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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엔진 May 01. 2016

우리가 지금 논해야 하는 삶에 대하여

"저녁이 있는 삶" 보다 "가치가 있는 삶" 을 말하는 대한민국을 바라며

 2016년 4월 1일, 만우절. 기자의 기가 막힌 센스였을까? 아니면 그냥 취재 일정에 맞게 보도된 내용이었을까? 최근 직장인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고 개인적인 삶을 중요시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리고 실제로 이를 근거하는 데이터로 2015년도 외식업 카드 결제 비중의 시간이 최근 상대적으로 앞당겨졌다는 신한카드 브랜드 연구소 제공 자료를 근거로 활용했다. 

물론, 논란의 소지는 많다. 야근을 위해서 저녁을 먹기 위한 비중이 더 늘어난 걸 수도 있기 때문 - 데이터는 해석의 문제!

 우리는 최근 "저녁이 있는 삶" 을 이야기 한다. 이런 방향성에 대해서는 온전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나 역시 되도록 일이 끝나면 특별히 눈치보지 않고 일어나려고 노력하고 (물론, 쉽지는 않다.) 개인적인 자기 계발이나 가족과 삶을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삶을 논하는 사람들이 그려내고 있는 모습은 뭔가 방향성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이 있는 삶에서 모두가 얘기하는 방향은 "취미활동을 즐기고, 개인적인 활동을 위해서 쓰는 삶" 만을 얘기한다. 이 뉴스에서도 역시 "개인적인 강좌를 듣고 취미활동을 균형있게 하는 사람" 을 그려낸다.


  우리가 저녁이 있는 삶을 원했던 것은 사회의 구조 속에서 누군가를 위한 소모품으로 소진되는 삶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행복과 가치를 찾아나가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존재론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모든 소득은 사회 계층의 상단에 있는 사람들이 독식하고, 나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 안개같은 상황, 그리고 사회 구조에 대한 불신, 정직하고 원칙적으로 사는 것이 바보가 되는 사회. 그 속에서 Burn Out 되어 장렬히 전사하는 많은 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조직을 위한 가치보다는 유독 "나만의 삶"에 대한 가치를 앞세우며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고 그 삶에서 반드시 "조직" 은 분리가 되어 있어야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극단적인 방향전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조직에서 일하고 성과를 내고, 그 성과를 통해 자신의 자아 실현을 하기 위해 법정 근로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구조적인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 에 의한 자발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도 존중받아야 하는 삶인데도 최근의 분위기를 보면 그렇지 않다. (아무도 스타트업의 24시간 열기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는다. 왜? 그냥 바라보는 이미지가 다를 뿐이다. 생각해보면 거기도 지분가지고 일하는 이사급 직원이 아니면 밥벌어 먹고 살려고 24시간 일하는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얼마 전 SNS 에서 많은 공감을 받은 글 중에 하나가 "프랑스 직장 상사 이야기" 이다. 야근을 반복하는 한국 직원에게 "당신은 지금 우리가 어렵게 쌓아온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 라며, 정시 퇴근을 강요했다는 것. 어떤 면에서는 부러운 모습이지만, 그 회사가 근로 시간 내에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결국 회사는 사라지고 일자리 역시 잃게 되는 역설적인 모습이 생긴다.


미래 가치를 위한 불빛인지, 강요와 저생산성의 비자발적 불빛인지, 그것이 문제로다.


 나의 삶에 가치가 있으려면 "선택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선택을 통해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사회" 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이 다변화될 수 있으려면 사회의 성장도 역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철저한 현실인식이 함께 해야 한다. 


 예를 들어, AI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유럽에서 논하고 있는 것은 "기본 소득제" 문제이다. 일을 안해도 기본 소득은 인간이라면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 하지만 나누고자 하면 나눌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낙수효과를 기대하면서 고도 성장만을 위해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괴물같은 재벌과 천민자본주의는 우리가 극복해나가야 하는 하나의 도전과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방향을 반대로만 얘기하고, 스스로의 몫을 다하지 못하면서 "개인의 삶만 강조하는 저녁이 있는 삶" 만을 강조하는 정치적 목소리에 휘둘리는 것 역시 함께 지양해야 하며, "진정으로 가치 있는 저녁이 있는 삶" 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선결과제들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1) 공동체 내의 이해관계자들 (정부, 기업, 개인 모두)이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2) 그렇지 못한 조직에 속하여 떠나려고 할 때 사회가 그러한 개인들의 재기에 어떤 지원을 할 수 있는가?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기를 하지 못하는 개인들과 공동체는 어떻게 상생할 것인가?

 4) 이러한 모든 것들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은 "투입되는 자원" 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최소한 위의 질문들에 대하여 건강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사회라면 그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개인은 굳이 "저녁이 있는 삶" 을 강조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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