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브런치 매거진을 시작하며

by 김성민




브런치를 시작하는 첫 매거진 제목입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러시아 시인 푸슈킨이 (1799-1837) 쓴 시의 제목이지요. 시 전체를 옮겨볼까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생각해보면 어떤 일이든 겉에서 보는 것과 실제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대상일수록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지요. 기대와 달리 좋거나 기대와 달리 나쁘거나. 저는 기대와 달리 나빴던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기대와 달리 좋았던 일들은 따로 돌봐줄 필요 없이 스스로도 잘 있으니까요. 기대와는 달리 나빴을 때, 그러한 기분을 ‘속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누가 누구를 속인 걸까요. 사실 저를 속인 사람은 없었습니다. 속은 ‘나’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속다’ 는 '실망하다'라는 말보다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지지만 '기대와 달랐다'는 기분을 이 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해주는 말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 학교에만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야, 그 사람과 사귀면 얼마나 근사할까,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집에서 살게 된다면, 그 사람과 결혼한다면...행복할거야.



사람은 제각기 다르기에 같은 일에도 다르게 반응합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반드시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결국 직접 겪어봐야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경험에는 시간과 비용이 들고 심지어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도 있습니다. 물론 돌아갈 수 있다하더라도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대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계속 가던 길을 가느냐 아니면 다시 돌아가느냐. 그건 개인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겠지요.






푸슈킨은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괴로운 일도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당시엔 어둠으로 채색된 일이 시간의 세례를 받으면 어둠은 희미해지고 보이지 않았던 어떤 의미가 비로소 나타난다는 것이겠지요. 지금은 알 수 없으나 시간이 지나고서야 소중하게 보이는 것들. 하지만 때로는 그 시간을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설령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더라도 터널의 끝이 도저히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때 저는 책을 읽었습니다. 어떤 이끌림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책 속에 늘 답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위로는 얻을 수 있었습니다. 위로는 때로 토닥여 주는 손길이었고 가만히 들어주는 경청이었으며 마음을 알아주는 이해였습니다. 책이 있어서 통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책 덕분에 만들어진 풍경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읽고 쓴 기록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책은 속이지 않는 다는 것. 책은 늘 정직하게 읽은 만큼 쌓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그렇습니다. 책이 저를 속일 날이 올까요? 그때는 다른 방도를 찾아봐야 겠지만 최소한 저는 책에 속았던 시간에 감사할 것입니다. 책과 함께 한 시간에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저는 오늘도 책을 놓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KakaoTalk_20190920_234849517_02.jpg 여행도 책을 따라. 바르셀로나의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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