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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Jul 04. 2022

그의 부재가 끼치는 영향

곱씹고 나면 에피소드 | 내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아빠가 집을 비우는 날은 흔치 않다. 그래서 그런 날은 엄마조차 긴장이 풀린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저녁을 먹고 난 직후까지 할 일이 많다가 루틴이 무너지는 유일한 때니까. 한 모임에서 1박 2일 여행을 떠난 아빠는 종종 사진을 보내왔다. 마침내 주말다운 주말을 맞이한 엄마와 나는 한참 사부작 거리며 각자의 할 일을 하다가, 내가 드라마를 시청하는 지점에서 만났다. 엄마는 한참 움직이다가도 드라마를 틀어두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가 수술했을 때나 쉼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면 드라마를 튼다. 


안타깝게도 드라마는 6회까지밖에 올라오지 않았고 더위에 지친 우리는 저녁이 되어서야 에어컨을 틀었다. 아빠가 없어도 낮에는 에어컨을 틀지 않는 걸 보면 습관이 참 무섭다. 치킨을 시켜 함께 먹고 좀 시원해지고 나니 동네 식당에 가서 먹을 걸, 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말한다.


애초에 떠오르지 않았던 걸로 아쉬워 말자


먹은 흔적을 치운 뒤 우리는 다시 거실에 늘어졌다. 시답잖은 이야기로 깔깔거리다 TV를 보며 씩씩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요일을 맞이하는 듯했으나 살짝(?) 충전된 엄마는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얼떨결에 일어나 아침을 먹는데 아빠 사무실에 들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미 정해진 답이 있는 물음이었고, 나는 미적거리다 그러자고 했다. 최근 새로 이사한 아빠 사무실에 굵은소금을 뿌려 오래된 먼지를 제거하자는 엄마의 원대한 계획은 몇 번이고 집을 왔다 갔다 하고 나서야 해낼 수 있었다. 


열쇠를 가지러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오늘 서로 무슨 꿈을 꿨는지 확인했지만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푹 잔 휴일일 뿐이었다. 사실, 이때 우리는 집에 가서 쉬었어야 했다. 하지만 엄마 친구분이 운영하는 중국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고, 후식으로 빙수까지 해치웠다. 집으로 오는 내내 엄마는 몰려오는 졸음과 사투를 벌였고 우리는 그대로 기절했다. 그렇게 쭉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으면 좋았겠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의 손에 들린 전복 박스. 그가 썰어주는 전복 몇 마리를 먹고 나서야 하루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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