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의 사회학

by 김성민


수많은 문학과 영화, 드라마가 증명하고 있는바, 사랑의 아픔과 고통은 동서고금 예술의 주된 소재가 되어 왔다. 반복적으로 예술로 재현되는 이유는 사랑의 아픔을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는 더 많은 사랑의 아픔이 있겠지. 그러니 나는 이 책 제목을 보고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은 왜 아픈가』라니, 그게 책 한 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인가?




『감정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감정을 사회학의 영역으로 가져와 탐구한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감정은 오로지 개인적인 것 같지만 실상 일정한 사회의 틀 안에서 형성되어 발전해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감정을 심리학이나 생물학으로만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사회학적으로 보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랑은 왜 아픈가』에 이어 『사랑은 왜 불안한가』에서 『사랑은 왜 끝나나』까지, 사랑이라는 감정에 천착한 에바 일루즈는 사랑의 사회학자라고 불린다.




KakaoTalk_20220602_132610916.jpg 에바 일루즈



모로코에서 태어난 에바 일루즈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독일에서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히브리어, 아랍어 다섯 개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학자이다. 일상과 일터에서 만난 여러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들이 사랑 앞에 속수무책인 것을 목격하고 사랑이 자존감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응답 없는 사랑과 버림받는 경험이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고 굴욕감을 준다는 것을.




심리 상담에서는 사랑의 고통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는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경험을 들먹이며 개인의 인생사로 해석해버린다. (가령, 네가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건 너의 어릴 적 애착 관계와 연관이 있는 거야.) 나에게 문제가 있으며 문제의 원인인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저자 에바 일루즈는 이에 반대하며 사랑의 고통은 자아에 있지 않으며 사회에 있다고 주장한다. ‘사랑의 아픔이 허약한 마음 탓이 아니라 우리가 겪는 그 감정의 변화무쌍함과 갈급함이 사회라는 제도의 질서로부터 강제된 것’이다.



그리하여 에바 일루즈는 심리학 관점이 아닌 사회학자로서 사랑의 고통을 낳는 제도적 원인을 찾겠다고 밝힌다. 제도는 필연적으로 시간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사랑의 의지, 욕구 구조, 생각과 감정도 변하였다. 사랑보다 시급한 사회 문제가 도처에 널려 있는데 (고작) 사랑이라니. 그러나 에바 일루즈는 강조한다. ‘사랑연구는 결코 지엽적인 일이 아니며 오히려 현대성의 핵심과 기초를 연구하는 일의 중심이다.’



기브 앤 테이크에 익숙하고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논리에 빠져 사랑은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하게 되었다. 현대의 여성들은 사랑과 미래의 약속을 요구하는 것이 남성으로 하여금 자유의 구속으로 느끼게 할 까봐 요구하기를 어려워한다. 섹스영역에서 남자가 여자를 감정적으로 지배하게 된 이유다. 여기서 발생하는 감정의 불평등이 사랑을 어렵게 하며 불안하게 한다. 깊은 관계를 기피하는 오늘날의 모습은 사랑의 불확실성과 불안을 불러왔다. 불확실한 사랑에 모험을 거느니, 대신 드라마나 영화에 심취되어 배우가 보여주는 모습을 통한 감정놀이로 대체한다. 소통은 점점 부재하고 현대인은 외딴섬이 되어간다.



언제부터 사랑이 불안과 결합하게 되었나. 현대와 달리 과거 19세기 당시 관례화된 연애 풍습은 감정의 불안함을 보호해주었다. 제인 오스틴 세계를 통해 나타나는 사랑과 결혼이 그것을 보여주는데 좁은 네트워크와 여러 예식과 의례는 사랑의 불안함을 몰아내는 수단이었다. 근대에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평판, 신의이자 품위였기에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에서 말과 행동이 달랐던 윌러비는 도덕적 비난을 받는다. 결혼 선택이 감정이 아닌 관습과 신분이었기 때문에 매리앤이 버림받았더라도 자아의 타격과는 무관했다. (즉 매리앤의 자아는 상처받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나는 의문이 든다. 완전히 자아와 분리될 수 있는 것인지..)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약속에 매이기보다 감정을 우선시한다. 이동의 자유와 기술의 발달(데이팅 앱)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상황에서 한 사람과의 사랑의 약속은 구속인 것이다. 깊은 관계를 기피하고 가벼운 만남(썸으로 끝나버리는)을 지속하는 현대의 모습을 에바 일루즈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사례로 제시한다. 그리하여 이렇게 정리한다.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약속이행의 충실함은 더 이상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다.



오스틴 세계에서 배우자 선택 기준이 신분이나 관습 등 공공연히 공개되고 객관적이라면, 이제 결혼 선택은 주관적이 되어 자신의 의지와 감정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에바 일루즈는 그것이 현대의 ‘선택 아키텍처’라고 말한다. ‘자신의 의지와 감정을 기초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배우자를 고를 자유까지 보장하는 게 현대의 선택 아키텍처’다. 자유의 역사는 선택의 자유와 같이 가며 선택하지 않을 권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선택의 자유가 오히려 선택의 어려움을 낳았고 아예 선택할 수 없는 무능까지 이어진다고 말한다.



계급이나 신분이 아닌 감정을 기반으로 한 선택의 자유가 늘어나면서 사랑의 선택 여부는 자아의 자존감과 연결되기 시작한다. 사랑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대상에게 선택받지 못함은 인정요구와도 관계된다. 사랑의 상처는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 자존감에 대한 상처라고 설명한다. 사랑은 인정 투쟁이 되어 상대를 사랑하되 주도권을 잃고 싶지 않은 모순을 경험한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된다는 논리에 빠져 사랑을 절제한다.


진정한 사랑이 실종된 현대사회에서 에바 일루즈는 ‘사랑이 만들어주는 자존감이 현대의 관계에서 특히 중요하며 절박하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적절한 응답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방적인 열정적인 사랑을 옹호한다. 아픔의 원인이 되는 사랑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지닌 아픔을 줄이고 사랑이 지닌 힘을 강조한다. 사

랑이 만들어내는 자존감이라는 힘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보여주었던 낭만적 사랑과 열정에 거리감이 느껴졌다면 에바 일루즈의 진단에 수긍하게 된다. 깊은 관계를 회피하며 가벼운 관계가 자리 하게 되어 사랑의 열정은 구닥다리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감정과 사랑과 낭만이 기묘할 정도로 차갑게 식어버렸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랑은 아픈 것이므로 절제하자가 아니라 오히려 열성적으로 사랑하라고 말한다. ‘열정적 사랑은 불확실함과 불안함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기 때문’이다.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은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다. ‘나는 아픔없는 열정적 사랑이란 있을 수 없으며 이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인용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사랑은 아프다. 그러나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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