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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Jun 23. 2020

시어머니께 받은 선물  3가지



보통 칭찬은
휘발성이 강하고
악담이나 상처는
오래 남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시어머니와의 기억은
상처만이 남았다.




돌이켜보면 시어머니는 나름대로 시어머니라는 역할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그 철학이 워낙 독특하고 본인 기분에 따라 변하긴 했지만 말이다.


며느리들에 대한 시어머니의 초기 철학은 두 며느리에게 물질적으로 똑같이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큰며느리의 산후조리를 다 시어머니가 하셨으니 둘째 며느리의 산후조리도 다 시어머니가 해주셔야 한다던지, 큰 며느리가 출산 한 달 후 친정에 갈 때 옷을 사 입혀 보냈으니 둘째 며느리도 똑같이 사 줘야 한다던지, 큰 며느리 예물에 다이아몬드를 해줬으니 둘째 며느리에게도 다이아몬드를 해줘야 한다라던지 같은, 미처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들이 많았다.


겉으로만 보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진심이었건 아니었건 해주실 수 있는 것은 다 해주신 셈이다. 문제는 그걸 받는 사람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 시어머니 만족에 의해하시는 일이다 보니 내게는 전혀 쓸모없는 일인 경우가 많았고 그중 일부는 지극히 계산적인 것들도 있었다.







시어머니의 두 번째 선물은 결혼하고 첫 해 내 생일에 보내주신 반팔티와 현금 10만 원이 든 봉투였다. 감사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당시 시어머니의 선물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생색 내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시어머니는 전화로 반복해서 비싼 거임을 강조하셨고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눈치챘지만 모른 체했다. 당시 나는 왜 내가 필요하지도 않은, 원하지도 않는 선물을 받고 감사 인사를 수십 번 하고 더 큰 선물을 챙겨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정부모님은 하나라도 우리에게 더 주려 하시는데 왜 시어머니는 자식과 기브 앤 테이크를 하시는지를 말이다.

결국 난 그 옷을 단 한 번도 입지 않았다. 반항을 하려는 것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시어머니가 선물로 주신 반팔티는 골프웨어로 20대 중반의 내가 입고 외출할 만한 옷이 아니었다. 50대인 시어머니나 친정엄마가 입으신다면 화사하니 예쁠 주황색 가로 줄무늬가 있는 카라티. 아무리 선물한 사람의 성의를 생각한다고 해도, 멋이라곤 1도 부릴 줄 모르는 나라고 해도 골프웨어 반팔티는 도저히 입을 수가 없었다. 입으면 엄마옷 빌려 입은 듯한 느낌이 너무 심하게 났다. 짐작컨대 시어머니는 본인이 입고 싶으신 옷을 고르신 것 같았다. 친정 엄마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행여 시어머니가 아실까 장롱 속에 고이고이 모셔두던 티는 한참 후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 함께 살지 않았음에도 시어머니는 어찌 아셨는지 어느 날인가 자신이 선물한 반팔티를 입지 않았다고 한소리하셨었다.






시어머니의 세 번째 선물은 결혼 10주년이 되던 해 역시 부담과 함께 날아왔다.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시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이제 너희도 결혼한 지 10년 되네. 내가 선물로 100만 원 주마.”

“아니에요. 저 돈 필요 없어요. 저희가 드려야 하는데..”

나는 돈을 무지 좋아한다. 대머리가 된다는 공짜 돈도 좋아한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돈은 싫다. 받으면 꼭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적이던 물질적이던.

“내가 적금 타는 게 있어서 그래.”

“어머니가 무슨 돈이 있으셔서요. 적금 타심 어머니 쓰세요. 갖고 싶은 거 사세요.”

“네가 10년 잘 살아줘서 주는 거야. 이제 앞으론 없어.”

지금 생각해도 참 시어머니의 말투는 듣기 편하지 않다. 본인은 쑥스러운 마음을 농을 섞어 표현하신다 하는데 듣는 사람은 왠지 기분이 상하는 이영자식 화법이랄까. ‘이제 앞으론 없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마치 내가 돈을 달라고 한 듯한 기분이 들어 감사하단 마음보단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끝내 시어머니는 나에게 100만 원을 송금하셨다.

교훈을 가득 담은 아름다운 동화는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한다. 현실은 잔혹 동화다. 신데렐라는 과연 행복했을까처럼..


시어머니에게 돈을 받은 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형님도 10주년에 100만 원을 받으신 건가?’

‘나중에 형님이 아시면? 받으셨냐고 여쭤봐야 하나?’

‘아니야. 여쭤봤는데 못 받으셨으면 괜히 양쪽에서 혼날 거야.’

‘그나저나 이 돈 주시고 나중에 뭘 달라지려는 걸까?’

고민 끝에 남편에게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엄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남편은 쿨하게 “주셨으면 그냥 받아. 반땅 할까?”

‘아이고. 이 철없는 남편아. 언제쯤 당신 어머니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할 건데.’ 

결국 난 돈을 시어머니께 돌려드리기로 결심했다. 본인은 주셨다고 뿌듯해하실 텐데 막무가내로 돌려드릴 수도 없었다.  시어머니가 기분 상하시지 않게, 오해 없으시게 돌려드리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무렵 시어머니는 작은 집에 사시다 답답하시다며 조금 큰 집으로 이사를 하시기로 되어 있었다. 때마침 시어머니의 생신도 얼마 남지 않았었다. 고민 끝에 이사 비용 겸 생신선물로 돌려드리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사비용은 내가 받은 돈 100만 원으로, 그 당시 남편이 이사비용과 생신 선물로 예상했던 비용 50만 원은 생일 선물로 생각하고 함께 드렸다. 누구는 그 정도 돈이 뭐 그리 크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때도 우리 형편에는 결코 작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그 돈을 받고 좋아하시던 시어머니를 봤을 때는 드리기를 잘했다 싶었다. 너무 좋으셨던 나머지 시어머니는 "매년 이사해야겠다. 담에 이사하면 또 다오.”라는 말까지 하셨고 우리는 시어머니가 이사를 하시지 않기를 빌게 되었다. 늘 주변에 엄친아, 엄친며, 엄친손의 이야기만 모아 모아 듣는 시어머니에겐 용돈으로 100만 원씩 주는 아들, 며느리가 늘 부러우셨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안쓰럽고 한편으로 답답했다. 자식 노릇을 하려고 해도 부모 노릇을 하려고 해도 돈이 필요하다.








시어머니가 주신 첫 번째 선물은 남편이다. 가끔은 남의 편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시어머니의 모습이 보여 깜짝 놀라게 하지만 함께 한 세월이 길어질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가 붙게 되는 남편. 시어머니에게 받은 선물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선물이기도 하다.


남편은 내 며느라기 시절의 첫 번째 이유였다.(두 번째 이유는 형님) 아무리 시어머니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을 하셔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낳고 길러주신 분이니까 그것만으로도 나는 시어머니의 말씀을 잘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아마 시어머니도 처음에는 자신의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이니 정을 붙여 보려 하셨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마음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고 해야 될 수백 가지 이유보다 하기 싫은 단 한 가지 이유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시어머니와 난, 그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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