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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Jun 09. 2022

이제 어깨의 짐을 덜어주기로 해

의식하면 에피소드 | 내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외출하기 전 '혹시'하는 생각에 어깨가 아파도 챙기는 물건이 많다. 손수건, 안경닦이, 핸드크림, 립밤, 물티슈, 충전선이나 보조배터리, 지갑, 펜, 포스트잇... 여기에 노트북이라도 챙길라치면 전용 충전선에 무선 마우스, 노트, 읽을 책까지. 챙기는 물건에는 나름의 이유도 구구절절 있다.


손수건 : 땀이 나거나 비 오는 날 걷다가 튀긴 흙탕물 닦을 때

안경닦이 : 안경 쓰니까

핸드크림 : 전혀 쓰지 않아다 코시국에 손을 더 자주 씻게 되자 건조해져서

립밤 : 건조해서

물티슈 : 끈적한 거 흘려 묻을까 봐

충전선, 보조배터리 : 휴대폰 배터리 빨리 닳아서 채우려고

지갑 : 카드 들고 다니려고

펜 : 적을 일 생길까 봐

포스트잇 : 메모하려고

노트 : 끄적거리려고

책 : 노트북으로 하던 일 지루해지면 재밌으려고


목적지가 분명하거나 예상했던 만큼 움직이면 다행이다. 가끔 가려던 곳이 중간에 바뀌어 동선이 길면 길어질수록 힘이 든다. 힘들면 애초에 살펴봐야지 했던 것들의 반도 보지 못한 채 그대로 가져온다. 어떤 날은 그 짐을 아무 생각 없이 정리할 때도 있고, 한숨의 무게를 담아 천천히 꺼내며 곱씹을 때도 있다.


여행에서도 그랬다. 캐리어에 틈틈이 나만의 생필품을 챙겨 들었다. 손톱깎기, 미니 선풍기, 다양한 모양의 파우치, 옷걸이 같은 것들. 짧은 여행에서도 내 어깨는 고통을 피해 가지 못한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를 여행에 들어섰을 때가 되어서야 덜어내고 또 덜어낼 수 있었다. 제일 먼저 포기할 수 있었던 건 역시 옷이다. 평소 관심 없었으니까 긴 바지에 블라우스 하나 정도를 제외하고 자주 입는 것들 위주로만.


노트북과 아이패드는 필수, 평소 숨 쉬듯 담는 생필품을 담았다. 찢어 쓰는 세제, 여성용품, 마스크, 선크림, 물티슈 등 여기에 엄마가 집에 쌓아두었던 제습제를 몇 개 챙기기도 했다. 현재까지는 굉장히 좋은 선택이었다. 주로 돌아다닌 곳이 우기인 동남아였고, 숙소 형태가 매번 달라졌기에 놀랍게도 너무 잘 썼다. 여전히 짐이라고 느껴지는 물품도 있다. 최근 더해진 올리브유와 후추, 미니 스탠드. 그래도 멀쩡한 걸 버릴 수는 없으니까 우선 안고 가보기로 했다.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숙소에 짐을 두고 주변을 돌아다닐 때 들고 다니는 짐도 줄어들고 있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땀은 나니까 미니 선풍기는 방에 두고 손수건을 들고 다닌다. 또, 우연히 만나는 카페에서 아이패드가 생각나지만 언제 만날지 모르니 뒤늦게 아쉬움에 물들지 않게 얼른 털어낸다. 하고자 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니까.


손수건 : 땀과 바닷물 닦으려고

안경닦이 : 안경 쓰니까

지갑 : 지폐 보관

보조 배터리 : 길치 필수품

립밤 : 피곤해서 입술 틈


터질 것 같던 작은 가방이 이만큼 제 모양을 유지하는 게 기적처럼 느껴진다. 내일은 정말로, 생각한 만큼 느리게 거의 돌아다니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다. 내일도 왠지 일찍 나갔다 들어와 푹 자고 일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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