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 얼굴이 된다

이슬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by 김성민


휴일에 다 읽겠노라고 마음먹었던 에바 일루즈의 책을 찾을 수가 없어서 기운이 빠진 채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 아무리 훑어보아도 내가 찾는 책만 보이지 않았다. 다른 책꽂이에 있거나 어느 가방 안에 숨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빨강 표지의 책이 보였다. 찾는 책은 아니었지만, 번쩍, 눈에 띄었다.



이슬아의 에세이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지난달 고마운 이웃분이 선물로 주신 책이었다. 가볍게 읽어보라는 메시지와 함께. 글보다 그림이 많으니 정말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으리라 생각하며 펼쳤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엄마 복희와 딸 이슬아의 이야기로 채워진 페이지가 가볍게 넘어가지 않았다. 여백 사이로 나와 엄마의 이야기가 자꾸만 끼어들었기 때문에.



열여덟살 때부터 독립을 꿈꾼 이슬아는 부지런히 돈 모을 궁리를 하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여러 알바를 뛴다. 돈을 더 벌려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돈이 없는 것보다 더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일을 해야 시간 대비 고수익일까? 이슬아가 누드모델이 된 계기다. 나에게는 누드모델이라는 알바경력보다 엄마의 반응이 더 신선한 충격이었다. 누드모델을 하겠다는 딸의 말을 듣고 엄마는 말한다. ‘무엇을 준비해야 해? 알몸이 되기 전에 네가 걸치고 있는 옷이 최대한 고급스러웠으면 해.’



이슬아의 솔직함보다 엄마 복희와의 관계, 이슬아가 ‘우정’이라고 부르는 관계가 더 놀라웠다. ‘엄마와 딸, 서로가 서로를 고를 수 없었던 인연 속에서 어떤 슬픔과 재미가 있었는지 말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우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우정.’





대학시절 친구가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어느 모임에 같이 가지 않겠냐는 나의 제안에, ‘엄마와 영화를 보기로 해서 못가겠다’ 고 했던 말이. 그때 나는 엄마와 영화를 본다는 사실이 매우 신선했는데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엄마와 단 둘이 영화를 본 적이 없을 뿐더러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엄마와 우정 비슷한 관계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엄마 복희와 딸 이슬아의 ‘우정’은 내가 전혀 경험해 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경험할 가능성이 희박한 관계처럼 보였다.



모든 엄마와 딸, 각기 그들만의 소통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모습의 관계가 더 좋다고 우열을 말할 수 없다. 다만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읽으면 반사적으로 나와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엄마와 맏이로 태어난 나. 다른 점만큼이나 닮은 점도 많을 텐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르고 비슷하냐에 관해서는 언제나 의견이 엇갈린다.



어딘가 슬픈 구석이 있는 제목,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를 보면서 엄마의 우는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던가. 눈이 큰 사람이 잘 운다는 근거 없는 말이 맞다면 엄마는 쉽게 우는 사람이었다.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면 어김없이 울었다. 그러나 그건 ‘울기’에 포함될 수 없다. 실제 벌어지는 일로 엄마는 운 적이 있던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동생이 다섯 살 때쯤 차사고로 다리가 거의 절단이 날 뻔 했을 때에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아무도 모르게 우셨는지는 모르겠다. 엄마는 잘 웃는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은 엄마의 환한 웃음을 좋아한다.



엄마가 엄마이기 이전, 결혼 전 엄마는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들어가기 어려운 직장을 6개월 만에 그만두었는데 위계적인 서열 구조가 불만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보다 자세한 사정이 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들을 수 이유는 그것이 전부였다.



딱 그것이 엄마와 나와의 거리처럼 느껴졌다. 더 자세히 묻지 않는 딸과 더 자세히 말하지 않는 엄마. 언제부터일까 그렇게 된 것은. 엄마의 생일날, 여덟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선물로 장미꽃 향수를 마련했지만, 그 향수가 자동차 밑바닥에서 구르던 것을 보았을 때, 엄마에게만 말한 비밀이 가족은 물론 동네 엄마들도 알았을 때, 옆에 누가 있으면 잠이 불편하다고 하여 엄마 옆에서 잘 수가 없었을 때. 어디서부터가 시작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홉 살 때였다. 같은 반 남자아이가 sex 라고 쓴 단어를 두고 키득키득 웃고 있길래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더 큰 소리로 웃는 게 아닌가.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에게 물었다. 에스이엑스가 무슨 뜻이냐고. 그랬더니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런 건 몰라도 돼!’ 나는 방으로 도망갔고 그 때부터 나만의 방을 만들었던 것 같다. 마음 속 방을. 내 몸과 나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엄마에게 말한 기억이 드물다. 드러내기보다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도 못 물어보냐구요~ 라든가 악착같이 엄마를 따라다니며 관심을 요구했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지 모르나 나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다 내가 겪는 힘든 일을 이야기하면 엄마는 천성적인 긍정과 낙관으로 아픔을 축소시키거나 괜찮다는 식으로 넘겼다. 같이 아파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도 비슷하게 아파하는 모습을 통해 나에 대한 애정을 확인받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반면 엄마는 부족함 없이 애정을 주었는데 도무지 만족할 줄 모르는 나에게 질리곤 했다.



엄마와 나 사이에 생겨난 틈은 그렇게 방치된 채 시간이 흘렀다. 틈을 메꾸기에는 서로 바빴다. 나는 친구와 공부로. 엄마는 교회일로. 딸과 ‘우정’을 쌓기에는 엄마에게는 할 일이 많았다. 교회를 직장처럼 다니던 엄마는 어느 해, 기대하고 예상하던 직분을 받지 못했는데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진심으로 슬퍼하며 우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토록 그 일이 중요한 것인가 나는 오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게 바빴던 엄마로 인해 나의 학창시절은 은밀히 자유로웠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을 누렸고 엄마의 시선과 관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관심의 부재가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다시 해석이 되었고 출산과 육아 집중시기에 친정엄마의 손길이 몹시 필요했던 나는 자주 눈물이 났다.



지금은 엄마와 ‘우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만의 관계와 이해방식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나는 이제야 겨우 엄마가 열정을 가지고 할 일이 있다는 것과 그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과 체력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우리집에 온 엄마가 책장에 자리가 없어 바닥에 어지럽게 서 있는 책 기둥을 보고 말했다. ‘어떻게 이러구 사니~!’ 이렇게 말할 사람이 오직 엄마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한다. 어쩌면 엄마와 새로운 방식의 ‘우정’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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