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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Jun 07. 2022

미식가와 요리사 사이에서 나고 자란 사람

인정하고 나면 에피소드 | 내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요리에 대해 말하자면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가족 대부분은 미식가, 요리사(잘한다는 의미로 씀, 직업 명사 아님)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이라는 건 모두가 아니라는 건데, 그 아닌 구성원이 바로 나다. 엄마는 할머니의 솜씨를 닮았고, 아빠는 대단한 미식가인 데다가 제철 음식 탐험가다. 남동생은 이런 둘을 닮아 본인의 예민한 입맛을 충족하기 위해 부지런히 부엌을 들락거린다. 그 사이에서 나는 딱히 맛있는 재료를 알아보거나 찾는데 흥미를 잃은 데다가 부엌은 배고픔에 몸부림칠 즈음 냉장고를 열어보러 가는 곳이었다.


대표적인 기억이 몇 가지 있다. 부모님이 부부동반 모임을 나가기 전이면 아빠가 외식하거나 배달해먹으라며 돈을 두고 나가셨다. 그러면서 꼭 동생을 쳐다보며 "너 먹을 때 누나랑 꼭 같이 먹어라."라는 말을 남겼다. 동생이 내게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고는 사 와서 해먹을 건지, 배달할 건지 정했다. 집에서 해 먹는 경우, 동생이 요리하고 나는 뒷정리를 하는 등 자연스럽게 역할은 이렇게 나뉘었다. 또, 더 어릴 적에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 오기 전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러다 동생이 오면 뒤를 졸졸 따라가 동생이 끓인 라면을 먹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내게 라면을 먹을 건지 말 건지 확인하고 부엌에 들어갔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먹고살기 위해 해 먹어야만 했다. 요리는 생존을 위한 행위였다. 매일 바깥 음식을 먹으면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기도 할 정도로 위 가족과 함께 먹고 산만큼 예민한 입맛을 타고난 것이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무심했든 말든 생선 이름은 몰라도 회의 신선도를 알아챌 정도였으니까. 나는 왜 입 안에 느껴지는 모든 걸 모른 척했을까, 돌아보면 우리 집 주방에서 느낀 피로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밑반찬이란 개념을 20대가 되어서야 알 정도로 주방은 항상 열기가 가득했다. 그때그때 만들어 먹는 반찬, 한 달에도 몇 번씩 담는 김치, 날씨와 계절을 좇아 차려 먹는 음식 같은 것들이 버거웠다. 


무엇보다 엄마에게 집중된 노동이 그랬다. 특히,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일주일에 꼭 한 번은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프라이팬에 적당히 구워 내어 먹는 게 아니라, 식탁 위에 제대로 차려 먹는다. 불판 위에 고기를 얹고 파채 무침, 김치 두 종류, 쌈장에 된장, 마늘과 청양고추 등을 곁들였다. 당연히 유행도 따라야 해서 명이 나물이나 대파 김치 같은 것도 가끔 등장했다. 당시 몸속이 고장 나 그런 줄도 모르고 고기가 소화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 먹지도 않는 고기를 엄마가 굽고, 계속 필요한 걸 꺼내느라 부산스러웁게 움직이는 모습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내가 같이 준비한 것도 아니다. 가끔 마음먹고 뒷정리를 돕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 쌓인 불편함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러 별걸 다 배달해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여전히 배달로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지만, 엄마와 둘이 있을 때면 으레 쏟아지는 잔소리를 무시하며 어플을 꺼내 들었다. 혹은 통화를 하며 엄마가 지나가듯 말한 콩국수, 팥칼국수, 나물 비빔밥 같은 걸 찾아 나섰다.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걸 돈 써가며 사 먹는다는 말을 하던 엄마는 엄마의 노동 가치, 재료값을 들먹이며 좀 먹어보고 말하자는 내게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이제는 맛있다는 감탄사나 사진을 찍으라거나 함께 와서 좋다는 감상으로 대신한다. (물론, 돈 얘기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다.)


주방과 요리 분야에 나를 전혀 끼워 넣으려 하지 않고 애써 무시하던 나도 달라졌다. 더 이상 '생존'만을 위해 먹지 않는다. 스스로 돌보기 위해, 기분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절기나 계절을 기꺼이 즐기기 위해 장을 보고 요리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먹은 게 있는데 그걸 무시하기에는 내 입맛이 찾고야 만다. 번거로워 보이던 걸 가끔 시도했고, 내가 딛고 사는 곳이 더 나아지길 바라며 레시피를 찾아 헤매기도 한다. 좋은 곳, 괜찮은 먹을거리를 찾아 두는 것도 하나의 재미로 느낄 만큼 가족과 함께한 시간을 대부분 인정했다. 


나는 미식가와 요리사 사이에서 나고 자라 재료에 민감해 때에 맞는 음식을 찾아 먹고 요리하는 걸 종종 즐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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