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덜 걷고 싶어 늘 다니던 길을 벗어나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커다란 개가 컹컹 짖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주변을 살피었지만 어디서 개가 짖는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길가에 채송화가 피었지만 눈길을 줄 여유가 없다.
두어 걸음을 옮기니 다시 개가 짖기 시작한다. 소리를 따라 주변을 둘러본다. 2층 집, 계단 참에 생각했던 것만큼 큰 개가 나를 보고 으르렁댄다. 그 개가 담을 훌쩍 넘어 내게 달려들진 않을까 와락 겁이 난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저런 곳에 개를 키우는 거야..(죄송.. 무서워서) 슬쩍 눈이 마주쳤지만 이내 못 본 척 쫄지 않은 척 나는 걷던 속도 그대로를 유지하려 애쓰며 걷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마음을 먹고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골목이 울리도록 개가 짖으며 나를 바라는 게 느껴진다. 개는 벽을 넘어설 마음은 없는 듯 보였다. 기분 탓일까.. 개의 음성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나는 개를 올려다본다. 개가 나를 보고 더 짖을까 하다 그만둔다. "안녕.." 나는 개에게 나지막이 인사를 건네본다. 언뜻 큰 개가 혀를 내밀고 내게 웃어주는 것 같았다. 설마.. 아니겠지?! 너무 더워서 혓바닥을 내민 걸 거야..
그렇게 나는 큰 강아지와 조금씩 친구가 되었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저런 데다 강아지를 키우는 거야..(죄송ㅠㅠ 강아지가 혼자 적적해 보여서) 나는 녀석을 빠삐용이라 부를까 하다가 파트랏슈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강아지는 더 이상 나를 보고 짖지 않는다.
나는 골목길을 지날 때마다 아랫입술을 최대한 입 안쪽으로 끌어당겨 혓바닥을 탄력 있게 붙였다 떼면서 강아지를 부른다. 그러면 나의 파트랏슈는 얼굴을 내밀고 내가 저의 이름을 부르고 추파를 던지며 골목 끝을 벗어나는 걸 때로는 웃기다는 듯이, 또 때로는 한심하다는 듯이 지켜본다.
어떤 날은 내가 혀를 차고 저의 이름을 불러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심통이 났다. 한편 걱정도 되었다. 어디 아픈 건 아닐까? 귀찮아졌나?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나는 일부러 발을 쿵쿵 구르며 길을 걷는다. 그런 다음 소리를 죽여 녀석 가까이로 되돌아온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파트랏슈가 내가 갔을 법한 방향으로 고개를 길게 빼고 나를 찾는다. 내가 저의 아래 담장에 기대어 낄낄대자 파트랏슈가 당황한다.
골목길에서 나는 녀석을 애타게 불렸다. 나는 쿵쾅쿵쾅 "나, 간다~"라고 말하듯 길을 가는 척 살짝 되돌아온다. 녀석이 더 이상은 속지 않겠다는 결심이라도 한 건지 도무지 반응이 없다. 나는 강아지를 부르는 스킬을 이용해 파트랏슈를 부른다. 불쑥 머리가 올라온다. 그럼 그렇지.. 하는 순간, 에구머니나.. 60대 중후반의 남자분이다.. 인물이 개만 못하다.(오해 없으시길.. 워낙 파트랏슈가 잘 생겼다는.. 보다도 정이 담뿍 들었다는 의미) '으이구.. 인간아.. 내, 울 안에서 다 들었다..' 책망하듯 못마땅한 표정이다.
오늘은 파트랏슈를 볼 수 있을까?! 혹시 주인아저씨가 파트랏슈보다 먼저 고개를 든다 싶으면 나는 쌩~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골목을 벗어날 생각이다. 담벼락 아래를 서성이며 작은 소리로 파트랏슈를 부른다. 대답이 없다. 파트랏슈, 오늘도 네가 나를 바라다봐주지 않으면 나는 어쩌면 진짜 삐질지도 몰라.. 나는 샐쭉하니 씩씩대다가 다시 파트랏슈를 부른다. 자꾸만 자기 집 강아지를 부르는 소리에 주인이 작정하고 얼굴을 드러내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절대 파트랏슈를 부르는 게 아니라는 듯 노래를 흥얼거리며 파트랏슈에게 내가 왔다고.. 내가 여기 있다고.. 신호를 보낸다.
파트랏슈를 끝내 보지 못했다. 주인과 함께 어디 여행이라도 간 건지.. 파트랏슈가 집에 없는 건 거의 확실하다. 문득 파트랏슈를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 친구 상ㅇ이처럼.
*상ㅇ이는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인데 얼마 전 다른 친구를 통해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일피일 만남을 미루고 있던 차에 본인상 부고가 왔다. 췌장암을 앓고 있었다는 걸 부고를 받고 나서야 알았다. 모진 것.. 나는 속으로 상*이를 탓하고 원망했다. 내가 상*이를 잘 몰랐던 걸까.. 아니다. 무관심했던 거다.. 별것도 아닌 일들에 신경을 쓰느라 진짜 중요한 걸 놓쳤다는 생각에 나 자신을 견디기가 어렵다. 홀어머니에 장녀라 그런가.. 상ㅇ이는 어떤 연유로든 친구가 속상해하는걸 가슴 아파했던, 그런 친구란 걸 이제야 기억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