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
이런 바보가 있나,
정확히 말하자면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세운상가 앞에서 만나기로 한 그 남자는 바버를 입고 있었을 뿐, 그리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을 뿐. 불타는 금요일 밤, 그것도 다름아닌 세운상가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 부류는 어떤 이들일까? 무심하거나 혹은 낭만에 대하여 일가견이 있거나, 둘 중 뭐가 되었든 양극단에 있으리라. 다행스럽게도 두 남자는 낭만에 대하여 다소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첫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서촌의 한 한옥 카페에서 글쓰기 수업이 막 시작하려는 참이다. 독립출판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작가가 수업을 맡았는데, 소문대로 잘생겼다. 다채로운 수강생들이 속속들이 입장하고 소문에 의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여성이 주를 이루었기에 두 남자는 자연스레 눈에 띄었다. 한 남자는 아내와 함께 수업에 참여했고, 다른 한 남자는 외로움과 함께였다. 수업은 수업답게 흘러가 끝이 났고 그 후 몇 번의 만남이 있었으나 둘 사이에 불꽃을 만들기엔 충분치 못하여 두 남자의 관계는 종말을 맞이하는 듯 했다.
그리고 1년이 흐른 어느 날, 봄이라기는 춥고 겨울이라기에는 더운 어느 날, 세운상가 앞에서 두 남자는 바버를 입은 채 다시 만났다. 둘은 서로를 향해 웃었고 자연스레 모텔에 들어가 사랑을 나누었다,
면 두 남자는 그야말로 낭만에 대하여 다분히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둘은 손만 잡았다, 독립출판계를 뒤집어 놓자는 다짐과 함께.
이런 바보들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