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공부를 잘할 줄 알았다
최소한 나는 초등학교 때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했고 스스로 공부해서 백점을 맞는 아이였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그때랑 지금이 같냐고 한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국민학교) 다닐 당시의 학습내용 수준이 더 낮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지나 학습 태도를 갖는 것이 그때는 쉬웠고 지금은 어렵나?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아이를 셋 낳았고 올해 첫째(이하 땡글이)가 중학생이 되었다. 둘째(이하 현정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고 막내(이하 꿈틀이)는 1학년이다. 초등학교 때 그럭저럭 공부를 하던 땡글이가 중학교에서 처음 보는 중간고사를 잘 못 봤다. 잘 못 본 정도가 아니라 수학점수가 낮은 두 자리였다. 땡글이의 수학점수를 듣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그래도 평균은 돼야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하면 수학을 2X점 맞을 수 있는 거야? 학교에 공부 잘하는 애들 많은데 왜 내 아이가 이런 거야? 정작 아이는 그럴 수도 있다며 타격감 제로라고 했다. 말로만 타격감이 없다고 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도 나에게는 놀라움이었다.
땡글이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공부나 하는 일에 조금만 간섭 비슷한 것이 들어가도 굉장히 싫어했다. 어차피 엄마가 공부하라고 한다고 할 것도 아니고 나 역시 아이 공부까지 관여할 여력도 없다. 알아서 한다니까 다행으로 여겼다. 그런데 중간고사 성적을 보니 그냥 구경만 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영어나 수학 학원을 보내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나?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초등학교 3학년인 현정이는 수학단원평가 20문제를 보면 10문제 맞고 10문제를 틀려왔다. 내 아이가 반에서 몇 명 없는, 대여섯 개 틀리는 그 몇 명 중 한 명이라니……이럴 수가! 학교에는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왜 하필 내 아이가……? 역시 선행을 했어야 했나, 애들이 싫어해도 공부를 시켜야 했나, 후회했다. 현정이라는 이름은 둘째의 태명이다. 둘째가 뱃속에 생기도록 '점지'해주신 의사 선생님 이름이 현정이었다. 현정선생님은 공부를 잘했으니 의사가 됐을 터인데 키도 크고 예쁘셨다. 현정선생님처럼 예쁘고 똑똑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으로 '현정'이라 불렀는데 태명은 태명일 뿐인 건가.
나는 내 아이들이 당연히 공부를 잘할 줄 알았다. 비록 남편이나 내가 스카이 출신도 아니고 엘리트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적어도 성실했거나 공부에 대한 의지는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이르게는 2학년 때부터 수학에서 변별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집 둘째는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화내지 않았다) 못 알아듣는다.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을 설명해 줘도 딴 소리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선미는 지우개가 9개씩 들어 있는 상자 2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지우개를 친구들에게 4개씩 나누어 선물하려고 합니다. 몇 명에게 줄 수 있고, 몇 개가 남을까요?’ 이렇게 문장이 2줄 이상 나오면 바로 틀린다. 대부분 아이들도 그렇다. 문장이 조금 길어지면 어려워한다. 학부모 대상으로 상담을 하다 보면 단골 고민 주제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아이들이 수학 계산은 잘하는데 문장제를 이해하지 못해서 틀린다는 걱정이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나는 여유 있었다. 내 아이는 안 그럴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게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바로 내 얘기였다.
아이들이 시험을 잘 못 봐올 때는 불안하다. 학교에서 우수한 아이들을 많이 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잘하는 아이들도 많은데 왜 우리 집 자식은 저렇게 하지 못하나, 나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내 아이들은 스스로 하지 못하는가, 내 아이는 왜 이 쉬운 문제를 틀리는가. 인생이란 내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것. 계획이 있다면 그 계획을 비웃으며 보기 좋게 비켜가는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
아이가 어렸을 때 선배엄마들이 애가 크면 크는 데로 힘들다고 했는데 이놈의 공부라는 것이 바로 그 힘듦의 아주 큰 이유였다는 것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건강하고 밝게만 자라다오’ 했다가 아이가 건강하고 밝으면 ‘공부도 잘했으면’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애들 셋이 다 공부를 못해도 괜찮을까? 아니! 네버! 네버! 네버! 나는 내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아주 잘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큰 욕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한 놈만 걸리면 된다. 세 놈 중에 한 놈만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셋 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한 놈은 발레를 하니까 발레 잘하면 되고(발레해도 공부를 잘하면 좋다), 두 놈 중에 한 명은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한 놈은 뭘 하든 크게 상관없다.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엄마인 나도 좀 우쭐한 기분을 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엄마가 학교 갈 때 어깨가 펴지고 다른 학부모들 사이에서 기세가 등등해진다고 들었다. 나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게 어떤 감정인지. 애가 셋인데 한 놈 정도는 엄마한테 그 정도 호사는 좀 시켜줘도 되지 않나. 아이들이 자기 일을 알아서 잘해줌으로써 나는 아이들 공부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놈도 걸리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여기서 나의 문제라면 문제인 것은, 어찌 됐든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기 원한다면 아이들을 학원에 팍팍 보내고 공부도 채찍질을 하든 당근을 주든 ‘시켜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공부는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스스로 동기부여가 돼야 한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개념을 정리하여 체계화시키고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다른 아이 엄마들은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물론 필요할 때 학원이나 과외의 도움을 받는 것은 좋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땡글이는 현재 수학 공부방을 다니고 있다. 현정이와 꿈틀이는 아직 공부하는 학원은 다니지 않지만 필요하면 보낼 생각이다. 하지만 공부의 근본은 자신의 의지와 태도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학원을 다니고 엄마가 ‘시킨다’ 해도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한계는 금방 찾아온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공포의 쓴맛을 제대로 보지 못해 내가 뭘 잘 모를 수도 있다.
학원을 보내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가 또 있다. 학원비가 너무 비싸다. 나는 애가 셋인데 땡글이는 돈이 무시무시하게 들어간다는 무용까지 하고 있다. 효율과 가성비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더욱 그렇다. 사실은 그 복잡하고 골치 아프고 돈 많이 들어가는 공부와 학원의 세계를 애초부터 알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한 번 들어가면 끝없이 빠져들어 스트레스받고 또 끝없이 돈을 써야 할 것 같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떠맡기고 있는 면도 있다고 인정한다. 내 직장 다니기, 책 읽기, 글쓰기, 애 셋의 기본적인 양육도 겨우 하고 있다. 여기서 아이들 공부까지 신경 써야 한다니! 지금도 힘든데 시간, 비용, 노력을 더 써야 한다니……. 애들이 공부는 잘했으면 좋겠는데 돈은 최소한만 쓰고 싶다.
‘공부를 시키는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 같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필요하면 학원이야 다니겠지만 공부를 시키기 위해 학원을 억지로 보내고 싶지는 않다. 돈 쓰고 시간 쓰며 부모와 자식 사이만 나빠질 것 같다. 밖에서 구차한 꼴 당하며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로 돈을 벌어오는데 거기서 아이들 교육비로 상당한 액수가 나간다. 그렇게 학원을 보냈는데 공부를 못해? 공부를 스스로 하지 않아? 속이 터지고 화가 끓어오른다. 냉정하게 말해서 스스로 공부할 놈이면 '해라해라' 하기 전에 알아서 한다. 잘하든 못하든 말이다. 공부해서 될 놈이면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고 그 과정이 결과에 반영되어 나온다. 내가 굳이 화를 내면서까지 공부를 시키고 돈 들여가면서 학원을 다니도록 강요할 필요가 없다.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어차피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주어진 일에 집중하고 효율을 높였으면 좋겠다. 공부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좋아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 과정과 결과를 통해 타인에게 인정도 받을 수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도서관에 가고, 목표한 공부량을 채우기 위해 책상에 앉아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경험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것(늦잠, 텔레비전 보기, 게임하기, 핸드폰 보기 등)을 참고, 하기 싫은 것(공부)을 하면서 자기 조절 능력도 기를 수 있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과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다. 잘해보려고 노력하고 힘들어도 계속해보는 것, 그런 모습을 내 아이들에게서 보고 싶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맡은 일에 책임을 다 해 끝까지 해내려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진짜로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하는 게 시원치 않으니 속이 갑갑하다.
음……그러니까 어쩌란 말이냐. 학생이라면 공부라는 본분에 최선을 다하자. 일단 열심히 공부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이자, 공부 잘해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이런 말로 아이들을 잘 구슬리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다. 잘 통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리고 엄마, 아빠가 열심히 살면 자식들은 저절로 잘 된다고 했으니 나부터 열심히 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