거리포차에서 이성을 유혹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시절은 어디로 갔을까.
칠수 있는 공만 치고 치기 싫은 공은 치지 않는 삶을 꿈꿨던 그 시절은 또한 어디로 갔을까.
팔자 좋았던 시절이었을까, 혹은 팔팔했던 시절이었을까? 무엇인들 그리웁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