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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Jun 11. 2020

남자만 먹는 유산균이라고?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크게 두 가지 모습을 보인다.
늘 기가 죽어 눈치를 보거나
반대로 자기 멋대로 고집을 부리거나.
하지만 둘 모두 내면에는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해달라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




시어머니는 삼 남매 중 둘째셨다. 전형적인 중간에 끼인 자식. 남자 형제는 남자라 대접받고 여동생은 막내라 사랑받았는데 자신은 온갖 궂은일은 도맡아 하면서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서운함을 평생 가지고 계셨다. 어릴 적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으나 사랑받지 못했다는 마음 때문일까.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에게도, 자식들에게도, 손자들에게도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마음을 늘 갖고 계신 듯했다. “남편복 없는 년은 자식복도 없다더니.. 남편이 무시하니 자식들도 에미를 무시해.”라는 말을 종종 하셨다. 이 말을 하신다는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우리는 시어머니에게 잘못했다 빌어야 하는 상황이란 뜻이기도 했다. 언젠가 우리 집에 오신 이모님이 밤새 자신의 언니와 이야기를 한 후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맘을 좀 풀어주려고 해도 안되네. 너네가 힘들어서 어쩌냐.” 그렇게 시어머니는 평생 자신이 사랑받지 못했다는 마음으로 남을 원망하며 사셨다.



시집살이 한 사람이 시집살이를 시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차별로 사랑받지 못했다 생각하시는 시어머니는 나이가 드실수록 차별을 심하게 하셨다. 1순위는 큰아들, 2순위는 장손, 3순위는 남편과 둘째 손자(울 아들) 그리고 나머지들. 형님은 순위에서는 밀리지만 시어머니가 가장 의지하시는 분이시니 순위에 넣을 수 없다 해도 나머지인 우리와는 구별되는 위치시다.(그래서 참 힘든 위치이기도 하다.) 이런 차별은 차별을 하는 시어머니만 모르게 대놓고 일어났다.







벌써 10년은 된 듯한, 추석 때의 일이다. 평소 홈쇼핑을 즐기시는 시어머니는 갈 때마다 이것저것 구매를 해 놓으신다. 필요해서인 것도 있고 그저 스트레스 해소용인 물건도 있지만 나의 역할은 그 물건들의 필요성을 따지는 것이 아닌 시어머니가 그 물건들을 사야만 했던 순간의 당위성을 확인시켜드리는 것이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잘 사셨네요.” “그럼요. 이런 것도 하나 있어야죠.” “두면 다 쓸 데가 있어요.” 등등의 시어머니 맘에 드는 말만 해드리면 그만이었다. “이게 왜 필요해요?” “인터넷에서 사면 더 싼데 비싸게 사셨네요.” 와 같은 직언은 필요 없다. 한때 형님이 선별적 직언을 하셨으나 관계만 나빠져 포기하셨다. 어차피 내 돈도 아니잖냐며. ^^

이런 물건들은 보통 시어머니만의 물건인 경우가 많은데 간혹 1+1이나 2+1의 물건이 있는 경우 우리에게 나눠주시기도 하셨다. 물론 유통기한이 길어 본인이 다 쓰실 수 있는 경우에는 예외기 때문에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문제의 유산균은  유통기한이 짧아 우리에게 돌아온 케이스.

명절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 시어머니가 냉장고에서 유산균을 한 통 꺼내 주셨다.

 

“이게 둘째 피부에 좋단다. 가져가서 먹여라.”

이미 남편 건강에 좋다는 전제를 다심으로써 다른 이는 손대면 안 된다는 의사표시를 하셨음에도 시어머니는 다시 부연설명을 하셨다.


“홈쇼핑에서 싸게 팔더라. 그래서 나  한통, 큰애 한통, 둘째 한통씩 먹으면 될 것 같아 주는 거야. 꼭 챙겨 먹여라. 언니는 줘도 안 챙겨 먹여. 못된 것 같으니라고. 시어머니를 꼭 저렇게 무시한다니까.”

시어머니의 이런 과대망상적 피해의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에 그때도 지금도 그냥 무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게 뭔데요?”

“유산균인데 남자만 먹는 거라더라.”

“네~~~ 에?”

‘남자만 먹는 유산균? 그런 것도 있어? 유산균이? 뭐지? 근데 어머니는 왜?’

원래 이치에 맞지 않는 말씀을 종종 하시는 시어머니셨기에 남자만 먹는 유산균이라는 말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가지고 왔다. 그렇게 남편과 아들(아들도 남자니 먹여도 된다 싶었다) 먹이던 어느 날, 문득 남자만 먹는다는 유산균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나도 참 에지간히 둔하다. 통에 선명하게 찍혀있던 이름을 한참이 지나서야 보다니.


 



‘여에스더 유산균’ 

남자만 먹는다는 유산균의 이름을 보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적어도 인터넷을 뒤져 찾아봐야 알 수 있는 외국산 유산균일 줄 알았는데 나도 아는 너무나 보편적인 유산균이라니. 그게 남자만 먹는 유산균이라고? 아마 내가 딸이었다면 서운해하고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며느리였고 본인의 생각 외에 다른 어떤 의견도 받아들이시지 않는 시어머니의 성격을 알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남편에게 한껏 비꼬아주었을 뿐.


“어머니가 이건 남자만 먹는 유산균이라고 당신만 먹이라고 하시대.”

“그래? 그런 유산균이 있어?”

“응. 당신도 신기하지? 무슨 유산균이 남자 여자를 구분한대.”

“그런 게 어딨어. 당신도 같이 먹어. 유산균은 변비에도 좋지 않나?”

“아냐. 남자만 먹는 건데 내가 먹고 남자 되면 어떡해..”

“ㅋㅋㅋ 그럴 리가.”

“근데 이 유산균 이름이 '여에스더 유산균'이네.”

시어머니만큼 홈쇼핑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유산균 이름을 듣더니 단박에 눈치를 챘다.

‘당신도 당신 어머니 이상하지? 난 어떻겠어?’



그렇게 남자만 먹는 유산균은 정확히 남자들만의 뱃속으로 사라졌지만 씁쓸한 기분은 유산균을 먹은 남자들이나 먹지 못한 여자들이나 오래도록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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