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왔지만 코로나는 떠나지 않았다. 휴가철이 왔지만 사람들은 그래서 떠나지 못했다. 그 많은 사람들은 그럼 어디로 갔을까?
라는 물음을 비웃듯 호텔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호텔인 신라호텔의 문턱이 이렇게 낮았던가? 라는 물음을 비웃듯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구두쇠인 나조차 넘고 있었다, 보릿고개가 아닌 신라호텔의 문턱을.
(위) 신라호텔 로비
짐을 들어드릴까요? 라는 물음에 적잖이 당황한 채 체크인을 하고, 23층 라운지에서 에프터눈티를 음미하고, 그 라운지에서 해피아워를 즐기고, 막간을 이용하여 프로포즈를 성황리에 마치고, 결 좋은 침구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또 그 라운지에서 조식을 즐기고, 짐을 맡겨드릴까요? 라는 물음에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체크아웃을 하고, 익숙해진 그 라운지에서 브런치를 찢는 행위를 마지막으로 ‘신라사육 24시간’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맛에 호캉스를 가는구나! 라는 깨달음도 잠시,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 위에 남아 텅 빈 객석을 바라보는 배우가 된 것 마냥 호캉스를 반추해보았다. 그곳에는 정적만이 남아있고 고독만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다음의 세가지가 부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1. 땀
여름의 한가운데 떠난 여행이었으나 땀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사우나를 제외한 모든 장소가 에어컨의 관할 하에 있었기에 더움은 용납되지 않았다. 또한, 고객이 땀을 흘리게 해서는 안 되는 시무20조와 같은 업무규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인 빈틈없는 서비스 덕분에 어떠한 수고스러움도 없었다.
2. 이변
네 차례 정해진 시간에 라운지를 가고, 사이사이 수영장, 헬스장, 산책로를 간다. 칫솔을 안 가져와서 당황하거나 수건이 부족해서 곤란할 일도 없다. 모든 어메니티는 완벽을 추구하고 있다. 사고나 기적과 같은 이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신라사육이다.
3. 타자
이 사람이 저 사람 같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동일한 상황에 놓인 모든 고객은 결국 동일화된다. 신라호텔의 23층 라운지에는 나르시시즘만이 존재한다.
호텔에 머무는 동안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몇 번이고 들었다. 여기서 성공이란 돈을 많은 버는 것을 의미한다. 땀, 이변, 그리고 타자가 부재한 삶은 적어도 이 시대에서는 성공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라는 물음을 누군가 내게 던진다면, 망설임 없이 안나푸르나라 말할 것이다. 인체의 3분의 2는 수분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많은 땀을 흘렸고, 헤드라이트가 없어 어둠을 헤매게 된 이변이 있었고, 정상에서 컵라면을 건네준 타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낭만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위) 푼힐에서 일출 감상
돈을 많이 벌고, 남들이 부러워하고, 스스로에게 취하고, 그러다 또 다른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스스로를 비교하고, 그러다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리라.
(위) 프로포즈 순간
하지만 애석하게도 신라호텔과 디올이라는 거대 자본의 힘을 빌린 덕분에 땀과 이변 없이 타자에게 내 사랑을 내던질 수 있었다. 자본주의, 로맨틱, 성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