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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May 26. 2022

여행인가 수행인가

견디고 나면 에피소드 | 내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시간은 흘러 마침내 머리도 마음과 비슷하게 적응해나갔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상상하며 불안해하거나 함부로 만족하지 않았다. 지금, 타들어 갈 것 같은 몸에게 집중했다. 목마르면 땡모반을 찾고 배고프면 카오소이나 팟타이를 찾았다. 심심한 날엔 안면을 튼 동네 가게에 가 맥주를 마셨다. 짧은 안부를 주고받기도 했다. 할 줄 아는 말은 별로 없으면서 완벽한 문장과 발음이 아니면 입을 열지 않았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어차피 서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지 싶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 외부의 말이 필요했다. 인사를 하고, 컨디션이 좋을 땐 돌아다니다 본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사람이 왜 이렇게 없는지, 휴일에는 뭘 하는지, 어떤 걸 가장 많이 먹는지 그런 것들. 이런 말들을 그때그때 기록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문득 든다. 사람 소리 말고 주변 소음이 필요해 도심으로 나간 적이 있다. SNS에서 본 한 ‘문구 덕후’의 가이드를 따라갔다.


도심 속이라 방심했던 탓일까. 분명 숙소 근처보다 빽빽이 서 있는 빌딩 덕분에 그늘이 많은데 더운 건 똑같았다. 평소 같으면 들어가지도 않는 쇼핑몰을 몇 걸음에 한 번씩 들어가 앉아있었다.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느껴지는 냉기. 이름도 알지 못하는 쇼핑몰 대여섯 곳을 들렀다. 특히, 어떤 쇼핑몰은 앉아있을 만한 곳이 많았다. 가만히 앉아 땀을 좀 식히면 주변이 보였다. 띄엄띄엄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 그렇게 2~30 여분씩 앉아 주변 소음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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