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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s meaningless Dec 31. 2022

하나의 사건을 두고 싸우는 이유

결국엔 '뇌'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인체에서 작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에너지는 꽤 많이 사용한다. 작지만 작지 않은 기관이다. 이런 뇌는 본능적으로 자기를 효율화시킨다. 에너지를 아껴서 죽지 않겠다는 생존본능이다. 우리가 사건이나 현상을 단순하게 보고 확정을 빨리 짓는 것도 이 효율 때문이다. 이런 단순화는 패턴을 만든다. 반복되는 행동에 패턴을 적용하여 에너지를 덜 쓰도록 한다. 참 편리한 기능이다.


하지만 놓치는 것도 많다. 살아가면서 접하는 지식과 정보를 자기가 편한 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거나 진실을 못 볼 수 있다. 당연한 소리를 때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


우리는 같은 일을 가지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걸 볼 수 있다. 누군가의 실수가 치밀하게 계획된 정치적 보복이 될 수 있고, 사랑의 결실이 정략결혼으로 치부되며, 단순한 사고가 00이라서 당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니체는 사실이란 없고 해석만 존재한다고 했던 걸까. 진실이 어떻든 간에 이 해석이란 걸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다양한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게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피해야 태도가 있다고 본다.


바로 지나친 단순화이다. 이는 서두에 말한 뇌의 생존본능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현상 이면에는 배경, 인과관계, 알려지지 않은 정보들이 무수히 많다. 그걸 다 따져보려면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귀찮다. 그래서 내 삶에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통해 해당 현상을 정의 내린다. '아하! 그건 이래서 이렇게 된 거일 거야. 딱 보면 알지.' 이렇게 말이다.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해왔다. 문제는 그 생각이 댓글이나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누군가에게 불쾌함을 주거나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본능을 통제하며 살아간다. 본능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게 사회 속에서 잘 적응하는 요소다. 뇌의 생존본능에 잠식되어 세상을 단편적이고 일차원적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궁극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관계에서 일에서 뉴스에서 연예에서 우리가 해석할 거리는 많다. 우리의 본능을 통제하는 훈련 거리는 얼마든지 많으니 한 번씩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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