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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설화 Jan 21. 2017

1. 당신은 누구인가, 아노말리사

자아편

 한 가지의 정체성을 가진 타인들의 사회를 상상해보자. 모든 사람이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타인들의 사회. 남과 구별되지 않는 그들을 나는 모르되, 그들은 나를 잘 안다. 과거의 애인, 나의 자녀, 사랑하는 아내까지. 방금 전에 지나친 사람과 다를 바 없게 생긴 또 다른 누군가는 풀숲에 숨어있던 포식자처럼 느닷없이 나타나서 나를 향해 반갑다는 듯 다가온다. 완전한 타인들의 사회에서 나는 도망친다. 숨이 턱끝까지 찰 때까지 달리면서, 무심코 나는 뒤를 돌아본다. 끝없이 이어진 한 명의 수많은 타인들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마치 '또 보자'고 말하 듯이. 그 순간, 나는 끔찍하게 알고 싶다. 저들의 정체를, 그러므로 나의 정체를.




 고객서비스와 관련된 저서로 유명세를 탄 마이클 스톤은 '동일한 타인들의 사회'에 갇혀있다. 언젠가부터 그의 주변에는 똑같은 얼굴의 가면과 똑같은 목소리를 갖고 있는 이들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전에 알고 있던 자들도 예외는 없다. 온통 똑같은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타인을 대하면서, 마이클은 구별되지 않는, 변형되지 않은 사회를 살아간다. 언뜻 별 문제가 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가 똑같은 게 대수란 말인가. 그러나 마이클 스톤은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의 액션 연기에 버금가는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바로, 나를 잃을 지도 모르는 위험이다. 


 나를 아는 것은 타인을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으레 인간은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나'에 대한 관념을 구축한다. '저 사람은 눈 밑에 점이 있네. 저 사람은 목소리가 발정난 고양이 같군.' 그렇게 인간은 나와 구별되는 타인의 개별성을 인식하고, 타인과 나, 혹은 타인과 타인을 비교하는 것을 통해서 자아를 정립한다. '타인'이란 개념을 넘어서 인간이 나와 타인에 대한 '개인성Individuality'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은 개개인의 구별되는 고유의 특성을 자아가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며, 모든 타인은 타자와 구별되는 고유성을 실제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스톤은 누구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의 연설을 듣는 군중에게 단상에 선 그는 역설한다. 고객은 개별성을 가진 인간이다. 인간은 각자의 삶을 가졌고, 자기 자신으로서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고객상담원은 고객의 개별성을 인정하되, 그들의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한 말에 그는 공감할 수 없다. 온통 동일한 얼굴과 목소리를 갖고 있는 인간의 고유성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시선에서 인간은 개별성을 잃은 지 오래다. 완전하게 개별성을 상실한 주변 사람은 그에게 한 개의 집단, "타인"에 불과하다. 


 마이클 스톤의 직업이 고객서비스 저서 작가인 설정이 흥미롭다. 전화로 하는 고객상담은 절대 다수의 타인을 대하는 직업이다. 전화상담원에게 고객이란 무엇일까. 과연 고유성을 이해받아 마땅하고, 개인성을 존중받아야 하는 개인일까.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화상담원에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대개 '고객'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스톤은 고객의 개별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독자에게 설파한다. 어떻게 생긴 지, 어떤 과거를 가졌는 지, 어떤 삶을 사는 지 모르는 고객의 고유성을 이해하라고 말이다. 절대 다수에 불과한 고객에게 개별성을 부여하길 주저않는 스톤이 완전한 타인들의 갇힌 설정은 멋진 역설을 드러낸다. 바로 그 인식의 차이속에서 스톤은 괴로워한다. 고객의 고유성을 존중하라. 고객도 인간임에 주목하라. 나의 주변에는 똑같은 모습을 모습을 지닌 타인밖에 없지만.


 결국 마이클은 자신의 가면을 벗는 것을 시도한다. 누구나 어떤 종류의 '고유한' 가면을 착용하고 있다. 과연 그것이 가장된 가면에 불과하건, 진정한 나를 분유한 것이건, 타인에게 설득하고 싶은 자기 정체성을 나는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마이클이 타인과 다른, 나만의 고유한 가면을 벗는다는 것은, 더 이상 완전히 동일한 타인의 세계를 버티지 못하는 그가 '타인의 사회'에 굴복하기 위해서 결심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스스로 '나'를 지워버리는 것은 엄밀한 의미의 자살과 다르지 않다. 그토록 끔찍한 짓을 하기 직전, 무언가에 이끌리듯 멈춘 마이클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타인의 방을 찾아다닌다. '누군가를 찾고 있다'고 그는 절박하게 말한다. 누군가를 나는 찾고 있다. 타인의 사회에서 나를 구원해줄 누군가를.


 그러다 마침내 리사의 방에 도착한 스톤은 마침내 리사를 만난다. 완전히 동일한 타인들의 사회에서 리사는 유일하게 다른 얼굴과 목소리를 갖추고 있다. 마이클 스톤의 저서의 열렬한 팬인 리사는 단번에 그를 알아본다. '방금 전, 화장을 지웠는 데.'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으면서 리사는 말한다. 그러나 마이클에게 낯익은 만큼 낯선 타인의 물결 속에 리사의 구별되는 목소리는 강렬하다. 마치 온통 잿빛인 세상에서 유일한 붉은색을 발견한 것만 같다. 비로소 '다른 인간'을 만난 마이클은 감동한다. 마이클은 리사에게 함께 있길 애원한다. 방금 전, 그가 가면을 벗는 것을 기도했던 방에서 완전히 동일한 타인들의 사회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자신만의 과거, 욕구, 삶, 심지어 좋아하는 노래 등을 털어놓으면서 서로의 고유성을 이해한다. 그렇게 리사는 마이클에게 비로소 타인이 아닌, 개인이 된다.




 위의 사진을 비교해보자. 택시 기사는 이마와 가면의 경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리사는 다르다. 물론 마이클과 리사는 각자의 가면을 썼다. 그러나 두 사람은 "타인의 가면"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리사는 오른 쪽 얼굴에 난 흉터를 부끄러워한다온통 똑같은 얼굴에 둘러쌓인 마이클의 눈에 그녀의 흉터는 얼마나, 눈물겹게 반가웠을까.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1770년 8월 27일 ~ 1831년 11월 14일)



"그들은 서로를 인정함으로써 서로를 인정한다."



 칸트가 독일관념론의 기틀을 제시했다면, 헤겔은 완성시킨다. 기존의 피히테, 셸링이 연구한 독일관념론의 지류에 문제가 있음을 헤겔은 발견한다. "모든 현상은 자아의 활동"이라는 독일관념론의 아이디어는 헤겔에서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자기 의식이다," 라는 명제로 발전한다. 즉, 자아를 제외한 모든 것은 자기 의식의 발현이다. 나를 둘러싼 대상은 존재하되, 표상으로 포착되고, 자기 의식 속에 드러난다.


 본래 자기의식이란 자기와 통일성을 갖추길 욕구한다. 나는 나로서 존재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자기의식은 늘 이러한 통일성으로부터 이탈을 당한다. 예를 들어, 악마와 천사가 서로를 발견하면, 서로가 자기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천사는 천사로서 살고자 욕구하고, 악마는 악마로서 살고자 욕구하니 그렇다. 그런데 이상하다. 서로를 보면 볼수록 악마는 천사에게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천사는 악마에게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我는 非我에 깃든 我를 발견하면서 我에게로 나아간다. 즉, 자기의식이란 일견 대립되는 대상과 투쟁을 겪고, 통일성을 극복하길 반복하면서 종국에 자기에게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갖는다. 타인에게 고유성을 발견하라. 마이클은 독자에게 설파한다. 타인을 집단으로 대상화시키는 것을 지양하고, 개개별 인간의 인격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강연을 하기 위해 찾아간 신시내티의 호텔의 매니저가 꿈속에서 그에게 찾아온다.


 "마이클, 당신을 사랑해. 우리는 하나야."


 나라는 존재가 자기의식의 타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근거와 계기는 타자에게 비롯된다. 非我를 포함하여, 모든 것은 자기 의식의 발현에 불과하다는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은 헤겔에서 이렇게 극복된다. 피히테의 관념론에 의하면, 절대적 자아의 외부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곳에는 무언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바로 非我를 我로서 가진 非我다. 그런데 동시에 나는 타인에게 타자가 될 것이고, 타자는 나에게 그러할 것이다. 끊임없는 의식의 운동을 거치면서, 나와 타자는 동일한 것을 인정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함으로써 서로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일련의 의식의 운동을 경험하면서 자아가 자기 의식을 정립하기 해서 타자는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또한, 헤겔은 양심의 종류를 두 가지로 분류하면서 형식적 양심과 참된 양심으로 그것을 정의했는 데, 후자의 경우 '즉자대자적으로 선한 것을 좇는 인간의 심성'을 의미하면서, 주관적 확신에 불과한 형식적 양심보다 그것을 위에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즉, 인간은 양심을 좇기 위해서도 타인을 필요로 한다. -아마도 마이클 스톤과 리사의 불륜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히 동일한 사회 속에서 마이클은 '나'와 '나의 양심'을 상실할 위기에 놓인다. 그에게는 인정해야 할 타자도, 나를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이를 비추는 거울도 없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가면을 착용하고, 동일한 목소리를 가진 사회, 마이클은 자기의식이 뻗어나갈 축을 상실한다. 완전하게 동일한 타인의 사회에서 마이클이 자기를 잃을 위기에 놓인 이유다.


 막상 리사가 마이클의 삶에 진입할 때, 나의 "아노말리사"가 완전히 동일한 타인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마이클은 깨닫는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 여자는 누구인가? 입 안에 음식을 넣은 채 말을 하고, 포크를 이에 부딪히는 습관을 가진 리사는 전날 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던 리사와 다르다. 나의 아노말리사가 아니다. 고객서비스 관련 저서를 통해서 고객과 소통할 때, 그들의 개별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길 촉구했던 마이클 스톤은 정작 나의 삶에 진입하는 인간의 개별성을 인정하길 지양하면서, 스스로를 완전하게 동일한 타인의 사회에 또 다시 가두고 만다. 모든 것은 자기의식의 발현이라는 독일관념론의 아이디어를 수용한다면, 완전하게 동일한 타인의 사회란, 결국 마이클 스톤의 자기의식의 산물이다. 타인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혹은 인정하는 데 실패한 마이클 스톤의 자기의식이 만든 감옥이다. 결국 리사의 개별성을 인식하는 데 실패한 마이클 스톤은 그녀조차 떠나고 만다.


 인간의 개별성을 발견하는 것은 얼마나 간단하면서, 어려운 일인 가. 영화 아노말리사는 '고객상담원'이란 소재를 이용해서 그 점을 은유와 상징으로 그려낸다. 결국, 타인의 개별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현대 사회의 소통을 이 영화는 비튼다. 일부 현대인들은 SNS로 소통하는 현대사회의 폐해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우리는 가까워지되, 멀어지고 있다고. 미상불 가상현실 속 ID로 소통하는 게 일상이 된 현대사회, 그 이면에 놓인 인간의 고유성을 발견하는 게 예전처럼 쉽지 않다. 트윗을 보내고, 댓글을 다는 것만큼, 그가 누구인 지 아는 것은 쉽지 않다. 타자와 나를 비교해서 자기의식은 나를 규명하고, 타자로서의 나를 인정하고, 다시 서로를 인정함으로써 서로를 인정하게 된다면, '나의 정체를 규명할 만한 타자'란 축을 발견하는 것조차 쉽지 않게 된 것이다. 설령 고객을 대하는 직업을 갖지 않더라도, 관객이 마이클 스톤의 고뇌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타인에 불과한 인간의 고유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동일한 가면을 착용한 집단적 타인으로 주변 사람을 대하는 마이클의 증상은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닮았기 때문은 아닐까. 


 언젠가부터 인간관계는 관리해야 할 과제가 됐다. 타인은 他人,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며, 고유한 인간의 가치를 깨닫는 것은 나를 아는 것만큼 어려워졌다. 현대사회를 사는 인간에게 마이클 스톤의 고뇌는 낯설지 않다. 예를 들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누구인 지 나는 모른다. 당신에게 나는 글을 쓰는 '작가'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당신은 내게 '독자'라는 가면을 쓴 집단에 불과하다. 과연 우리는 '타인'이란 이름의 가면을 벗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얼굴을 지나쳐서, 누군가가 될 수 있을까. 흡사 산 밑을 굴러다니는 돌처럼 비슷비슷한 몰개인성의 틈을 비집고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지. 우리 모두, 누군가의 아노말리사가 될 수 있길 바라본다.



참고서적: 쉽게 읽는 헤겔, 정신분석학

참고논문: http://s-space.snu.ac.kr/bitstream/10371/92765/1/77_%EC%84%B1%EC%B0%BD%EA%B8%B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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