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꽃 Sep 22. 2024

출퇴근용 가방

명품백과 에코백 사이

  요즘 내 출퇴근용 가방은 베이지색 백팩이다. 남편이 출장 다니면서 쌓은 항공사 마일리지로 샀다.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여 만들었다고 하니 물건을 사서 쓰레기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줄일 수 있었다. 요즘은 비용과 환경을 생각해서 물건을 사기 전에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학교에 출퇴근하면서 가지고 다녔던 가방을 떠올려본다. 주로 어깨에 메는 에코백을 들고 다녔고, 홈쇼핑에서 산 검정 가죽 백팩, 큰맘 먹고 샀던 몇십만 원짜리 회색 숄더백 등이 있었다. 이상하게 비싼 돈 주고 산 가방은 거의 들지 않는다. 편하고 가볍게 멜 수 있는 가방을 주야장천 쓴다. 복직 전 연수받을 때 연수 자료와 간식을 넣어준 에코백도 1년 동안 출퇴근용으로 잘 메고 다녔다. 출퇴근뿐 아니라 평소 외출할 때도 가방은 가볍고 편하면서 물건이 많이 들어가는 에코백이나 백팩을 선호한다. 

 

  학교에 고가의 명품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분들이 종종 있다. 월급이 평소보다 많이 나오거나 성과급이 나올 때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한 달 월급에 준하는 목걸이나 반지, 가방 등을 사는 경우도 본다.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저렇게 비싼 가방을 사지? 저걸 하고 어디에 가는 거지? 어쩌다 한 번 들고 다니는 용도로 사기에는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지 않나? 그럼 학교에 매일 하고 온다는 건가? 학교에 저런 고가의 물건을 하고 올 필요가 있나? 학교에 저렇게 비싼 가방을 메고 오면 불안하지 않나? 불편하지 않나? 부자인가 보다, 부자는 저런 물건이 흔하니까 일상에서 편하게 가지고 다니는구나, 그렇게 부자 같지는 않던데 부모님이 부자인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내가 비싼 가방을 살 능력이 안 돼서 질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질투의 화신이니까. 하지만 나는 물건에 대한 욕심이 거의 없다. 물건을 살 때도 실용성과 가성비가 먼저다. 오해가 있을까 봐 미리 밝히는데 나는 명품 가방을 못 사는 것도 있지만 안 사는 것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내가 주로 사용하는 에코백들은 다음과 같은데 나는 이 가방들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10년 전 인사동에서 5천 원 주고 사서 남편과 외출할 때 주로 메는 것, 3년째 장바구니로 애용하고 있는 발레축제에서 퀴즈 맞춰서 상품으로 받은 것, 고민고민하다 세일할 때 사서 어깨끈 부분이 살짝 너덜너덜함해진 6년 넘은 것이다. 만약 이것저것 다 들어가는 커다란 루이뷔통 숄더백이 가볍고 편한데 10만 원이라면 살 지도 모르겠다. 한참 고민하고 고민해서 결국 안 살 확률이 높지만. 가성비만 따지면서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짠순이아줌마’라고 할 수도 있다. 일부 맞는 말이다. 나는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실용성과 편안함, '이 물건이 돈값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나는 학교에 명품 가방을 가지고 오는 것은 어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학교에 명품가방을 가지고 다닐 필요를 전혀 못 느낀다. 명품 가방을 출퇴근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은 조개구이 집에 고급정장을 입고 가는 모양새다. 비싼 가방이 어떤 면에서 직장 출퇴근용으로 쓰임새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집에서 들고 나와 하루 종일 고이 모셔두었다가 퇴근할 때 다시 들고나간다. 학교에서는 도난 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선생님들이 귀중품, 지갑, 현금을 잃어버리는 경우는 흔하다. 교실 캐비닛 문을 비밀번호나 수동 장치로 잠가도 열고 가져가기도 한다. 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 교사들의 가방, 지갑뿐만 아니라 컴퓨터까지 도난당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한 동안 다들 가방을 교무실에 맡기거나 몸에 지니고 운동장이나 급식실에 갔었다. 이런 수고를 감당하면서까지 고가의 가방이나 소지품을 가지고 다닐 필요는 없다.    

  

  출퇴근용으로 들고 다니는 비싼 가방이 어떤 의미를 가지냐고 물으면 보통 이런 대답이 나온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만족이다, 누구나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등. 다른 사람을 의식하여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라고 한다면 솔직해서 좋다. 그런데 자기만족은 글쎄……. 하긴 비싼 가방을 들고 와도 하루 종일 교실 캐비닛에 넣어놓다가 출퇴근할 때만 들고 다니거나, 자신의 차 안에서 혼자 보게 되니 나 혼자만의, 진정한 자기만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가꾸고 그 행위를 통해 만족을 얻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면 집에서도 그렇게 하고 계시는지 묻고 싶다. 


   ‘자기만족’이라는 말은 명품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할 때 자주 나온다. 자본주의와 마케팅에서 물건을 더 많이 팔기 위해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말이다. 그것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 있을 때도 만족하고 평화로운 것이 자기만족인 것 같다. 자기만족은 좀 더 내밀하고 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보여주고 ‘예쁘다’, ‘이거 비싸지 않냐’ 같은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이상으로 소비해서 느끼는 순간적이고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하고 묵직한 느낌이 진짜 자기만족일 것이다. 그것을 위해 과도한 비용이 요구되는 행위를 계속한다면 자기만족이라기보다는 지겨운 직장생활을 버티게 하는 휘발성 강한 , 고생한 나에게 주는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보상이자 중독적 소비가 아닐까 생각한다. 


  명품가방은 확실히 다르다고 하는데 한 달 월급 이상, 때로는 두세 달 월급을 주고 살 만한 퀄리티가 있는지 모르겠다. 10만 원짜리 가방도 충분히 좋은데 300만 원(요즘은 적어도 이 정도는 줘야 명품이라는 것을 사는 것 같다) 짜리 가방을 사면 내가 30배로 잘나고 멋있어지나? 10만 원짜리 가방 살 때보다 30배 더 긴 시간 동안 만족감을 누릴 수 있나? 나는 잘 모르겠다. 뭐 솔직히 나도 명품 가방 메고 싶고 예쁘다는 생각은 든다. 그런데 싸고 예쁜 가방도 있는데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써가면서 살 필요까지 있을까? 없다. 이것이 언제나 나의 결론이다. 


  솔직히 나는 비싼 가방과 액세서리를 소비하는데 필요이상의 힘을 주는 것은 과시와 허세가 크다고 생각한다. ‘나 이 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상대적 우월감을 나타내고 싶은 것이다. 학교 출퇴근용 명품 가방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직장인이든, 가정주부든, 학생이든 명품가방을 과시와 허세의 수단으로 쓰고 있다고 본다.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다. “오늘 가방 너무 예쁘다.”, “자기 구찌에서 가방 샀네. 이거 비싸잖아.”, “이거 버버리 신상이잖아.’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는 경우. 이런 식으로 상대의 옷이나 가방, 액세서리에 관심을 가지고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물건과 소비로 자신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훨씬 저렴하면서 예쁘고 튼튼한 제품이 얼마든지 있지만 그런 가방은 됐고 보여줄 수 있는 가방이 필요한 것이다. 그 무늬와 로고가 새겨진 가방을 보여줘야 하는 거다.  후배나 친구한테 밥 한 번 안 사주면서 300만 원하는 목걸이나 시계를 사는 사람들 많이 봤다. 돈 없다고 얻어먹고 다니면서 방학이나 휴가 때 유럽여행 가고 이번에 샤넬 백 뭐 살까 물어오는 사람도 봤다. 이런 사람들은 솔직히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소비로 우월함을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명품 가방으로 그 사람의 품위가 올라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우러러보는 마음은 주로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과 일하는 태도, 온화한 말투와 경청하는 모습을 보고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품위는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경청할 때, 어깨를 펴고 허리를 세워 바르게 앉을 때,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하고 고개 숙여 인사할 때, 5년 만에 복직해서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옆 반 교사에게 친절하게 업무를 가르쳐줄 때, 받아 올림이 있는 세 자릿수 곱셈을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알기 쉽게 설명할 때, 교장·교감이 무리한 업무지시를 내릴 때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어조로 정중하게 거절하거나 항의할 때, 무례한 보호자가 소리를 질러도 같이 동요하지 않을 때 나온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과시하는 소비는 감정과 불안에 휩쓸려 마케팅에 유혹당하는 행위라고 본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명품 브랜드들이 매해 높은 한 자릿수, 또는 두 자리 수로 가격을 올려도 매출이나 수요가 줄지 않는다. 소비자는 ‘나 이 정도 살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사고, 브랜드들은 ‘이래도 팔리네’ 하면서 가격을 계속 올리며 윈윈 한다. 일회성 기분전환과 허세가 거대기업을 더욱 부자로 만들어주고 동시에 나를 더 가난하게 만들며, 환경까지 오염시킨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지구상 어느 나라의 한 구석에서 노동력이 착취되는 일이기도 하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내 돈 주고 내가 산다는 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해도 할 말이 있다. 정말 돈이 많아서 명품 가방을 사는 경우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 명품 가방을 사는 주변인들을 보면 그렇게 큰돈을 가방 하나에 소비할 정도로 부유하지는 않은 것 같다. 기업은 이미 부유한데 우리 같이 월급 받아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소비하라고 유혹하고 우리는 그 유혹에 넘어간다. 소중한 노동의 대가를 턱턱 써서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주고 우리의 얄팍한 통장 잔고를 더 얄팍하게 줄이는 일이 현명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비를 하면서 기쁨과 만족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월급생활자나 어지간한 부자가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흘러가는 감정에 의해 내 소중한 월급을 삭제시키는 행위일 뿐이다. 정말 보여주려면 가방 하나 가지고는 안 되고 여러 개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다 한 번 기념의 의미로 비싼 가방을 살 수는 있겠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것은 가방 하나로 안 된다. 그래서 계속 사고 싶고 못 사면 속상하다. 


  현금 50억 정도 있거나, 회장님 댁이라면 또 모르겠다. 그럼 부자만 소비하고 월급쟁이는 사고 싶은 것도 못 사냐고 따진다면 당신 말도 틀린 것은 아니라고 말하겠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인데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내 돈 가지고 내가 원하는 것을 사는 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윤리적으로 어긋나는 행동도 아니다. 하지만 진짜 자신을 위한다면 비싼 가방을 사는 대신 그 시간과 비용을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일에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은퇴 후나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저축하거나, 발레 공연을 맨 앞자리에서 보거나, 여행 갈 때 비즈니스석을 예약한다거나,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는 등 경험과 내 안락한 생활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작은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