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주부는 전문직일까?

자칭(?) 경력 20년 차 아줌마 이야기 1

by 꾸미


전업주부 20년. 처음부터 전업 주부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전업주부가 되었다. 결혼 전 내 직업은 동네 보습 학원 강사.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되었다. 지금은 학원강사나 과외 선생님도 버젓한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지만 그 당시에 학원 강사는 비정규직으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불안정한 직업이라 스쳐 지나가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전문 과외 선생님의 개념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과외를 하는 사람은 직장을 못 구한 사람 정도로 생각하던 시절. 그래도 돈이 들어오니 이력서를 넣는 족족 떨어지는 회사에 목숨 걸 필요성이 자꾸 줄어들었다. 회사보다 적은 시간 일하고 회사만큼 돈을 버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경력이 쌓여 대우를 더 받는 것에 만족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결혼을 했다.






그 당시 많은 여성들이 그러하듯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지금은 일하는 여성의 결혼과 출산에 대해 예전에 비하면 많이 너그러워졌다. 물론 아직도 남자와 동일한 대우를 못 받는다 불평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내가 일했던 1990년대는 결혼한 여자는 대부분 결혼과 동시에 자의 반 타의 반 일을 그만두는 분위기였다. 회사에서의 차별에 지칠 대로 지쳐 스스로 도망치기도 하고 회사의 무언의 압박에 그만두기도 했다. 학원 강사는 관례처럼 그만두는 편이었다. 퇴직금이니 보너스니 하는 복잡한 금전 관계도 없고 맘만 먹으면 잠깐 쉬었다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달콤한 신혼에 밤낮이 바뀌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고 결혼을 이유로 학원을 1주일씩 쉴 수는 더더군다나 없었다. 학원은 학교가 아니니까. 나 역시 그렇게 그만두었고 아이를 낳았다. 언제든 내가 원하면 다시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실제로 큰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학원에서 몇 번이나 전화가 왔었다. 파트타임으로라도 일해줄 수 없느냐고. 그런데 거절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이 싫었다.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어린이집이 많지도 잘 되어 있지도 않았고 내가 출근하기 위해 아이를 맡겨야 하는 시간은 오후, 어린이집의 다른 아이들이 엄마 품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그렇게라도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길 원했다.






참 야속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맞벌이는 돈을 얼마를 번다더라. 누구 와이프는 얼마를 번다더라. 는 이야기를 한다. 아이에게 엄친아가 있듯 전업주부에겐 '남친와'가 있다. 남편 친구 와이프. 엄친아가 모두 서울대고 모두 대기업에 다니듯 '남친와'도 전문직에 남편보다 돈을 더 잘 번다. 나는 한 번도 누구 남편이, 누구 아빠가 돈을 많이 번다더라. 승진했다더라. 대기업 임원이라더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물론 남편이 악의가 있어서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안다. 나 스스로 전업주부라는 것에 대해 열등의식을 느끼고 있어서라는 것을 안다. 누가 그래서가 아니라 내 자존감이 문제라는 걸..





집에서 아이 잘 키우는 것이 돈 버는 것이라 생각했다. 결혼 초 남편의 월급은 90만 원이었다. 일회용 기저귀는 사치였다. 천기저귀를 사용했다. 밤에 잘 때, 외출할 때만 일회용 기저귀를 썼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좋은 거라 환경을 생각해라고 생각했다. 모유를 먹이고 싶었지만 한 달이 지나면서 아이는 모유를 먹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분유를 사야 했다. 엄마들이 욕심에 먹이고 싶어 하는 고급 분유는 시도도 못했다. 병원에서 먹이던 가장 저렴한 분유를 그대로 먹였다. 분유를 바꾸는 것도 어렵다더라. 잘못 바꾸면 탈 난다더라 하며 병원 분유를 그냥 먹이는 것을 합리화했다. 그 당시 남편 월급은 90만 원이었다. 천기저귀를 쓰고 저렴한 분유를 먹이고 브랜드 아이 옷을 사지 않았지만 분유값 대기도 빠듯했다. 남편 월급이 나오면 분유 한 박스부터 쟁여야 마음이 든든했다. 신생아 때부터 먹성 좋은 큰아이는 신생아실 간호사들 증언에 따르면 다른 신생아들이 40을 먹을 때 80을 먹는다고 했다. 육아 사이트에서 엄마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 장난감이나 책은 살 엄두도 못 냈다. 문방구를 하시던 친정아버지가 챙겨주시던 장난감이 다였다. 책은 연년생을 키우시는 형님이 물려주시는 게 다였다. 남편은 삼식이가 되었다. 아침 먹고 도시락 들고 출근,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아침을 못 먹고 출근할까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계셨다. 이틀에 한번 전화를 드려야 했다. 하루만 늦어도 전화기 너머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너 오랜만이다." 그럴 필요 없다는 걸 알았지만 내 무의식을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보모에 가정부에 대리 효도까지 하고 있는 전업주부인 나는 무보수의 전문직이었지만 자격증(?)이 없어 전문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게 사는 전업주부. 그게 사람들이 보는 나였다.






최근 주부의 가사노동을 돈으로 환산해 그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척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인식과 대우도 변했을까? 만일 주부의 가사노동을 하나의 직업으로 인식한다면 경력 단절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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