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간의 기록 Jul 16. 2022

사랑이라는 사건

영화 <헤어질 결심>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1937-)의 책 『철학과 사건』이 떠올라 다시 읽었다. 알랭 바디우는 ‘사건의 철학자’라고 불리는데 그에게 철학은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어 금지된 것으로 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사유' 하는 것이다. 바디우가 정의하는 사건은 ‘불능하다고 선언된 것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서 사건이 곧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된다.



『철학과 사건』은 정치, 사랑, 예술, 과학 이라는 네 가지 주제에 관한 대담집이다. 대담집이라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알랭 바디우 철학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워서겠지만, 그가 말하는 ‘사건’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은 바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바디우가 제시하는 사건에 대한 가장 쉬운 예는 사랑이어서 사랑이라는 주제라면 그가 말하는 ‘사건’을 조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당신이 ‘사랑에 빠진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만납니다.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서, 그 사람과 당신 사이에서, 개인적이고 경험적인 실존 속에서, 뜻밖이고 예측할 수 없는 가능성이 열리는 일이 있습니다.’ (26쪽)



바디우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사건은 '예측할 수 없는 가능성이 열리는 일'이다. 둘의 무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화합이나 하나가 되는 경험이 아니라 차이에 대한 경험이라고 강조한다. ‘그것은 유일하고 근본적이며, 강렬하고 생기 넘치는 경험입니다’ 바디우에 따르면 사랑은 둘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경험이 아니며 둘이 만나 하나가 될 때 나타나는 희생적 사랑을 그는 거부한다. 진정으로 ‘둘’이 구축하는 무대다. 이러한 무대가 지속되려면 충실성이 필요하다.



충실성은 지속성으로 지탱된다. 일상의 권태나 대립 앞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 끈덕진 지속성. ‘진정한 사랑이란 공간과 세계와 시간이 사랑에 부과하는 장애물들을 지속적으로, 간혹 매몰차게 극복해나가는 그런 사랑일 것입니다. (43쪽, 『사랑 예찬』) 하지만 사랑의 지속성이 곧 영원한 사랑이거나 항상 사랑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랑이 ‘미지의 무엇을 지속시키려는 욕망’이라면, 바디우가 시인 랭보의 말을 빌린 것처럼 '사랑을 끊임없이 재발명할 때' 사랑은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지속될 수 있다.



사랑이 둘의 무대라면 아이가 탄생했을 때 둘의 무대는 아이를 중심으로 재편성된다. 사랑이 다시 새롭게 재발명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으며 사랑이 그 이전과 같을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바디우는 두 사람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는 모델을 채택할 때 사랑은 질식해 버릴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과제는 가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둘의 무대를 가족 이기주의에서 해방시키는 형식들을 창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무엇인지...) 『사랑 예찬』에서 언급한 말로 보충하면 이러하다. ‘가족이라는 세계가 사랑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전적으로 가족으로 환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아이의 탄생이 어떻게 해서 사랑의 한 부분을 이루게 되는지 잘 이해할 필요가 있지만, 사랑의 실현이 바로 아이의 탄생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44쪽, 『사랑 예찬』)




알랭 바디우는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말한다. ‘사랑은 단순한 나의 생존 충동이나 내가 잘 알고 있는 이해관심에 비추어, 탈중심적 관점에서 어떤 세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34쪽) 사랑하는 두 사람이 대면하는 것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라는 책 제목처럼 분리된 두 사람의 만남이다. 분리되었던 두 사람이 만나고 사랑의 사건, 사랑이라는 가능성에 진입한다. 여기서 체험하는 것은 분리되었던 두 사람이 하나 되는 경험이 아니라 차이를 경험하는데 있다,고 바디우는 말한다. “사랑, 그것은 존재에의 접근이다.”라는 라캉의 말을 옹호하며 사랑은 대상이 아닌 존재가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탕웨이)와 해준(박해진)은 용의자와 형사로 만난다.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 이미 사랑의 가능성이 시작된 셈인데 두 사람은 이러한 가능성을 지속시킨다. 성실한 형사는 용의자를 추적하고 의심하는 것이 직업이므로 끊임없이 용의자를 관찰하며 용의자는 형사의 의심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관찰당하고 오히려 의심의 단서들을 제공한다. (서래의 대사, 내가 목숨을 걸고 찾아오지 않으면 당신을 어떻게 만날 수가 있습니까? ) 의심이 관심으로 바뀌는 지점은 모호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관심이 없다면 의심도 없는 것을.



‘사랑은 세계의 법칙들에 의해서는 계산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 왜냐하면 결국 서로 만나게 되는 순간, 서로 만난다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은 다른 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사랑은 만남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데, 이는 사랑이 구축이기 때문입니다.’ (43쪽)



사건에서 ‘선언’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따라서 사랑을 말하는 행위도 중요하다. ‘사랑의 경우에, 중요한 것은 비단 만남의 결과만이 아니라 선언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내가 “사랑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결과를 낳습니다. 그것은 둘이서 벌이는 세계의 실험이 가져오는 결과들입니다. 그 지점에서 나는 필요한 끈질김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철학과 사건』)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붕괴되었다는 말이 나온다. 나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라는 해준의 말을 서래는 ‘사랑해’라고 해석한다. 해준의 선언(말)은 서래로 하여금 확신을 갖고 행동하게 한다.



붕괴되었다. '사랑이 격렬한 실존적 위기', 라는 바디우의 말과도 통한다. '둘의 무대'에 서기 위해 나를 재편성해야 하므로 나의 일부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바디우는 사랑이 지닌 창조적 힘을 말할 때 사랑으로 촉발될 수 있는 폭력과 살인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랑이 혁명적 정치보다 더 평화로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의 진리라는 것은 달콤한 장밋빛 꿈속에서 구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 역시 모순과 폭력의 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72쪽, 『사랑 예찬』) 서래와 해준의 사랑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사랑이라는 모험에 뛰어든다. 용의자와 형사라는 사회적 관계를 뛰어넘으면서. 존재를 뒤흔드는 사랑은 너무 강렬해서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바디우가 말한 사랑의 정의에 기대면, 두 사람은 둘의 무대에서 어떤 세계를 마주하고 구축했을까. 매끈하지 않은 언어소통이 빚어내는 단어의 오해와 어긋남을 경험하면서 어떤 단어들은 둘 사이에서만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것은 마치 둘만 아는 암호처럼 작동하며 둘의 무대에서만 이해되는 언어이다. 둘의 무대에서 한 명이 사라진다면 사랑이 지속될 수 없는 것일까? 두 사람이 구축한 세계도 함께 사라지는 것일까? ‘새로운 삶의 건설이라는 만남 이후의 과정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사랑에 대한 충실성이다’ 영화에서 마지막 서래의 행동은 사랑의 지속성에 대한 포기라기 보다 사랑에 대한 완전한 투신, 충실성 아닌가.



알랭 바디우가 정의하는 사건과 사랑은 그의 견해일 뿐이며 얼마든지 반박이 가능하겠지만 일단 그가 사랑을 사건이라고 보는 관점을 이해하고 싶었다. 변사 사건으로 만난 두 사람이 사랑의 사건으로 진입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와 알랭 바디우가 정의하는 사건과 유사해 보였기 때문이다.



알랭 바디우는 포르투갈 시인 페소아의 말을 인용한다. ‘사랑은 하나의 사유다.’ 사랑을 육체적인 욕망이자 격정적 감정으로 정의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발을 일으킬지도 모르나, 알랭 바디우가 말하는 사랑은 그러한 감정에 앞서는 사유다. 더불어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바디우의 사랑 예찬이 지나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래전부터 사랑은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었다는 것. ‘사랑으로 시작되지 않은 것은 결코 철학에 이르지 못할 것’(플라톤의 『국가』에서) 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알랭 바디우를 제멋대로 읽었지만 나의 어설픈 쓰기로 영화에 붙들려 있던 생각을 해소하고 싶었다. 『사랑 예찬』을 옮긴 조재룡 평론가는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적는다 . (옮긴이는 바디우의 사랑 정의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모두 제 언어의 시원에 있는 그 누군가를 애써 닮으려 하고, 매 순간 그리워한다. 욕망이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한편 이 그리움을 사랑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미결 사건이 된 서래는 해준에게 평생의 그리움으로 남겠지. 영화 <헤어질 결심>이 노래 ‘안개’에서 시작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나 홀로 걸어가는/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그 언젠가 다정했던/그대의 그림자 하나/생각하면 무엇하나/지나간 추억/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아 아/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나는 간다





작가의 이전글 자크 랑시에르의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