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베리 Jun 10. 2022

사계절을 사랑할 수 있어서

소중하면 에피소드 | 내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언제나 겨울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시리게 하는 때 술 한잔 마시고 걷는 일도, 안 마시고 걷는 것도 물론 좋고. 롱 패딩을 입고 오들오들 떨며 만난 붕어빵이나 계란빵을 사들고 오며 느끼는 뜨끈함, 허연 입김, 어묵 국물에서 오르는 김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 뿐이다. 그런데 그런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줄곧 벚꽃을 기다린다.


벚꽃은 2주도 채 피지 않는다. 그래서 벚꽃 나무에 꽃봉오리가 달리는 때부터 휴대폰 사진 앨범에 가득 차고 만다. 마침내 흐드러지게 피어나 땅 위로 떨어진 꽃잎까지 귀하다. 귀하다, 정말 귀하다. 출퇴근, 산책 등 마주치는 벚꽃마다 한참 보다 사진으로 담아내니 이맘때 즈음 자기 동네 벚꽃을 나눠주는 친구들이 많다. 그 마음까지 더해져 나는 또 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


그리고 여름. 여름에 태어나 여름을 견디기 힘들다,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뜨거운 만큼 나를 비롯한 대부분이 제정신이 아닌지 무슨 일이 벌어져도 여름이 벌어진다. 페스티벌, 휴가, 급 바다 여행 같은 급발진이 이상하지 않은 계절이라 그런 걸까. 점점 오르는 온도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수영 그리고 좋다고 느낀 적 없는 한 여름의 바다까지 곁에 두고 싶게 한다.


사계절 중 가장 늦게 만끽하기 시작한 건 가을이다. 피부가 건조해 가을밤은 꽤 오랜 시간 피하고 싶었다. 어느 날 아토피가 사라지고, 방법을 터득해 비로소 가을을 덤덤히 맞이할 수 있게 되어서야 계절이 지닌 색깔과 온도에 몸을 담갔다. 아마 갑자기 훌쩍 떠난 여행이 계절을 사랑할 수 있게 한 거겠지. 경주 , 순천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닌 시간이 가을을 무지막지하게 사랑한다고 외칠 수 있는 그 자체다. 이제는 여름이 끝나갈 즈음부터 높아지는 하늘, 철 모르고 돌아다니는 잠자리를 보며 가을색을 기대한다.


생각한 것보다 일찍 사계절을 사랑하고 만끽할 수 있어 다행이다. 어디에서나 좋았던 계절의 조각을 꺼내어들 수 있어서. 심지어 오늘은 겪은 적 없는 한 여름 동해 바다를 꺼내 지금 풍경과 빗대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이제 어깨의 짐을 덜어주기로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