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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Jul 14. 2020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한다는 남편



남편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처가에 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우리가 결혼했을 무렵에 유행처럼 사위들이 처가살이를 선호했다. 며느리들은 시댁에 가면 엉덩이 붙일 틈 없이 일을 해야 하지만 사위들은 처가에 가면 백년손님 대우받으며 편하니 돈도 아낄 수 있고 대우도 받을 수 있는 처가살이가 얼마나 좋냐는 식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던 시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요즘 남자들은 처가살이가 좋다고 하는데 당신은 어때?" "옛말에 겉보리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한다고 했어." 그 말을 듣고는 멍했던 기억이 난다.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아는 그 남자 맞아?'

그런 마음이었던 탓에 육아에 도움받으라며 친정 근처에 집을 얻었지만 정작 남편은 친정에 가려하지 않았다. 밥 한 끼라도 먹을라치면 자긴 집에 갈 테니 너 혼자 먹고 오라며 가버리기 일쑤라 친정 근처에 살면서도 가까운 친정보다 먼 시댁에 더 자주 갔었다. 그러던 남편이 변한 건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큰 동생이 결혼을 하고 나서였다.



올케가 시집을 오고 나서 한 달에 한두 번 저녁을 먹으러 왔다. 친정집은 좁기도 하고 여자가 없는 집이라 변변한 살림살이 하나 없었다. 자연스레 근처에 우리 집으로 친정 식구들이 모이게 되었다. 시댁에서는 막내라 자신의 의견 따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데 친정에서는 남편이 맏이였다. 동생들이 "매형 매형"하며 남편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고 친정아버지 역시 우리 의견에 조용히 따라주시니 남편은 점점 친정 식구들과의 만남을 편하게 받아들였다. 비교 대상이 생기면서 남편은 각자 의견만 내세우고 남의 의견은 듣지 않는 자신의 가족이 막연하게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 같다. 그 타이밍에 한 가지 일이 발생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무렵 형님은 크리스마스 직전 조카들과 시어머니를 우리 집으로 보내셨다. 딱히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조카들에게 좋은 크리스마스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과 신정을 시어머니와 함께 보내기 싫은 마음에 하신 일이란 걸 알고 있다.

형님의 입장에서 보면 똑같은 며느리인데 가까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신정까지 시집살이를 하기 싫으셨을 테고 시어머니는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으니 좋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참 힘든 일이었다. 하루 종일 밥하고 설거지하고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시어머니 말동무까지 해드리고 나면 하루가 갔다. 그래 봤자 1년에 두어 번인 일인데 뭐가 그리 힘드냐고 할 수도 있다. 근데 사람 맘이 참 간사해서 매일 하는 일보다 안 해도 되는 일을 1년에 두어 번 하는 것이 더 하기 싫다. 무엇보다 방문 날짜부터 모든 나의 일과를 시어머니와 형님이 결정하는 것이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며느라기였던 나는 싫은 내색 없이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당연한 듯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조카들이 중학교에 가며 공부 때문에 크리스마스에 우리 집에 오지 못하게 되었다. 남편은 친정과의 모임을 즐기기 시작했고 시댁에서 우리 집 방문이 줄어든 시기라 남편에게 생각했던 말을 꺼냈다.

"우리  번도 명절에 친정   없잖아. 올케도 있고 하니 신정에는 친정 식구들이랑 보내면  될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말을 하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 그러지 . 그게  어렵다고."

"어머니가 싫어하시지 않을까?"

그 무렵 친정 모임을 할 때마다 시어머니에게 보고 아닌 보고를 하는 남편 덕분에(철없던 이 남자 친정 모임을 하는 날이면 꼭 시어머니와 전화를 했다. 말투를 들어보면 나 잘했지 하며 칭찬해 달라는 투인데 그걸 왜 시어머니께 하는지 난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시어머니의 눈총을 받고 있었지만 남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 그런  없어."

남자들은 참 한결같이 단순하다. 아니란 걸 알았지만 모른 척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경고했으니까.

그렇게 첫 해는 우리 집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즐겁게 신정을 맞았다.

둘째 해에는 갑자기 해돋이를 보러 가자는 의견이 나와 급하게 막내에게 펜션 예약을 시켰다. 분명 해돋이 명소들의 펜션은 만실일 텐데 기특하게도 막내는 펜션을 예약했다. 능력자라고 모두 막내 칭찬을 했는데 가 보니 펜션에 우리 가 유일했다. 뭔 일인가 했더니 동해가 아닌 서해에 펜션을 예약해 놓고 뿌듯해하는 막내 때문에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시댁 사람들 중 유일하게 개량이 되기는 했지만 시어머니 핏줄인 남편을 잘 받아준 동생들 덕분에 친정 모임은 늘 즐거웠다. 그리고 세 번째 해. 올해는 동해로 해돋이 여행을 갈까, 집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을까 고민하던 차에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야, 언니가 크리스마스랑 신정은 애들 데리고 너네 집에서 보내란다."

"?"

"23일쯤  거다."

늘 이런 식이 었다. 나는 아무리 가족이어도 ‘언제 갈까 하는데 너네 시간은 어떠냐’라고 묻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가족인데, 내 아들 집에 내가 가는데 허락받고 가야 하냐는 마인드셨다. 우리 계획 따위는 시어머니가 오신다면 모두 바꾸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쌓인 불만이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한 달에 한두번은 만나니 나중에 만나도 된다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임은 특별했다. 다른 모임은 시간을 옮길 수 있지만 그 모임은 내가 없어도 진행된다. 12월 31일은 1년에 딱 하루니까. 내가 명절에 유일하게 친정 식구들과 있는 날이니까. 그냥 그 모임에 나만 빠지는 것이 싫었다. 무엇보다 시댁에서도 소외되는 내가 친정에서도 소외되는 것 같아 싫었다.


"어머니,  연말에 친정 식구들이랑 약속 있어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크리스마스만 보내고 간다거나 아니면 다음에 온다고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상식은 내 상식과 달랐다.


"그래? 그럼 너는 갔다 와라. 우리는 집에 있으마."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집에서 크리스마스와 신정을 보내야겠다는 의지였다. 친정에 그 시간을 양보할 수 없다는 심술이셨다.


"저희 1 2일로 나갈 수도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시어머니의 얼굴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그래?"

"크리스마스 보내고 가시던지 신정 지나고 오셔야   같아요."

" 우리가 귀찮냐?"

예전이었다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친정 식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했을 것이고 여기까지 대화가 가지도 못했을 테지만 그 날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시어머니가 짜증이 났다.


"귀찮은  아니라  어머니 오시는  불편해요. 요리도  못하는데 때마다 밥도 해야 하고 반찬도 신경 써야 하고 하루 종일 쉬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힘들어요.”

"그래? 알았다."

영하 40도는 될 듯한 싸늘한 목소리로 시어머니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시어머니와의 전화 통화 내용을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어이없어하며

"됐다고 그래. 우리 집 스케줄을 왜 자기네들이 맘대로 정해."라고 화를 냈지만 여전히 남편은 자신의 엄마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나와의 통화내용을 형님에게 전하셨다. 형님의 이야기에 살을 마구 붙여 내게 전했듯 내 이야기에도 살을 마구 붙여..

잠시 뒤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들이 짐이냐며 화를 내시는 형님께 그런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약속이 있으면 거절하면 되지 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냐며 화를 내시는 형님께 더 이상의 이야기는 소용이 없었다. 그저 잘못했다고 빌어야 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억울하기도 했고 속상하기도 했다. 신정을 친정 식구들과 보내고 싶다는 내 마음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지, 시어머니와 형님께 욕을 먹여야 하는 배은망덕한 행동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며 한참을 형님께 잘못했다 빌고 시어머니께 전화해 또 한참을 잘못했다 빌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그 사람들이 잘못한 건데 네가 왜 빌어. 전화하지 마.”라며

화를 냈지만 다른 대체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 날의 시어머니의 마음을 안다. 시어머니는 화목해 보이는 친정 모임을 늘 질투하셨다. 한 번도 시댁 모임은 화목했던 적이 없었다. 시어머니인 들 왜 화목한 가정을 꿈꾸지 않으셨겠는가. 하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화목한 것인지 시어머니는 알지 못하셨다. 그저 모두가 자신을 섬기면 그것이 화목할 거라 생각하셨다. 남편은 아니라고 했지만 남편보다 내가 시어머니를 더 잘 알았다. 내가 본 시어머니는 사랑받아본 적이 없어 사랑하는 법도, 사랑받는 법도 모르시는 분이었다. 남이 가진 것을 질투하고 부러워하느라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불행하신 .



그 날의 형님의 마음을 안다. 아이들에게만이라도 좋은 기억을 주고 싶었던 형님의 마음을. 형님은 시어머니께 그러면 어떨까 의견을 물어보셨다고 했다. 우리가 계획이 있으면 어머니께 거절하면 되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형님은 알고 계셨다. 시어머니에게 그런 게 통할 리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면서도  이익을 위해 모른  자신을 속이며 산다.



그 날의 남편의 마음을 안다.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고 싶었던 자신의 엄마의 민낯을 봐버린 남편의 마음을. 부모가 자식을 제대로 보기 어려운 것처럼 자식도 부모의 본모습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그 날의 내 마음은 모르겠다. 꾸역꾸역 잘도 참아왔는데 왜 터져버렸던 건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잘못했다 비는 대신 앞으로의 관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물러서지 않았다면 그 후의 일을 막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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