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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May 27. 2022

내가 만들어가는 여행

쌓아 두면 에피소드 | 내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처음 여행한 곳은 언제였을까? 지금 당장 떠오르는 곳은 대천해수욕장이었던 것 같다. 대하 축제에 가서 입에 넣은 생 대하의 식감이 생생하다. 우리 가족은 계절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는 했다. 체력 좋고 운전하기 좋아하며 세상 모든 계절 음식을 다 챙겨 먹는 아빠 덕분이었다. 다만, 아빠의 계획은 미리 공유되는 일이 없어 숙박이든 뭐든 예약하지 않아 난감한 때가 있었다. 모텔이나 여인숙, 민박집을 찾아 헤매던 밤들이 있었다. 그렇게 동생과 나는 자라서 멀리 가기 전 숙소는 꼭 예약하는 어른이 된 걸까?


계절마다 함께 하는 여행이 잦아질수록 서로 맡는 역할도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아빠는 운전하고, 엄마는 가끔 섬으로 향할 수도 있으니 간단한 간식을 챙겼다. 나는 기록을 남기거나 맛집 같은 걸 검색했다. 동생은 ‘자기 의견만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명이라도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의 그 한 명을 맡아 갈등을 빠르게 진화시키는데 힘썼다. 서로 어떤 취향인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여행 중에 알게 된다. 무심결에 하는 말이나 자연스럽게 응하는 태도 같은 것들에서. 무엇보다 가족여행에서 좋은 점은 보통 속도로 다니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으면 그 시간만큼만 있다가도 좋을 곳만 가고, 다 보지 못해 아쉽다면 언젠가 또 오면 되지 않냐는 태도로 다녔다.


가족과 첫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 아빠랑 엄청 크게 부딪힌 적이 있다. 아빠는 가고 싶은 곳이 많았고, 나는 예약이나 빨리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초반에 잠깐 자유여행을 계획했다가 빠르게 패키지여행으로 바꾼 걸 당시나 지금이나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여차저차 홍콩으로 행선지를 정했고 출발과 동시에 평화가 찾아왔다. 아빠는 여행만 시작하면 먹고 노는 것에 여유 있게 돈 쓰는 사람 - 제철 음식 좋아하는 미식가이자 애주가 -이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엄마를 제외한 우리 셋은 맥주로 화합을 도모했다. 여행 내내 이 국내여행할 때와 같은 평화가 이어졌는데 이건 우리가 쌓은 경험 덕분이었다. 운전할 필요 없으니 아빠까지 오롯이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대만으로 떠났다. 아빠는 특히 여행에 대한 기대가 높았는데, 아마 백종원 대표 열풍이 분 직후였을거다. 요리에도 관심이 많은 아빠는 온갖 여행, 음식 프로그램은 다 챙겨본다. 하지만 아빠는 아빠를 잘 모르지. 본인 비위가 약한걸 깜빡했었는지 우육탕면과 딤섬 몇 가지를 제외한 모든 것을 잘 먹지 못했다. 다행히 한식당을 들렀기에 망정이지 아마 그러지 않았다면 얼굴살이 쪽 빠진 채 귀국했을 거다. 이런 아빠를 곁에 두고 나머지 셋은 어찌나 잘 먹었는지. 또, 두 번째 해외여행이라 익숙해서 그런지 일정 틈틈이 우리만의 기록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여유 있게 돌아보기도 하고, 고량주 샘플러를 사 와 마시며 텐션을 올리기도 했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도, 누군가와 함께 해도 항상 최악의 기억이 없는 건 가족끼리 쌓은 태도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야심 차게 출발해 아쉬움이 남아 돌아설 때도 절절하게 매달리지 않을 수 있는 여유. 많은 정보를 찾아가서 다 꺼내어보지 않아도 괜찮고, 곁에 있는 사람이나 새로운 환경에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는 건 다 가족 때문이었다. 최근 다녀온 여행지에서도 마음 졸이지 않았던 게 너무 큰 행운이었다.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최대한 만족하고 감사하며, 내 보금자리에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편안히 놀다 가게 하고 싶다. 곁에 누군가 불쑥 찾아와도 숨 가쁘지 않게 갈 수 있는 여행을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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