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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엔진 Jun 11. 2016

나부터 시작하는 권위주의 타파하기

"권리" 라는 것은 "책임" 을 수반한다.

 34살을 먹었지만 나는 아직 만화를 사랑한다. 10대의 시절부터 함께 하기 시작하여 아직까지 함께 하고 있는 대표적인 만화가 바로 "원피스". 이 만화는 특별한 능력을 얻을 수 있는 "악마의 열매" 를 먹은 한 소년이 대해적시대에 단 1명의 사내만이 이뤄냈던 "해적왕" 이 되기 위해 위대한 항로를 제패하는 과정의 성장과 도전의 행로를 그려내고 있다. 이 만화책은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 진정한 권위란 무엇인가" 라는 2가지 질문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내 아들도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천천히 읽게 하면서 감상평을 들어보고 싶은 작품이다. (일본 대지진이 났을 때, 실제로 나는 오다 이치로 작가의 생사도 함께 걱정했었다...)


 시리즈의 80권에서 절대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도플라밍고" 라는 상대방을 쓰러트리고, 그 과정에서 신뢰를 얻은 동지 7명이 루피의 여정을 응원하며 "부하의 잔" 을 올리는 장면에서 루피가 말하는 대사와 동지들의 반응을 보며 "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병폐는 이 생각으로 치유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가 되려는 해적왕은 "군림" 이 아니라 "즐거움과 공존" 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 이해하지 못하는...

   만화 속 세계관에서 "해적왕" 은 "시대를 제패한 자" 라는 의미. 그리고 그 끝에서 만날 수 있는 "원피스" 라는 것은 아무도 정체는 모르지만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그 무언가. 하지만, 루피는 외친다. "나는 해적왕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단지 높은 놈이 되어 명령하고 지시하고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매일의 즐거움을 위해서 되고자 하는 것 뿐이다" 라고.


 이걸 우리의 현실로 가져와보자. 현실세계의 "해적왕" 은 어떤 자리일까? 한 나라로 비유하자면 대통령, 기업으로 비유하자면 사장, 대학교로 비유하자면 총장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2명 이상 모이면 리더가 생긴다. "친구" 라는 이름으로 묶인 집단에서조차 이끌어가는 자와 이끌어지는 자가 있는 것은 어쩌면 인간 세상의 가장 오묘한 진리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가까운 예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직장 생활" 속에서의 예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직의 어떤 요인이 마음이 들지 않거나, 문제가 있다고 여길 때 그 책임을 대부분 타인에게 전가하고자 한다. (이는 사람의 기본적인 심리요인이기도 하다.)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들이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고 면피성 행동만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진짜 노답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정말 제대로 된 일 같은 일을 하고 싶다....!!!" 이게 많은 직장인들의 외침일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이게 아니다. 꼭 팀장이라는 직책이나 임원이라는 직급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나에게 충분히 그런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상황이 왔을 때 우리의 행동이 이렇지는 않은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몇 가지 상황을 살펴보자?


 1.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어서 업무 추진을 한다. 유관부서에서 업무 협조를 하지 않는다.

 2. 현업 업무로 업무 협조를 한다. 우리 팀이 R&R 상황에서 주관부서이나, 타 부서의 도움 없이 추진될 수 없는 업무다. 역시 유관부서에서 협조하지 않는다.

 3. 갑을 관계로 계약을 맺은 업체가 있다. 일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모든 상황에서 세부적인 디테일에 따라 고려할 사항은 분명히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반응한다.


 1. 너희가 이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이해하긴 해?

     기간 내 완수하기 위해서는 업무 협조를 정확히 해야 할 것 아냐?

 2. 우리가 그냥 주관부서일 뿐인거지, 일은 같이 하는거잖아? 왜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거야?

 3. 시키는 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왜 이렇게 원하는게 많아?


하지만, 상대방은 이렇게 생각한다.


 1. 너희가 우리의 이해는 구하고 그 프로젝트를 시작했어? 우리에게 제대로 된 업무 협조를 구한 적은 있어?

     메일이나 공문 한통 보내고, 우리 팀이 바쁜 것은 생각도 안하고 너희 납기만 중요한거야?

 2. 성과는 너희 팀이 한 것처럼 전부 포장할꺼면서, 왜 우리한테 실질적인 업무는 다 떠넘기려고 하지?

     너희가 주관부서면 책임지고 알아서 하면 추진해나가면 되는거 아냐?

 3. 제대로 시키기나 했으면... 제 때 업무 결과에 대해서 대금 정산 처리나 똑바로 해줬으면...


 우리 사회가 힘들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왜곡된 "갑을 관계" 에서 시작된다. 갑은 그저 갑이고, 을은 그저 을이라는 용어일뿐 "상하관계" 가 아님에도 우리는 이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폐허에서부터 고도 성장기를 거쳐오면서 우리는 사회 구조적으로 "권력 마피아" (재벌도 한 종류로 볼 수 있으며, 요즘에는 관피아, 메피아, 환피아 등등 너무 많아서 하나로 통일해본다.) 라는 것을 만들어냈고 우리는 이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마음 속에서 나도, 그리고 내 자식도 권력 마피아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렇다 보니 어떤 집단에 속해있는가가 마치 성공의 척도인 것처럼 평가하는 문화가 2~3세대를 거쳐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또한 사회 역시 약자를 보호하기 보다는 강자에 아부하는 자가 성공하고, 또한 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명분으로 너무 쉽게 사회에 재기할 기회를 얻는 (사실 그 기회를 사회가 제공하지 않아도 알아서 충분히 먹고 살만한 사람들인데도...) 것이 만연한 사회. 그리고 그것이 SNS 를 통해서 쉽게 전파될 수 있는 초연결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이 모든 것을 요약하여 약자들은 설 곳이 없는 "헬조선" 이라는 걸로 요약되고 "나만 아니면 돼!" 라는 문장으로 대변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꼭 높은 자리에서 "갑" 이 되어 있는 사람들만 욕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 나 역시 내가 있는 자리에서 행할 수 있는 "갑" 의 행동 속에서 제대로 된 행동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돌아봐야 할 것이다.

당신도 결국 어떤 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한 인간이 사회 구조 속에서 이러한 문화에 저항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를 동반한다. 아주 심플한 행동 논리. "왜 내가 지금 해야 하나? 남들은 그렇게 안하고 다 잘먹고 잘사는데"


 나 하나의 외침으로 과연 어떤 변화가 올 수 있을까? 라는 질문 속에서 해당 사회 구조에 순응하고 쉽게 가는 자들과 성공하지 못하는 내 인생과의 비교로 인한 끊임없는 정신적 투쟁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미래로 인한 "희망없음" 은 결국 우리를 이런 투쟁에서 실패의 길로 인도하고 우리 스스로를 이기적인 괴물로 변질시키고 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우리는 "사유하는 것" 을 멈춰서는 안된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이 원래 나쁜 놈들이었을까? 아니. 사유하지 않았을 뿐.
"해방이 올줄 몰랐다..." / 이게 어쩌면 우리 대다수가 변하지 않는 삶에 대해 던지는 편리한 핑계는 아닐까.


 유독 "백마타고 오는 초인" 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려는 반만년의 역사 속의 우리 나라를 돌아보면, 과연 우리 스스로는 스스로가 권력을 누리고 싶되 책임은 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반성해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명문대를 가서 어떤 꿈을 이룰 것인지, 고시를 패스해서 어떤 꿈을 이룰 것인지, 대기업에 취업해서 어떤 꿈을 이룰 것인지가 아니라 그 집단에 속하는 것이 "갑" 이 되는 과정이고, "갑질" 을 할 수 있는 권력의 출발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나 스스로가, 그리고 나의 아이에게 그런 사회가 정의로운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기를.

 

 권력은 "책임" 이 수반되지 않을 때 그 즉시 폭력으로 변질한다.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욱 위험한 것이 바로 책임이 수반되지 않은 권력의 폭력이라고 가르치는 사회가 되길.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그런 사회가 되면 우리도 좀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사랑하는 회사 동기 중 한명이 썼던 카카오 드라이버를 응원하는 이유에 대한 핵심 메세지와 첨언을 더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카카오 드라이버가 없던 시절, 표준화되어 있지 않은 업계 상황으로 인해 술취한 고객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어려운 근무 환경임에도 업체에서 조차 기사님들을 홀대하고 있었는데 카카오 드라이버가 등장하면서부터 이러한 관행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내용.


 하지만 기존의 대리운전업체 중에서도 충분히 기사님들과 접수 상담원들을 존중하며 상생하는 모델로 운영하는 업체가 있었을 것이고, 카카오 드라이버 역시 독과점이 됐을 때 어떻게 변질될지는 알 수 없으며 (그렇게 존경받던 Y 기업의 생리대 논란만 봐도...) 어떤 플랫폼에서 대리운전이 이뤄지더라도 내가 돈주니까 막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고객과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고객은 반드시 구분되서 존재한다.

대기업이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이 하는 짓이 문제다. 카카오의 O2O 모델이 변질되지 않기를 응원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 이다. 사회 구조적 시스템은 결국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결과물이라는 점. 사회적 안전망이 가장 탁월한 덴마크를 부러워하지 말자. 기본 소득제라는 역사적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스위스를 부러워하지 말자. 근무환경이 탁월하다는 구글과 에어비앤비를 부러워하지 말자.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되지 못함이 나의 책임이라는 점을 부끄러워하고, 결코 남에게 나의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사람들이 소인배들보다 많아질 때 우리 나라도 결코 헬조선이 아니라 헤븐조선이 될 수 있음을. 그것이 나의 손으로 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이 이 사회의 모두가 추구하는 명제가 되기를.


 "높은 놈이 되서 권력을 휘두르려게 아니야! 나는 ㅇㅇㅇ 을 하고 싶은 것 뿐이라고!"

 

 그리고 이렇게 이렇게 외치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기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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