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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Jul 06. 2020

시어머니 분석 보고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시댁 식구들이 모이는 날은 웃음보단 싸움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난 이 사람들이 왜 모이는지 모르겠어. 맨날 싸우면서.”라는 조카 말처럼.


아이들이 어릴 적엔 그럭저럭 괜찮았다. 시어머니가 편했던 적은 없지만 그 당시에는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철 모르는 아이들 덕분에 괜찮은 척 버틸 수 있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데리고 찜질방에도 가시고 산책도 나가주셔서 나가신 동안 숨 막히는 시댁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문제는 아이들이 자라고 자신만의 생각을 갖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산책을 나가자 하면 군말 없이 따라나서고 싸구려 장난감에도 '할머니 좋아.'를 외치며 따라다니던 아이들이었다. 시어머니는 그런 아이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을 즐기셨던 것 같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도 모두 통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란다. 하나 둘 중학교를 가게 되며 할머니보단 친구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할머니의 말에 대꾸 아닌 대꾸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지난날이 좋다고 해도 자라는 아이들을 묶어두진 못한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어디를 가자해도 뚱하니 따라나서지 않고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 아이들에게 심술을 부리기 시작하셨다. 악순환이었다. 시어머니가 그럴수록 아이들은 할머니를 피하기 시작했고 그런 아이들에게 시어머니는 화를 내시는 일이 반복되었다.


시어머니는 마치 아이가 "나랑만 놀아줘."라고 떼를 쓰는 것처럼 모든 일의 중심은 나여야 하고 내 말에 모든 식구들이 복종해야지만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 듯했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중심이 되지 못하고 자신의 말에 반기를 들면 으름장을 놓거나 화를 내 집안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드셨다. 시어머니를 제외한 모두가 이유를 알았지만 감히 시어머니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몇 번인가 내와 형님이 시어머니 눈치를 봐 에둘러 말하기를 시도해봤다 욕만 먹고 입을 다물었다. "너네가 애들을 그딴 식으로 키워서 그런 거야." "너네가 시애미 욕을 하니까 애들이 저러지."라고.. 결국 모두 시어머니를 부담스러워하며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다.








시어머니 눈에 남편은 만만한 아들이었다. 무언가 시키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큰 아들에 비해 군말 않고 하는 작은 아들을 만만히 생각하셨던 것 같다. 가끔 불만을 이야기하면 "엄마를 무시한다. 남편복이 없으니 자식복도 없다."는 식으로 화를 내고 신세 한탄을 하는 것으로 남편의 입을 막으셨다. 결혼도 하고 두 아이의 아빠임에도 남편은 시댁에서 그런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내가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의 시집살이를 하는 동안 자신의 가족이 이상적인 가족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니,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처음 결혼하고 우리 집에서 고기를 먹은 후 남편은 쌈장용 고추장에 약간의 설탕과 참기름을 넣어 양념하는 걸 보고 "너희 집 이상해. 고추장에 왜 양념을 해. 그런 집 첨 봤다."라며 우리 집 깎아내리기를 서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집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반대되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행여 그런 내색이라도 하는 날에는 싸움을 해야 했다. 결혼할 때 내가 결심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아이들에게 싸우는 모습만은 보이지 말자. 늘 아버지의 폭력으로 마무리되는 부모님의 싸움을 보며 자란 탓에 부모의 불화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떤 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 아이만큼은 그런 환경에서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했기에 남편과의 싸움을 하지 않으려 피한 것이 내 긴긴 시집살이 시작일 줄은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남편이 변했다. "우리 엄마 이상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그 시기와 이유를 이야기해 본 적은 없지만 내 추측으로는 결혼한 친구들이 생기면서(남편은 친구들 중 가장 먼저 결혼했다), 회사에 자신보다 어린 신입사원들이 늘어나면서, 무엇보다 친정 식구들과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생각의 변화가 생긴 것 같다. 비교대상이 생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시기와 질투라는 부작용만 생기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는 긍정적은 효과가 생긴다.








고등학교 때 윤리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밖에서 법 없이도 살 좋은 사람이면 안에서 온갖 지랄을 한다고 하셨다. 자신의 남동생이 그렇다고. 사돈댁에서는 세상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위지만 집에서는 개망나니도 그런 개망나니가 없다셨다. 몇십 년이 지난 뒤 그 말을 생각하면 나는 두 사람이 생각난다. 밖에서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칭찬받았지만 집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폭력적이던 내 아버지와 언어폭력을 행하시면서도 가족이니까 잘되라고 하는 조언이라는 시어머니. 두 분 다 타인에게는 비치는 모습은 성격 좋고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며 예의 바른 사람들이었다. 단, 가까워지기 전에 한해서. 가까워지면 본색을 숨기기 어려워서일까? 두 사람 모두 친한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가족에서 잘못된 방법으로 풀어냈다.  이상적인 가족은 상하관계나 종속관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상적인 가족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서로 존중할 때 이루어진다는 걸 시어머니가 아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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