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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s meaningless Dec 30. 2022

정답이 중요하지 않을 때

입장을 바꿔보니 알겠다.

10년 전 오만 촉광의 다이아몬드 계급장을 달았다. 청운의 꿈을 품었다. 자부심을 느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마에 별을 달자고 다짐했다. 패기와 자신감이 몸속에 꽉 찼다. 그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변하지 않을 것처럼 살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당직을 섰을 때였다. 같이 근무하던 소령분이 자기 고민에 답 좀 해달란다. 장교 특성상 이사는 계속해야 하고 아이들은 크면서 친구가 없어진다. 아내도 힘들어한다. 이럴 때면 가족과 군 생활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물었다. 나는 정답은 없고 가치를 어디에 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고 했다. 속으론 이렇게 말했다. '진급을 바라봐야지. 당연히 가족은 희생하는 거고. 나약한 소리나 하고 한심하네. 


친구나 후배들이 고민을 털어놓으면 너의 선택이 최고라고 힘내라고 했다. 항상 그 말을 하고 나서 사람 좋은 표정을 지었다. 속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엔 정답이 없다는 듯, 초연한 척 살았다. 가면 뒤로 나만의 확고한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했다. 


당직 날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내가 한심하다고 했던 사람은 이제 내가 되었다. 확정된 진급을 마다하고 군 문을 나왔다. 가족과 내 자유를 선택했다. 나는 한심한 사람일까? 


처지가 바뀌어보니 알겠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이 말이 가슴에 닿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이제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세상에 많은 의견이 있다. 전부 이해하진 못해도 인정해야 할 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의 삶은 틀린 게 아니다. 그저 하나일 뿐이다. 한심한 삶이 아니다. 체한 게 내려가는 기분이다. 


나이가 들수록 주관과 확신은 쌓인다. 그렇게 쌓일수록 편견의 층도 점점 높아진다. 현명한 삶이란 빼곡히 쌓아간 불투명한 렌즈들을 얼마나 벗겨내느냐에 달렸다. 조금이나마 솔직해지고, 나의 정답이라는 게 중요하지 않을 때를 알게 된 순간 첫 문장을 쓸 수 있었다. 앞으로 쓸 글은 편견을 벗겨내 가던 중 떠오른 단상을 적은 것이다. 살면서 겪은 경험을 되짚기도 하고, 세상의 편린을 어떻게 봤는지도 적었다. 신기하게도 나의 정답이란 틀을 벗으니 각자의 정답이 보인다. 내 것도 하나의 의견일 뿐 틀리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여기저기 치이고 깎이면서 내 주관이 깨졌다. 깨진 틈새로 뭔가 보이긴 보인다. 새로운 세상이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았다. 많은 걸 경험하고 느껴보며 편견을 깨 보자. 매 순간이 돈오(頓悟)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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