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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설화 May 23. 2019

'아내', 내것이란 이름의 욕심

 그 날, 나는 일기장을 갖고 밖으로 나왔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나를 알 시간이 갖고 싶었다.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유튜브'를 벗어나고 싶었다. 너무 답답했다. 






 집을 나서기 전, 스타벅스에 가겠다고 나는 애인에게 말했다. 애인은 순진한 얼굴로 알겠다고 말했다. 그 때, 그는 방청소를 하고 있었다. 며칠 전, 나에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는 나의 방청소를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에야 그것을 할 마음이 든 모양이었다. 나는 화장실 청소를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언젠가 나는 그에게 내 운동화도 빨아달라고 조른 적도 있었다. 사귄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그는 직접 욕실이 있는 제 기숙사에서 내 운동화를 빨아준 적 있었고,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또 빨아달라고 부탁했다. 왜냐하면, 그가 신고 다니는 13만원짜리 나이키 운동화는 내가 사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는 나는 부탁할 수 있었다. 운동화를 손빨래 하는 것과 13만원짜리 운동화를 사주는 것, 그리고 그를 매장에 데려가서 이것 저것 신겨본 뒤에 가장 괜찮은 것을 보여주고, 그의 사이즈에 맞는 것을 찾을 때까지 직원을 부르고, 그의 발에 운동화를 신겨주고, 계산하고 오는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둘 중에 무엇이 더 힘들겠는가? 오늘, 그는 화장실 청소와 방 청소만 한다고 했다. 알겠다고 나는 대답하고 일기장과 노트북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막상 밖으로 나왔을 때 커피가 마시고 싶지 않았다. 최근, 며칠 내내 나는 방송을 하느라 커피를 마셨다. 유튜브에 신경을 쓰느라 밥 대신 커피를 마시는 게 일상이 됐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오후 3시쯤 늘그막히 일어났을 때 애인이 사온 쌀국수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침대에 누운 채 애인에게 '네가 먹고 싶은 것 사와. 블루베리랑 스페인산 붉은색 오렌지 주스는 M&S에서 사오고, 아니, 파인애플 주스를 살까? 아니, 그냥 둘 다 사와. 그리고 네가 먹고 싶은 것은 아무거나 사와.' 라고 나는 눈도 안 뜬 채 말했다. 내 품에 안긴 채 애인은 블루베리 큰 것을 사와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뭐가 먹고 싶냐는 내 질문에 한참을 망설이다 애인은 -음, 음, 음.- 쌀국수를 사와도 되냐고 물었다. 내 품으로 그를 끌어당긴 채 그의 머리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당연하지, 네가 먹고 싶은 건 다 사. 그리고 애인은 화장실 청소를 하는 데 도구가 필요하다며, 1파운드밖에 하지 않는 데 사와도 되냐고 물었다. 기특하다는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대답했다. 당연하지. 네가 원하는 건 -필요한 건- 뭐든 지 사와.


 마침내 애인이 쌀국수와 화장실 청소 도구, 블루베리 패밀리팩과 두 개의 주스를 사왔을 때 나는 미적미적 일어났다. 오후, 애인이 총 두개의 마트를 돌면서 장을 보고, 현금을 인출해서, 현금밖에 받지 않는 쌀국수집에서 두 개의 국수를 테이크 아웃할 때까지 1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기록이 내 핸드폰에 뜨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어디쯤 왔겠군. 아, 이제 슬슬 일어나야지.' 라는 생각만 했다. 결국 그가 내 방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유튜브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먹고 싶어하던 쌀국수를 먹었다. 왜 쌀국수가 먹고 싶었어? 라고 물어보니, "저번에 누나만 혼자서 먹었잖아. 나도 먹어보고 싶었어." 라고 대답했다. 언젠가 그가 내가 방송을 할 때 쌀국수를 사온 적 있었다. 아마도 내가 시켰던가, 자기가 사왔던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아무튼, 너무 옛날 일이었다.


 스타벅스가 마감할 때까지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남아있었다. 왠지 모르게 나 혼자 그 시끌벅적한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도 닦지 않는 테이블 위에 간신히 노트북을 올려놓고, 일기장에 코를 묻고 싶지 않았다. 일기장을 다 쓴 뒤에 이제 뭘해야 되지? 라고 노트북을 보고 생각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커피는 그 뒤에 마셔도 될 것 같았다. 애인은 배가 고프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뭐가 먹고 싶어? 라고 물어보면 '나는 배가 안 고파.' 혹은 '시리얼만 먹으면 돼.' 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습관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애인'이 가난을 섭취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돈이 없기 때문에 시리얼을 먹는 것을 습관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무척 거슬리는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왜 이 친구의 집은 충분하게 돈을 보내주지 않을까? 도대체 얘가 어떻게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환율이 그렇게 올랐는데? '괜찮아.' 어느 새 그 말은 내 신경을 가장 갉아먹는 일이 되어 있었다. 먹고 싶은 건 없어? 괜찮아. 사고 싶은 건? 괜찮아. 이건 어때? 괜찮아. 아니, 나는 그의 수동적인 태도를 빌다시피 해서라도 바꾸고 싶었다. 동시에 그의 경제적 상황에 충격을 먹는 것에 나는 만성적으로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언젠가 나는 캠퍼스 내 그의 방에서 생활한 적 있었다. 그러나 곧 그의 수건의 촉감, 그의 베개의 질감, 그의 방의 넓이 등에 염증이 났던 나는 그가 논문 제출을 하기 무섭게 나의 방으로 도망쳤다. 모든 것이 단순히 내것보다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눈을 뜨자마자 청소를 시작한 애인, 나의 '아내'를 위해서 무언가 해주고 싶었다. 아니, 나는 그를 '남편'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 '아내'라고 부를 때마다 사타구니부터 기분 좋게 만족스러운 감각을 느끼는 게 좋았다. 그가 '남편'이란 단어랑 연결되는 것을 샤브샤브 국물에 스테이크를 집어넣는 것을 보는 것처럼 역겨웠다. 그러나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당장 마트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외선 차단 마스크를 벗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둑으로 몰릴 테니까. 참고로, 애인은 나를 만난 뒤 약 10kg 정도 몸무게가 늘었다. 종종 나는 처음 만났을 때의 그의 얼굴을, 눈 앞에 있는 그와 비교하며, 가슴이 아프도록 그의 얼굴을 쓰다듬곤 했다. 정확히 그만큼의 부피만큼 그는 예산에 억눌려 있었을 것이다. 10kg는 그가 가진 결여의 무게였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내가 채워준 데 감사하고 있었다. -혹은, 자랑스러워했다.- 





  21세기 인류의 산책은 '장보기'로 정의된다. 특히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는 더욱 그렇다. 어떤 종류의 상념도 잊은 채 제품에 생각을 맡겨두는 동안 현대의 인류는 근대의 칸트가 아침 산책을 하면서 느꼈을 법한 인식의 안도를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오늘은 '콜드브류 더블 에스프레소 아몬드 라떼'를 사볼까? 아니야, 그 옆에 초콜렛을 녹인 '모카 라떼'는 어때? 어차피 둘 다 세일을 하잖아. 그리고 나는 커피가 없으면 글을 쓸 수 없어. 하지만 나는 '아몬드 라떼'는 사본 적 없는데. 지난 번에 '모카 라떼'만 두 통을 샀다가 물처럼 마시는 바람에 컵을 입에 갖다놓고 마시지도 못할만큼 물렸던 거 기억 안 나? 그냥 두 개 다 사자. 그런데 이게 성분이 뭐가 든 거지? 왜 다른 것보다 비싼거지? 아, 콜드브류 커피를 60%나 넣었군... ...' 기이하게도, 그동안 나는 정눈꽃도 신영은도 아닌 소비자로서 기능할 수 있었다. 그게 내가 이따금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다. 나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좋아한다. 인간답지 않게 기능할 때, 소비자로서 자본주의의 도구가 될 때, 그러니까, 내가 어제 300분동안 방송을 하고 약 70파운드를 얻은 것의 의미를 찾을 때. 아니,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랐고, 공원이란 교과서 속의 싸구려 그림체로 휘갈긴 나무 몇 그루의 아이콘으로 밖에 배우지 못했다. 강남구와 동작구가 기득권 국회의원에게 빌다시피 만든 공원의 아류들은 스타벅스와 올리브영의 근처에서 가식적으로 구색을 갖출 뿐이었다. 공원, 도대체 그런 곳에 인간은 무엇을 위해서 가는가? 공원이란 곳과 산책을 나는 도무지 연결시킬 수 없었다. 그러니까, 어떤 종류의 '소비'도 '기능'도 없는 곳에서 인간이 마음 편히 쉴 수 있을 리 없었다.


 막 내가 코너를 돌 때였다. 500ml 짜리 물을 12개들이 세일하고 있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그 순간, 오늘 애인이 이 마트에서 2.5파운드를 썼다는 것을 상기했다. 아, 저 물을 사기 위해서 M&S와 멀지만 조금 더 저렴한 마트까지 온 것이군. 그렇게 무거운 것을 들고 1시간 동안 밖에서 돌아다녔다니. 그 순간, 나는 애인이 기특했다. 그 짧은 찰나에 나는 돈을 버는 것의 의미를, 이 친구를 만난 것의 이유를 깨달은 것만 같았다. 흐뭇한 마음을 갖고 나는 음료수 코너로 향했다. 아니, 나는 내 애인이 싸구려를 먹게 할 수 없었다.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먹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 친구의 일상에 '자본이 주는 특권'이 900ml에 3.7파운드를 호가하는 100% 착즙 석류주스처럼 자연스레 스며들기를 나는 바랬다. 나는 그가 가난을 섭취하는 게 싫었다. 그것이 내가 카드에 잔고를 애써 외면하면서 그를 쇼핑에 데리고 나서며, '사고 싶은 것은 전부 사.' 를 외친 이유였다. -그것은 내가 가족으로부터 유일하게 습득한 경제 관념이었다. 영은아, 넌 굶어죽을 일 없어. 할머니가, 아빠가, 엄마가 다 알아서 해줄거야... ...- 그것은 아기의 주먹만큼 작은 통에 화학제품이 들었을 뿐인 데 괜찮은 저녁 식사값을 호가하는 화장품을 내 방에 비치한 이유였다. 나는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 중산층이 바를 법한 화장품 브랜드를 알고 있었고, -유세린, 비쉬, 라로슈포제 등- 그 외의 제품을 내 얼굴에 바른 적도 없었고, 내 애인에게 선물한 적도 없었다. 내 애인의 립밤은 조말론이고, 그의 운동화는 나이키며, 그의 옷은 나의 어머니가 나를 위해 백화점과 편집샵에서 사준 유니섹스 점퍼였다. 내 애인은 나를 만나는 8개월 동안 약 3군데의 해외여행을 다녔고, M&S의 디저트와 주스에 본인의 취향을 찾았으며, 대부분의 비용을 내가 지불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나의" 노력이었다. 아니, 그렇게 돈을 쓰느라 정작 통장 잔고에 0.98 파운드가 찍혔을 때, '블루라군 아이슬란드' 로고가 적힌 샴푸, 컨디셔너, 폼클렌저, 바디워시가 en-suite 개인 욕실에 비치된 것을 멀거니 바라볼 때의 기분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문득 '굴소스'가 눈에 들어온 것은 그 때였다. 평소에 애인이 '돈 아까우니 사지마, 어차피 곧 한국에 돌아가 건데, 다 쓰지도 못할거야.' 라고 말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굴소스는 내가 할 요리에 필수 재료였다. 만일 이것을 구매하지 않으면, 내가 애인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추근덕거리는 중국인 플랫메이트의 것을 빌려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만큼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마트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굴소스를 집어들었다. 그러니까, 1파운드나 세일을 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국은 마트에서 셀프로 계산을 할 때, '비닐봉투를 살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솔직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No bag'을 누르고 나는 계산대 옆에 가난한 사람들의 우울처럼 쌓여있는 비닐봉투를 집었다. 아무튼, 캐셔의 도움없이 내가 계산을 하는 것은 이들에게도 이익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마트를 운영하는 자본가들 말이다. 캐셔를 고용하지 않아도 되니까, 고작 몇 원밖에 하지 않는 비닐봉투를 무료로 나눠주는 게 이득일 것이다. 아무튼, 8개월 동안 나에게 '정말로 봉투를 구매했습니까?'를 물어보기 위해 다가오는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봉투에 담다보니 그게 부족했다. 아니, 오늘 나는 지나치게 무거운 것을 많이 샀다. 그러나 한 장을 더 집는 것은 양심에 어긋났다. 아니, 그렇게 하다가 직원이 찾아와서 물어보면 어떡하나, 싶었다. 마침 나는 영수증을 출력한 뒤였다. 분명히 'No Bag'의 흔적이 있을 것이다. 결국, 164cm-50kg를 지닌 나는 기적적으로 한 봉투에 몇 통의 주스, 굴소스, 가장 비싼 부위의 소고기500g 등을 욱여넣고 밖으로 나섰다. 그제야 나는 내가 무거울 만큼 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애인을 부를 수도 있었다. 청소를 하다가 집 앞 마트로 나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내가 들고 싶었다. 언제나 나는 무거운 것을 보면 내가 들어야지, 라고 생각한다. 남성인 애인이 나보다 체력이 좋은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연약했으니까.' 문득, 내가 스타벅스에 가기 위해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시간을 알기 위해 하늘을 쳐다봤을 때였다. '무료'라는 이유로 내가 애인을 데려가지 않았던 박물관 위로 해가 지기 직전의 하늘이 지나가고 있었다. 잠시 나는 그것을 올려다보다 고개를 내렸다. 마트 앞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 쪽은 스타벅스, 다른 쪽은 집. 그리고 집을 향해 걸어갔다. 아니, 오늘 나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무거운 것을 들고 거기까지 갈 수 없었다. 마트 앞 노숙자는 나와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자연스레 나는 내가 산 것들을 계산했다. 아마도 오늘 두 사람의 식사를 결제하고, 장을 보기 위해서 사용한 돈이면 내가 어제 글을 쓰다 지쳐서 구경했던 금으로 만든 뱀모양의 피어싱을 살 수 있을 성 싶었다. 하지만, 왜인 지 모르게 어플을 확인해서 '정확히 얼만큼의 돈을 썼는 지' 볼 염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점점 더 줄어드는 파운드는 이 관계 속에서 내가 가진 입지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했다. 종종 나는 나의 정체성이 관계 속에서 '액수'로 정의되는 것을 느끼곤 헀다. 애인은 그것을 피해망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현실이라고 불렀다. 


 어차피 결혼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상대방을 위해서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것. 그렇지 않아도 나는 애인에게 결혼을 하자고 수십번씩 말하고 있었다. 낮에 애인이 청소를 시작하기 무섭게 내 책상을 말끔하게 정리한 것을 보고 감동받아 침대맡에 그를 앉힌 뒤 한 쪽 무릎을 꿇고 나에게 결혼해줄래? 라고 말한 것은 진심이었다. 그를 위해 블루라군 리트릿 스파, 아이슬란드의 교외지역 승마를 신청한 것은 그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수십번이나 그는 '아직 나는 어려.' 라는 이유로 거절했지만, 끈질기게 나는 청혼을 하고 있었다. -바로 아랫층에는 내가 언젠가 섹스했던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보라, 지금 애인을 위해서 희생을 하지 않던가? 그를 만나기 전, 나는 Tessuti에서 가방을 사고, Sandro에서 원피스를 샀다. 이제 나는 그런 종류의 쇼핑을 포기했다. 정확히 '그가 먹고 싶은 것을 사주기 위해서.' 하지만, 정말로 그런가? 왜 나는 '희생'이란 단어를 말할 때마다 입안에 모래를 씹는 것 같은 기분이 들까? 이토록 지독하게 그럴듯한 논리에 무언가 빠져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까? 왜 그 이야기를 내가 해선 안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일까. 그러니까,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문득 '그게' 눈에 들어온 것은 그 때였다. 한없이 순진한 얼굴을 가진 아기 인형이 흰색의 드레스를 입고, 같은 색의 머리싸개를 한 채 녹색의 뒤숭숭한 인테리어를 지닌 옷가게의 진열장 밑에 누워있었다. 코벤트리는 부자들이 사는 동네가 아니다. 어떻게든 중국인 유학생 자본을 끌어들이고,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기 위해서 'LGBT 행사'등 다양한 것을 개최하지만, 동시에 이곳은 맥도날드가 대마 냄새를 풍기며 한 푼만 달라고 들어오는 노숙자를 물리치기 위해서 새벽마다 전용 경호원을 비치하는 곳이다. 당연히, '기부'로 판매 물품을 조달하는 이런 종류의 가게도 곳곳에 보인다. 전혀 어떤 곳인 지 알고 싶지 않고, 들어가 볼 일도 없지만, 나는 싸구려 동정을 가장하여 그곳의 진열장에 종종 눈길을 주곤 했다. 그런데 그곳에 그 인형이 있었다. 어떻게든 조명과 연출로 꾸며서 공포영화에 출연을 시킬려고 해도 지나치게 착하게 생겨서 그렇게 할 수 없을 법한 아기인형이. 그 순진하게 다문 입술과 공포를 모르는 눈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레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었다. 왜 내가 그 인형에 이끌리듯 다가가는 것인 지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그것에 다가갔다,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국에 돌아가서 뭘 하지? 문득 집 앞의 분수대에 도착했을 때 나는 생각했다. 긴 타원형 모양의 분수는 물이 힘차게 뻗어져 나오는 게 아니라, 층층이 나뉜 계단을 통해서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그 끝에 작은 분수가 있는 모양새였다. 해가 지기 직전의 푸르스름한 하늘 밑, 어쩐 지 나는 패배자가 된 기분으로 그 분수 앞에서 멈춰섰다. 아니, 나는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해야 좋을 지 알 수 없었다. 글을 써야 하는걸까? 유튜브를 해야 하는걸까? 나는 내가 무언가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차라리 리서치 석사를 무리해서 하나 더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박사를 할 돈을 모아볼까?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곳에 있는 것일까? 아니, 사람들은 내가 느끼고 있는 경제적인 무게를 이해할까? 한 가족의 가장이 돼서 아내가 청소를 할 동안 장을 보고, 결제를 하고, 결제를 하는 순간만큼 인생이 사그라드는 것을 감내하고, 모른 체하고, 그 애가 무거운 것을 들까봐 무리해서 이것들을 들고 가고, 스타벅스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금피어싱의 구매를 미뤄두는 것이 어떤 의미인 지 알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가 '아버지'에게만 허용한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되, '아버지'에게만 허락되는 가장의 역할을 감내하는 이들을 향한 칭찬에 닿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껴야 좋을 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분수의 낮은 턱에 앉았다. 잠시 인생을 멈출 때였다. 분수대 소리처럼 허무가 끊임없이 눈 속으로 밀려들었다가방에서 검은색 몰스킨 일기장을 꺼내서 내가 적은 것중 마지막장을 펼쳤다. 그러나 막 글 속에 도취하려고 했던 나는 숨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2019.3.6.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


 (나도.)


2019. 4. 17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나겠단 생각이 들었다.

왜 모든 것을 서둘러서 하려고 하는가?

울지말자. 쓰러지지말자. 요즘은 그런 것들에 치중하려고 하고 있다. 나의 글쓰기로 누군가에게 치유가 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감상적인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아마도 내가 당한 게 많긴 한가 보다.

애인과의 관계는 생각보다 진전이 되고 있다. 아니, 성격이 급하면 그만큼 일찍 죽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저히 생각이 안 든다. 머릿속을 정리할 수가 없다. "정상"을 연기하고 있는 기분이다. 내가 나를 돌봐야 한다. 글보다, 유튜브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약 한 달 간격으로 적힌 일기를 보면서 나는 조심스레 감탄했다. 한달 전의 나는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지금과 별로 다를 게 없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나는 그 밑에 또 다시 한 달 간격으로 적힐 일기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유튜브로부터 벗어난 시간, 나는 나를 되찾는 것만 같은 동시에 자의식이 밀물처럼 머릿속을 잠식한 것을 견디지 못한 채 애써 파도를 무시하며 문장을 적어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 써도 윗 문장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다. 두 가지 문단에 존재하는 시간의 간격은 전혀 짚히지 않았다. 왜 나는 한 달 간격으로 일기를 쓰고 있을까. 왜 지나가는 것을 직면하는 순간 뭔가 깨질 것만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힐까. 아마도 그것은 내가 돈은 써도, 얼마가 남았는 지 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글은 써도, 피드백을 읽지 못한 채 몇 개월간 그것을 바탕화면에 놓고 방치한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사람들이 나에게 주는 반응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나는 가장이 되야 한다.'


  그 순간, 돈을 버는 창구인 유튜브의 조회수를 나는 떠올렸다. 금방 벽에 부딪힌 기분이 들었다. 깊게 한숨을 쉰 뒤, 나는 만오천원짜리 샤프를 고쳐쥐었다. 누군가 내 옆에 둔 음식을 훔쳐서 달아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과연 내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거의 사라진 오늘의 햇빛에 기댄 채, 돈을 버는 데 실패할 문장들을 나는 써나가고 있었다. 






 막 방에 들어왔을 때, 나를 반긴 것은 익숙한 향기였다. 애인이 향초에 빠졌을 때, 나는 그의 건강을 위해서 파라핀이 들지 않은 '우드윅' 라지 자를 선물했다. 딱히 내가 좋아하는 향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홈페이지에서 '이번 달의 향'이라고 프로모션 중이었다. 그 외에 우드윅을 할인해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화장실 청소를 어떻게 할 지 모르기 때문에 종종 건조하게 만들거나, 냄새를 지우기 위해서 그것을 내 화장실에 두곤 했다. 아무튼, 그렇게 하면 내 애인이 더욱 자주 내 방에 올 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아무튼, 그의 방에 있는 '테스코에서 산 과일사탕향 양키캔들'은 끔찍하게 단 향을 풍겼고, 나에게 기침만을 선사했다. 막 화장실 청소를 마쳤는 지, 방에 들어서기 전에 흘깃 본 곳은 하얀색으로 빛났다. 나도 모르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침대 맡에 앉은 채 쓰레기통을 일회용 멸균 티슈로 닦고 있는 애인에게 다가갔다. 마치 칭찬을 해달라는 듯 나를 바라보는 애인에게 나는 마트의 봉투에서 아이스크림 두 통을 꺼냈다. 일기를 쓰고 집에 들어오기 전, 인근의 극장에서 산 아이스크림이었다. 파란색과 빨간색 중에 무엇을 먹고 싶어? 잠시 애인은 특유의 망설일 때 내는 소리를 내더니 -음, 음, 음... ...- '파란색'이 좋다고 했다. 너 혼자 다 먹으라고 말한 뒤 나는 냉장고로 가서 그것들을 냉동고에 넣었다. 그리고 중국으로 놀러간 중국인 플랫메이트의 웍을 꺼내서 기름을 두르고 소고기를 몽땅 넣었다. 영국에서 유난히 비싸게 파는 청경채, M&S에서 산 숙주, 오늘 산 굴소스를 넣고, 나는 그것들을 일본에서 산 키티 젓가락으로 볶기 시작했다. 애인은 여전히 방 안에서 청소중이었다. 나는 냉장고에 주스를 넣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등 뒤의 소파에 그것들은 봉투에 담긴 채 제멋대로 누워있었다. 어차피 애인이 냉장고에 정리를 해줄 게 분명했다.


 어쩐 지 '좋은 남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면서 나는 젓가락을 놀렸다. 아무튼, 오늘 나는 그가 청소를 할동안 내 돈으로 모든 식사를 해결했고, 내가 장을 직접 봤으며, 이렇게 무거운 것들을 애인이 힘들까봐 나 혼자 들고왔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를 위한 소비를 포기했다. 심지어 애인이 청소를 한 데 보답하기 위해서 '두 개에 5파운드나 하는 극장용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앞으로 나는 애인이 집안 청소를 해줄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말할 심산이었다. 때마침 애인이 부엌에 들어왔다. 그러한 생각을 말하기 무섭게 애인은 '괜찮아, 청소는 늘 하는 건데, 뭐.' 라고 대답했다. 또, 내가 하는 요리가 맛있어 보인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대로 주스가 든 봉투를 들고 기꺼이 냉장고에 넣어주었다. 어떻게 이렇게 무거운 것을 들고 왔냐면서 애인은 놀라워했다. 이런 건 내가 들어도 무거운 건데, 어떻게 누나가 들었어? 어깨를 으쓱거리며 나는 '사랑의 힘으로.'라고 장난스레 대답했다. 애인은 몇 개의 햇반을 꺼내야 되냐고 물었다. 나는 '두 개'라고 대답했다. 오늘, 나는 그가 고마웠다. 정말로. 


 식사를 마친 뒤 나는 애인이 내 플랫의 쓰레기를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치우는 동안 방에 들어와서 유튜브를 켰다. 유튜브는 내가 돈을 버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최근에 올린 영상에 사람들은 '연대한다, 응원한다' 등의 댓글들을 달아주었다. 어쩐 지 그것들은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전하는 메세지처럼. 이 사람들이 내가 모든 것에 진심으로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 얼마나 빠르게 나에게 등을 돌릴까. 거의 병적으로 공허함을 느끼면서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쓰레기를 들고 온 애인에게 불을 끄고 조명만 켠 채 이리로 오라고 했다. 잠시 애인은 빨리 쓰레기를 버리고 와야한다며 투덜거렸지만 순순히 나에게 와서 안겼다. 그 아이의 익숙하고, 편안한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상념에 취했다. 그리고 또 다시 결혼에 대한 말을 지껄였다. 


 이 아이가 없으면 나는 살 수가 없다. 


 이윽고 애인이 바깥에 나가서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왔을 때, 나는 영화 '아내'를 보자고 말했다. 지난 번에 나는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그 영화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글렌 글로즈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고 전달한 수상소감을 나는 글에 차용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페미니즘 에세이를 쓰기 위해 '영감'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잠시 나는 애인이 제목부터 '페미니즘'의 냄새가 나는 것을 보기 싫어하면 어쩌지, 걱정했다. 그러나 애인은 다행히 반대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꾸준히 '올해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게 된 영화임을 강조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노벨상을 받은 남작가의 작품을 대필해준 아내가 그와 함께 시상을 위해서 스웨덴에 가서 겪는 일을 소개한 영화였다. 클리셰를 새롭게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창작한 게 역력한 캐릭터들이 각자의 목적과 도구를 갖고 서로 간의 감정의 레이어를 쌓다 갈등이 폭발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잘 만든 영화'라는 것이 어떤 것인 지 실감했다. 영화는 놀라울 만큼 객관적인 시선으로 정확하게 비어있는 캐릭터와 차 있는 캐릭터의 대조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즘 나는 어느 쪽에 이입해야 좋을 지 알 수 없는 채 의식이 양분화되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정확히 나는 그 남편같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나의 성별과 화해한 여성이었다. 어디의 편을 나는 들어줘야 하는가? 관객으로서 나는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내 옆에서, 애인은 여전히 순진한 얼굴로 영화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참고로, 넷플릭스 구독료는 내가 내고 있었다. 


 왜 내가 '남편'을 향해서 욕을 했는 지도 모르겠다. 정눈꽃, 그게 네 삶이었잖아. 너에게 충실한 남자들을 만나면서 네가 원하는 대로 성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 도대체 네가 뭔데 저 사람을 욕해? 지금 넌 네 옆에서 순진한 얼굴로 영화를 보는 아이에게 미안할 짓을 하지 않았던가? 지금도 너에게 연락하는 그 수많은 남자들은? 아니, '네가' 연락하는 그 남자들은?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의 잠재적인 분노를 짓이기기 위해서라도 섹스에 집중해온 내 삶은 언제나 신체에 대한 자기학대적인 처벌의 면과 과장된 성욕의 진실성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면서, 죄 없는 이들을 향한 화해와 자기 변명을 얼룩지곤 했다. 오직 영화 속의 남편처럼 '대필'을 요구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니, 심지어 나는 그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치가 떨렸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가? 나의 밥을 차려주는 이에게 나의 글을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그것은 역겨운 일이었다. 아니, 그동안 나는 애인이 차려준 음식을 먹으면서 글을 썼고, 애인이 치워준 방에서 글을 썼고, 애인이 1층까지 내려가서 세탁기를 돌려준 덕분에 새 옷을 입고 기분좋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적어도 그것은 나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아무튼, 그가 나를 대신해서 노동을 하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 지 내가 알게 무엇인가.


 아니, 나는 영악하게도 알고 있었다. 누구도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영화의 남편처럼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그가 특혜를 누리게 '희생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에 대한 근거를 나는 갖고 있었다. 아무튼, 나는 그가 청소를 해주는 댓가로 스타벅스에 가지 않았고, 금피어싱을 구매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 장을 봐왔고, 비싼 음료를 사면서, 그가 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청소를 할 수 있도록 분수대 옆에서 일기를 썼고, 마지막으로 그를 위해 비싼 아이스크림까지 사오지 않았던가?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아이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아니, 나는 나의 스마트폰 은행 어플에 그를 위해서 사용한 영수증을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를 위해서 희생한 근거가 있었다. 누가 나에게 '나쁜 가장'이라고 욕을 할 것인가?


 그런데 왜, 나는 글을 쓰지 않을까?


 유튜브에 매달리다 보면 실패한 삼류 프로듀서가 포르노나 찍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것은 '남을 수 없는 역사의 찌꺼기'다. 매 분마다 300시간에 달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업로드 된다. 유튜브는 거대한 권력이되, 그 밑에 존재하는 것은 싸구려 감각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대중에게 영합하는 형태의 영상이다. 영화 '아내'를 보는 동안, 나는 유튜브의 세계로부터 내가 비행기를 타고 벗어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진실을 향해서 출발하는 것은 '아내'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곧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대해서 써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순간, 스스로를 나는 자조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은 간단하다. 기존의 경제 활동 지표가 포함시켰던 경제적인 이득의 창출은 대개 가사노동 등 '아내'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으면 이뤄질 수 없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을 체계적으로 경제 활동에서 배척시킨 배경은 여성의 차별에 대한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요컨대 남성들이 이뤄낸 경제의 역사는 낸시 프레이저가 표현하듯, '경제적인 사회활동을 지지하는 가정 내의 무임금 노동의 하위 체계가'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므로, '아내'라는 말이 함의한 것은 '인내'와 '희생', '사랑'을 댓가로 평생동안 시달려야 하는 '무임금 노동'의 실체였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게 내가 애인에게 요구해온 것이었다.


 그 순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나는 '가난한 이들이 찾는 가게'에 진열된 인형의 얼굴을 떠올렸다. 도대체 그 순종적인 인형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어떤 '여성'이 그 인형을 갖고 놀았을까? 과연 내가 희생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있을까? 영화 속의 '남편'은 자신의 경제적 위치를 근거로 갖는 오만한 자신감에 차서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상대를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축소시키고 있었다. 그는 바람을 피우면서도 거짓말을 했고, 본인만의 희생을 강조하고, 대필의 댓가로 자신이 노벨상을 받으면서 '아내의 덕분'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선물'처럼 생각했다. 아내의 대필을 받는동안 그는 자신이 가사노동을 해야함을 강조하며, 스스로의 인생이야말로 '인내의 시간'으로 점철된 불행한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아내'가 대필을 하는 동안 그녀의 역할을 본인이 했다는 것을 억울해하면서도 남성 작가인 자신이 노벨상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뻔뻔한 자태의 뫼비우스 띠가 엔딩 크레딧이 내려가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돌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영화를 보면서 내가 내 애인보다 더욱 극렬하게 '남편'을 비난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그것은 '진실'한 분노였다. 그것이 나를 더욱 스스로에게 끔찍하게 물리게 만들었다. 물론, 여성의 시선에서 그려진 작품은 남편의 노벨상 수상이 얼마나 불평등한 것인 지 강조했다. 그리고 관객은 여성의 시선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내가 '아내'의 역할에 이입한 것은 오로지 과거의 나 자신, -정말로 그 여자같은 희생을 내가 남성에게 한 적 있는 지 몰라도- 혹은 어머니의 고통을 '아내'라는 역할에 대입한 것일뿐, 현재의 사실에 기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혼란스러워했다. 캐릭터에 완전하게 이입하지 못한 채 감독이 만들어낸 선을 따라가면서 느꼈을 뿐인 감정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오로지 아내의 고통보다 자기 자신의 희생을 강조하는 남편을 향해서 느꼈던 나의 진심 어린 분노만이 유효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내가 터뜨렸던 눈물은 위선의 상징에 불과했다. 아니, 마치 스타벅스와 마트로 나뉘었던 그 양갈래 길의 초입에 선 것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나는 내가 '남편'과 '여성'으로 나뉘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애당초 왜 나는 애인을 '아내'라고 부르는 것을 편하게 느꼈을까?


왜?


 지금, 나는 화학 제품에 젖은 일회용 티슈로 반들반들하게 닦인 책상 위에서 정리된 '기분'을 갖고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닦은' 것이 아니라, '닦인' 것이다. 나는 이것을 하기 위해서 내 애인이 어떤 시간을 보냈을 지, 어떤 생각을 했을 지, 추호도 생각해본 적 없다. 내 애인의 노동은 수동태 속에서 당연한 것으로 축소되고, 내 인식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동안 나는 나의 경제적인 우월성에 도취해서 자랑스러운 기분을 느끼면서 애인에게 아이스크림을 꺼내들었고, 요리랄 것도 없는 것을 하면서, 햇반조차 내 돈을 주고 샀다는 사실, 그리고 그 햇반을 네가 원하는 대로 꺼내서 먹으라고 말할 수 있는 스스로의 위치에 도취되어 있었다. 애인을 위해서 내가 사고 싶은 사치품을 포기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인격적인 상승을 보장했다. 막 장을 보고 이 방에 돌아왔을 때, 붉은색의 우드윅은 창가에서 타고 있었다. 아마도 기침이 심한 나를 위해서 그가 보여준 배려였을 것이다. 아직도 나는 내가 왜 '아내'를 보고 울었는 지 모르겠다. 페미니즘 에세이는 한 줄도 쓰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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