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진짜 말하지 않아도 알까요?

by 꾸미





지난 주말 엄마가 계신 용미리 납골당에 다녀왔다.

벌써 엄마가 떠나신 지 17년.

이제는 엄마에 대한 기억은 아련한 느낌으로만 남아있다.

엄마와 나는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나는 철이 없었고 엄마는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한 분이셨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그 시절엔 이해되지 않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 그 나이가 되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삼 남매의 막내였던 엄마는 늦둥이 고명딸이었다. 아버지의 표현대로라면 부잣집 늦둥이 막내딸이라고 했다. 사람마다 부자의 기준이 다르니 엄마가 부잣집 딸이라는 기준은 아버지의 기준일 뿐 실제로 부자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40년대생인 엄마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문산에서 서울로 양장 학원을 다녔을 정도면 결혼 후에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자라는 동안은 부족함 없이 지내지 않으셨을까 싶다. 엄마는 결혼 전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 그저 아버지가 술주정하시는 이야기에 따르면 외가댁에서 가난한 아버지와의 결혼을 반대했고 그것에 맘이 상한 아버지는 엄마의 친정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다는 정도만 알 수 있었다. 어릴 적 아주 가끔 외가댁에 가는 날이면 돌아오는 길 아버지는 늘 누군가와 싸우셨다. 택시 운전기사가 길을 멀리 돌아왔다거나 버스가 늦게 온다거나 가겟집에서 물건을 사면서 아무 이유 없이 화를 내고 싸움을 걸었다. 어린 난 싸우는 어른들이 그저 무섭기만 했다. 싸움을 하는 아버지가 싫었지만 차마 대들진 못하고 약한 엄마를 탓했다. 엄마가 외가댁에 가지 않았음 아버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 테고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기 위해 싸움을 하지도 않았을 거고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분을 우리에게 쏟지도 않았을 테니까. 술을 먹지 않고 화를 내지 않을 때도 다정한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술을 먹고 화를 내는 아버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린 마음에 엄마에게 외가댁을 가지 말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하필 외시촌들과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던 우리는 외갓집에 가도 재미가 없었다. 외가 식구들은 친절했지만 재미는 없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버지는 늘 불안 불안했다. 결혼 후 남편이 싫어해 친정에 가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 거기에 더해 가지 말라는 하나뿐인 딸의 말이 엄마의 맘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 철없고 이기적이었던 나는 결혼 후에나 알았다. 결혼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시집은 당연히 싫고 친정도 불편하고 내 집이 제일 편해진다고 하지만 친정은 몸이 편하고 불편하고의 의미가 아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라는 걸 오랜 시간을 돌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릴 적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별로 없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편과 까탈스러운 홀시어머니를 모시며 장사를 하고 우리들을 키우며 시집살이를 해야 했던 엄마는 분명 가슴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많았을 거다. 아버지와 함께 장사를 하셨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활동적이던 엄마와 달리 사람을 싫어하고 활동적이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엄마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했다. 어디를 가던 목적지와 돌아오는 시간을 정해놓고 지켜야 했고 미용실조차 맘 놓고 가지 못했다. 늘 엄마는 불행했고 나도 불행했다. 하지만 엄마는 자존심에 불행하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했다. 덕분에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좋은 평판을 얻었다. 본인의 자존심과 너희를 위해라는 마음으로 버틴 엄마의 마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우리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마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양의 감정을 담는다. 블랙홀 같은 마음은 모든 감정을 끌어들여 삼켜버리기 때문에 슬픔, 분노, 우울과 같은 감정은 참으면, 속으로 삼키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블랙홀인 줄 알았던 마음은 바람을 불아 넣는 풍선처럼 덩치를 키우다 어느 순간 빵 하고 터지며 잊은 줄 알았던 슬픔, 분노, 우울과 같은 나를 좀먹는 감정들이 쏟아낸다. 엄마의 마음 풍선이 터진 순간 쏟아져 나오는 감정에 상처를 입은 건 엄마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크기만 하면. 큰 딸인 내가 자립을 할 수만 있으면.’ 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던 엄마는 기대와 다른 나에게 실망하고 분노했다. 지금의 나와 내 딸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엄마와 내 사이가 조금은 더 낫지 않았을까. 엄마와 난 아버지라는 공공의 적이 있었지만 서로를 지키지 못했다. 엄마는 여태껏 너희를 위해 희생한 것에 대해 보상을 받을 거라 기대했지만 감옥에 갇혀 두려움 속에 살았던 나는 감옥 밖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히느라 그런 엄마의 희망에 응답하지 못했다. 엄마도 나도 힘들 때 투정 부릴 곳이 필요했지만 서로에게 그런 안식처가 되어 주기엔 나는 너무 어리고 내게 주어진 짐이 무거웠고 엄마는 지칠 때로 지쳐 다른 이를 이해할 여유가 없었다. 모진 말과 외면을 뒤로한 채 나는 결혼을 하고 집을 떠났다.





우리는 흔히 ‘맘은 그렇지 않은데 표현을 안 해서 그래.’라는 말을 한다. 대놓고 광고에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고 할 정도로 말을 안 해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받는다. 마치 이해 못하면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말로 혹은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일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말로 표현되어 상대방에게 전달되었을 때의 위력은 훨씬 더 크다. 그 당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함께 울고 대신 화도 냈지만 내가 엄마의 힘든 맘을 알고 있다고 전하지는 못했다.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꼭 말을 해야만 아냐는 광고 속 생각은 틀렸다. 말로 표현되어야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다.



삶의 모든 말과 행동에도 재능이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있고 같은 말이여도 이해하기 쉽게 혹은 상대방이 마음 상하지 않게 혹은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있다. 무심코 행하는 행동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작은 배려의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도 있다. 타고난 재능은 그림이나 무용, 공부와 같은 것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말과 행동에도 타고난 재능이 있다. 그림이나 무용, 공부와 같은 재능은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 하지만 말과 행동의 재능은 삶에 있어 어쩌면 다른 모든 것들보다 우선으로 필요하다. 없다면 연습으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때 엄마에게 내가, 나에게 엄마가 서로의 맘을 말로 전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지금 후회보단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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