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월 1일을 기다릴 필요 없어

시작하고 나면 에피소드 | 내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by 피베리

베트남 하노이에 한 달 정도 머물렀다. 이번뿐 아니라 이전 여행지에서도 갖은 핑계를 대며 생각한 것보다 긴 시간 늘어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를 보며 산책을 미룬 순간이 너무나 많이 쌓였다. 한쪽에 밀어 두고 있다 보니 진짜 안정을 찾아야 할 때가 되자 잠시 헤맸다. 중간중간 비우고 정리할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그래서 5월 끝자락 한밤 중 미라클 모닝과 같은 모임을 찾아 결제해두었다. 내 인생의 많은 도전 대부분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아득한 밤에 만들어졌다.


무기력의 원인을 찾다 보니 나 자신과 잘 해결되었다. 당분간 버겁게 느껴지는 긴장감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런데 무심코 본 달력에 ‘05:00 미라클 모닝’이 쓰여있는 게 아닌가? 내가? 미라클 모닝을? 온전히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일주일 정도 손가락으로 콕 찍어 맛만 봤던 거였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기 위해 일찍 끈 방 불을 다시 켰다. 책상 위가 어지럽다. 언제 뒀는지 모를 각종 영수증과 공항을 오가며 사용한 서류 같은 것들을 정리했다. 몽롱한 상태에서 사용할 노트북과 아이패드만 세팅해두었고 이참에 걸려있던 옷가지도 캐리어에 정리해 넣었다.


그러고 보면 매년 새해 다짐을 하고 한 두 달이 지나면 쳐다보지도 않는 패턴이 있었다. 게다가 연말과 새해 즈음 구석구석 청소하며 강박적으로 정리하던 때도 있었지. 그런 강박을 덜어낸 줄 알았는데 물리적 ‘새해’만 여유 있는 척 넘길 뿐 아무 때나 스스로 ‘새해’라는 이름을 붙이고 더욱 자주 시동을 걸고 있다. 그렇게 이번에는 6월을 기점으로 나만의 새해를 맞이했다. 꿈같은 첫날이었다. 한창 더웠던 날들을 뒤로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희한하게 날이 좋으면 그 순간이 꿈결처럼 느껴진다. 물론, 잠이 덜 깨기도 해서 ‘새해 첫날’의 기억은 더욱 좋았다.


저녁엔 운동 인증 모임이 있었다. 평소 팔로우해 두었던 ‘원더​’ 님이 호스트로 있어 스토리 보다가 스르륵 신청해두었다. 전혀 모르는 다른 참가자들과 프로그램 지원 동기를 나누다 보니 잠시 지쳐있던 걸 잊을 수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PC로 접속해 카메라로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운동하는데 생각보다 자세를 잘 잡도록 도와주어 무리하고 말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안 쓰던 어깨를 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여행을 핑계로 늘어져있던 일상을 팽팽하게 만드는 데 큰 일조를 했다. 주 4회 최소 15분 이상 인증할 예정이라, 그러니까.. 오늘 새로운 곳에 가자마자 운동을 해야 한다.


여행 중간중간 가라앉는 나를 구한 건 온라인을 통해 연결된 모임들이다. 와글교​, 영산매​, 윌로 ​, 미라클 모닝 그리고 곧 시작할 아침 독서 모임까지. 여기에 가끔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하니 숨통이 트인다. 피로감은 더해졌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다. 어디서나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 변하는 환경 속 단단히 버티게 하는 것들을 꾸준히 지키고 싶다. 종종 그것들이 잠깐 사라져도 혼자 버틸 수 있도록. 그렇게 있다 보면 또 어디선가 만나겠지, 그 모양이 새롭던 익숙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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