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시간 속 그들

by 쿠키

고요함에 눈이 떠졌다.

하얗게 내린 눈에 새벽이 빨리 왔음을 창 밖을 보고서야 안다.

알람조차 쉬어가는 오늘 같은 휴일에 이렇게 일찍 눈이 떠지다니..

갑자기 주어진 시간에 당황한다.


한기가 돈다.

주섬주섬 양말을 찾아 신고 카디건을 걸친다.

가스불에 두어 잔 분량의 찻물을 올리고 다시 베란다 창가에 선다.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바라보는 주택들 사이 어느 집 창에 불이 노랗다.

저 집에선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귀가 밝은 사람이 고요함이 밀려드는 소리에 일찌감치 눈을 떴는지도 모르겠다.


물 끓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얼른 가스 밸브를 잠근다.

잠깐 고민이 된다.

뭘 마셔야 되지..

언제부턴가 몸에 좋을까를 생각하며 차를 고른다.

그렇다고 왜 좋은지 왜 안 좋은지, 어떻게 좋고 어떻게 안 좋은지를 곰곰이 따져본 적은 없다.

막연하게 이 새벽엔 커피보다 둥굴레차가 낫지 않을까.. 뭐 이런 식이다.

둥굴레차 티백 하나를 뜯어 네모난 상표가 달린 실을 머그컵 손잡이에 한 바퀴 돌려 건다.

달궈진 주전자 코를 따라 흐르는 물이 치지직 파열음을 낸다.

한참 꿈을 꾸고 있을 가족들이 깰까 싶어 잠깐 물 따르기를 멈추고 물이 조금 식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하얗게 아침이 온다.

비가 온 날의 아침이 수채화 같다면 눈이 온 날의 아침은 수묵화 같다.

검은 새 한 마리가 수묵화 속을 낮게 날아간다.


여전히 저 집 한집만 노랗게 불을 밝히고 있다.

밤새 짙은 어둠을 물리려 불을 켜놓고 있었던 걸까..


나는 이 시각 무엇을 하고 있나..

오해와 의심, 분노와 좌절 사이 어디쯤 내 마음이 갈팡질팡 했었다.

명치끝에 묵직하고 둔중한 아픔 같은 게 매달려 있는 게 느껴진다.


우엉차 티백이 담긴 머그컵에 따끈한 물을 가득 채우고 식탁 의자에 앉는다.

어?! 눈이 오시네..

문득 이대로 하얗게 고립된 채 오래오래 고요 속에 머물러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