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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엔진 Dec 03. 2019

아빠육아휴직 60일차

공정성의 가치를 배우고 실행해보는 좋은 시간

 회사마다 다양한 복지제도를 가지고 있겠지만 우리 회사의 내가 소속되어 있는 본부에서는 조금 특별한 복지제도를 운영한다. 바로 개인 심리상담 지원이다. 어떤 지점에서는 참 아이러니다. 장기근속과 호봉제가 기반인 구조에서 기업은 임직원의 사적인 문제들은 개인이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문제로 여기며 개인의 문제로 분리해서 비용을 최소화했지만, 평생직장 문화가 자연스럽게 붕괴되고 인재들의 퇴사라는 것도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개인의 삶의 문제도 해당 임직원의 퍼포먼스와 고용 유지 측면에서 이러한 제도들이 생겨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분리되길 원하면 그것까지 지원해주는 이 모순이...?

 별도의 부담 없이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들에 대한 상담을 해주는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약 5회의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전문적인 방식은 아니었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생의 가치에 대해서 상담사와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 더 명료하게 정리해냈다는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 그리고 많은 생각의 충돌의 지점에서 왜 그런 충돌의 불편함이 표출되었던지를 생각해보니 단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되었다.


공정성

구분

 나의 모든 가치 판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로부터, 어떤 조직으로부터, 국가로부터 공정하게 대우받고 있는가? 반대로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조직에게, 국가에게 공정하게 행동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삶을 정리하고 나니 조금은 어떤 고민의 지점에서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고 편향된 관점에 휩쓸리려는 자신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보며 가치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가치의 충돌 지점이 생겨도 질문은 명료해졌다.


 "그것이 공정한가?" 


 2명의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것도 출생일의 편차로 봤을 때 가장 극심한 경쟁자로서 서로를 인식할 수밖에 없으며 (둘이 약 20개월 차이) 성별까지 다른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아이들을 대함에 있어 공정하게 대하면서 올바르게 키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매일 선택의 강요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2명을 가지려고 고민하시는 분들... 반드시 40~48개월 이상의 편차는 가지거나, 아예 쌍둥이를 낳으세요.... 아니면 한시적 기간 동안 가족 모두가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길을 걷다 아이가 힘들다고 떼를 쓰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는 당연히 체력적으로 약한 둘째가 먼저 트라이를 해온다. 그래서 그녀를 번쩍 들어서 안아준다. 그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 있던 첫째가 말한다.


 "나도 안아줘. 힘들어"



 예전에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일단 2명 다 동시에 번쩍 안아줬는데, 이제 첫째가 16kg, 둘째가 12kg 정도 나가다 보니 그냥 들어주다가는 내 허리가 남아나지 않는 실정이다. 나도 아빠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거나 짜증이 나는 날은 이런 논리로 사전부터 철벽을 쳐버린다.


 "지섭이가 첫째고, 오빠니까 씩씩하게 걸어야지??!!"


  텍스트니까 저렇게 얌전하게 쓰는 것일 뿐 권력 불평등을 이용하여 화를 내기도 하고, 걸을 수 있는데 또 응석 부린다며 팩폭(?)을 하기도 하고, 다른 반대급부를 얘기하면서 협박(그럼 키즈카페 가서도 뛰어서 못 놀 테니 그냥 집에 가야겠네...?? 등...)을 하기도 한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장난감을 살 때도 꼭 2개를 사야 한다. 1개만 사면 무조건 전투가 발생한다. 전쟁에서는 주로 오빠가 첫째라는 이유로 이기는 경우가 많지만, 국지전에서는 둘째가 유리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사게 되면 반드시 2개를 사게 된다. 그러다 보니 좋은 것을 1개 사는 게 아니라 1개 가격으로 2개를 구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커머스 담당자분들, 수익성 좋은 고객은 "1명의 아이를 가진 부모" 입니다. 2명 가진 집이 아니에요...)


굳이 1개만 있어도 되는 걸 2개를 만들어야 한다...


 끝판왕은 먹는 것들. 나이에 따라먹는 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일단 첫째가 먹으면 둘째는 따라서 먹어야 한다. 오빠 주는 것을 똑같이 안 주면 세상 서럽게 운다... 딸이 울면 무시하려고 노력해도 딸바보가 아닌 아빠라도 마음이 아프다...  




 사실 공정성에 대한 명확한 정답이나 원칙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욕망은 마이크로 하게라도 전부 다르기 때문에 완벽한 합의의 지점은 절대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것을 우리는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 법과 도덕, 윤리의 토대 위에 올려놓지만 그것은 절대 완벽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탐욕이 개입하는 순간 특정 개인의 삶에서나, 어떤 공동체의 특정한 변수에 의해서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리스크는 항상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도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의 전쟁 배상금에 대해서 승전국과 패전국의 공정성 문제로부터 출발한 것 아니던가... 패전국 입장에서도 억울했겠지만 승전국이라고 그 배상금에 만족했을까? 그만큼 공정성이라는 것은 다루기 어려운 문제고 정답은 찾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정성을 다루는 것을 포기하거나 특정한 기득권이 그 가치를 악용하게 방관한다면 우리 사회는 영원히 공정해질 수 없다. 계속 고민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 책임이 최소한 공동체 안에서 살기로 결정했다면 각 개인에게 부여되어 있음을 결코 회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두 명의 아이가 조금이라도 불만 없이 수용 가능하도록 공정하게 대하려고 노력이라도 해보는 과정에서 나도 성장하고, 그러한 원칙들을 나 스스로 자성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2명의 아이를 키우는 육아를 하면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절대적 평등이 아니라 차등의 범위를 설정해 볼 수 있다는 것. 받아들이는 사람이 억울하지 않은 감정으로 공정하게 수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질문하고 가장 원초적인 인간들(?)과 함께 실행해 볼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다시 사회로 돌아가 더 나은 사람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양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러한 실행 속에서 상황마다 맥락을 고려하고, 상황에 맞는 유연성을 가져야 하며, 심지어는 아이들이 지금 자고 일어났는지, 잠들어야 하는 시간인지에 따른 컨디션이라는 디테일까지 고려하다 보면 지속적인 시행착오는 있지만 아이들과 나 모두 성장하며 어떤 합의의 지점들이 조금씩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막연한 자기 위안을 해본다.

 

히히호호 수업 - 오빠가 하는 것을 하도 부러워해서 같이 시키는 중...

 

 오늘도 육아에 조금 더 가까이 있는 시간 동안 조금 더...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마무리하는 어느 평범한 날의 하루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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