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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Sep 12. 2024

장구봉 영감탱이

  장구봉 영감탱이는 분명 사람들의 신경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 영감탱이라는 말이 어딘가 사람을 얕잡아 보는 듯한 어감이 있어 사용이 꺼려지기는 하지만 그 영감탱이님에게 영감탱이라는 호칭은 찰떡인지라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


  장구봉은 우리 집에서 5분 거리, 한 바퀴 도는데 나처럼 설렁설렁 걸어도 15분이면 충분하다. 나는 장구봉을 많아봐야 다섯 바퀴쯤 도는데 내가 산을 한 바퀴쯤 돌라치면 저만치서 어기적 어기적 걸어오는 영감탱이가 보인다. 산을 도는데 정해진 방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장구봉 둘레를 도는 사람들은 그냥 불문율처럼 시계 반대 방향으로 길을 접어든다. 그러나 영감탱이는 꼭 역으로 돈다. 산 길이야 한 사람 다닐 폭인데 영감탱이는 절대 길을 양보하는 법도 없다. 영감탱이가 저 만치서 보이면 나는 최대한 넓은 산길 어딘가에서 기다렸다가 영감탱이가 지나가면 그제야 길을 간다. 언뜻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영감탱이는 사람들이 산을 도는 모습을 산 정상 운동기구들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보듯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영감탱이는 골초 중의 골초다.  담배 쩐 내는 그 옛날 아버지가 밤새 노름하고 새벽녘  돌아와 풀풀 풍기던 냄새 저리 가라다. 얼굴은 거무튀튀하고 바짝 말랐다. 영감탱이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는 영감탱이의 전화를 받기는 하지만 애써 반기지는 않는다. 영감탱이는 아들도 하나 있지만 살가운 관계가 아니다. 영감탱이는 아침밥을 잘 먹지 않는다. 영감탱이는 전립선이 안 좋다. 영감탱이는 전화벨 소리를 항상 크게 해 놓고 늘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함으로써 내가, 그리고 같은 시간대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알게 된 정보다.


  영감탱이는 사람들이 운동을 할 때 운동을 하기보다 운동기구 사이사이 놓여있는 벤치에 쭈그리듯이 앉아서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도 처음에는 영감탱이를 피해 그냥 산을 내려오기도 했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눈길이 느껴지든 말든 무시하고 오히려 씩씩대며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영감탱이는 맥없이 쪼그리고 앉았다가도 어느 시점이면 언제 그랬냐 싶게 사람이 달라진다. 그 시점은 햇빛이 잘 드는 장구봉의 한 지점으로 태양빛이 줄기를 뻗는  순간이다. 장구봉 동쪽 주변 아파트 보다 해가 높이 떠서  빛이 광선처럼 나무들 사이로 쭉 뻗어 드는 그 순간, 그곳에 영감탱이는 마치 태양에 이끌리듯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영감탱이는  움츠렸던 어깨와 허리를 최대한 뒤로 넘기고 태양의 기운을 빨아들이듯 양팔을 위로 넓게 벌린 자세로 한참을 서 있는다. 이어서 주먹을 꽉 쥐고 마치 이집트 병사 같은 결연한 의지를 담아 체조를 시작한다. 우리가 어릴 때 배웠던 국민체조 중에 등배 운동, 옆구리 운동, 노젓기 운동 같은 동작을.


  나는 영감탱이가 마치 태양신을 접신하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장구봉에서 만난 언니는 외계인이 에너지원으로 태양빛을 받아 식물이 말려있던 잎을 펴듯이 몸을 쭉 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이 영감탱이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영감탱이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그건 분명 담배 때문일 거라는 추측을 해 본다. 문득 영감탱이가 분명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친 적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영감탱이가 어떤 면에서는  장구봉의 한 풍경이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부디 별일이 없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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