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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Jun 06. 2022

한 달 살기, 그거 나도 한 번 해보자

발품 팔고 나면 에피소드 | 내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태국 북부 지역에 위치한 치앙마이는 ‘한 달 살기’가 한창 유행하던 중 살기 좋다는 소문으로만 접한 곳이었다. 검색 사이트에 치앙마이를 치면 상위에 ‘치앙마이 한 달 살기’가 나올 정도로. 심지어 대표적인 숙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일주일간 방콕에 머물다 슬리핑 기차를 타고 13시간 만에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혹시 기차 안에서 잠을 이루지 못할까 봐 드라마, 영화를 잔뜩 받아두었지만, 뜻밖의 숙면으로 저장공간만 차지했다. 심지어 툭툭이를 타고 간 숙소에 체크인 직후 또 잤다. 저녁에 출발해 다음 날 오후까지 한 일이라고는 수면과 숙면뿐이었다. 


대학가, 강가 등 여러 스폿이 있었는데 내가 머문 곳은 올드타운이었다. 게이트 안쪽에 있고 걸어서 동네만 돌아다녀도 좋았다. 탈 것 같은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방콕에서 충분히 터득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새로운 곳에 도착한 관광객은 그걸 또 잊고 주변을 살펴본다는 일념으로 스스로 시험에 들게 하지. 최근 3개월을 기준으로 검색해보고 추천받았던 가게를 방문해봤지만, 영업하지 않거나 대부분 일찍 닫아 아쉬움만 덕지덕지 묻힌 채 돌아서기 바빴다. 특별한 목적이 없어서 내 눈에 띄지 않는 걸까 싶어 1일 1 팟타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어떤 날에는 오로지 카오소이를 먹기 위해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늘 한 점 보이지 않고, 그늘에 있어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며칠 뒤 야시장으로 향했다. 사실, 그 시간에 우연히 지나갔는데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했던 것. 그제야 찾아보니 이곳은 야시장으로 점철된 곳처럼 여기저기 ‘Night Market’이란 글씨로 도배되어 있었다. 특히 주말에는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야시장 투어도 가능할 것 같았다. 가까이는 동네 주변, 대학 등 서서히 주변으로 발걸음을 넓혀 나갔다. 심지어 지나가다 발견한 야시장만 몇 곳인지 모르겠다. 정기적으로 똑같은 장소에서 야시장이 열리기도 하고, 장소가 종종 바뀌는 비정기 야시장도 있었다. 한 공터에서, 아파트 근처에서 혹은 상가 전체, 넓은 길거리와 골목 가득 빛으로 채워졌다. 


그중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던 곳은 단연 ‘징자이 마켓’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열리는 이곳은 농산물, 의류 등 살만한 게 많은 것도 좋았지만 음악이 있다는 게 단연 최고였다. 가만히 앉아 노래를 듣다 보니 이 마켓 자체가 아닌 가고 싶은 페스티벌의 풍경과 비슷해 좋은 것 같았다. 사고 싶은 건 있었지만 어떤 여행이 계속될지 몰라 사지 않았다. 멀리 나온 김에 집에 가는 길 따라 미리 찾아둔 한 달 살기 숙소를 보기로 했다. 


서비스 아파트는 역시 시설이 좋고 깔끔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서 살던 것처럼 살 수 있는 게 이곳의 큰 장점이었다. 더불어 야외 수영장을 바라보자 당장 흐르는 땀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버스나 택시를 찾기 힘들다는 것. 게다가 주변 요가원은 문을 닫거나 사라졌고, 기대한 것만큼 코로나 이후 일상 회복이 더뎌 원하는 하루를 만들기 힘들어 보였다. 호스텔, 모텔, 민박 등 길 가다가 들어가 한 달 렌트가 가능한지 물어보고 방을 살폈는데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친 몸을 끌고 숙소에 가 샤워 후 기절했다. 가만히 누워 생각해보니 ‘내 집’처럼 지낼 수 없는 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요리를 할 수 없는 것. 아파트지만 호텔에서 지내는 것처럼 생활해야 한다니, 나는 집과 같은 정착을 원하고 있었다. 이걸 분명히 깨닫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 같다. 알고 있던 문장을 더욱 강렬하게 새기기 위한 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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