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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엔진 Dec 08. 2019

아빠육아휴직 70일차

너는 나의 성적표가 아니다

 오랜만에 20대 시절 여의도에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열정 하나만으로 활동을 했던 동료들을 만나는 시간이 있었다. 3명 모두 여성이고 나 역시 육아휴직을 쓰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근황을 나누다가 육아와 관련된 어려움이나 이슈들에 대해서 서로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중에서 한 명의 친구가 얘기가 깊어지는 과정에서 나눠준 얘기는 나의 육아를 조금 더 돌아보고 그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는 2명의 아이의 엄마가 된 친구인데 아이의 성장 상태 등을 보면서 과연 내가 제대로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는 것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평균에 못 미치게 되면 내가 아이를 제대로 잘 먹이고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과연 아이에게 제대로 된 환경을 마련해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자괴감이 든다로 이어졌다. 너무나 활발한 아들이다 보니 집에서 뛰어놀다가 다쳤는데 운이 없게 조금 과하게 다치다 보니 집이 좁아서 그렇다며 펑펑 울면서 본격적으로 이사까지 알아본 이야기로 넘어갔고 마지막에 이 말이 나에게는 가장 충격적이었다.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 것이 마치 지금의 나의 인생 성적표인 것 같아"


 잘 아는 지인이기 때문에 이 녀석이 어떤 성격이고, 어떤 마음으로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는 불을 보듯이 뻔하다. 이 녀석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을 것이고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을 것이다. 그게 본인의 인생을 갈아 넣은 것일지라도...


 간혹 이 친구가 나에게 지금 정도의 남자아이들에게 운동 발달을 시키려면 뭘 시켜야 해? (내가 전공이 체육교육이라서...)부터 벌써 100까지 숫자를 알아? 라는 질문들을 했던 것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런 것들이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부담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유아성장발달표 - 대충 이런 게 있다. 참고 지표로는 사용하지만 왜 꼭 평균 이상이어야 하지? 어차피 평균으로 나온 값인데?


 육아가 어려운 것은 참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본질적인 지점을 보자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육아의 보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이가 나에게 환하게 웃어주거나 잘 자라 주는 것 하나뿐인데, 이걸 제외하면 사실 아이가 내가 원하는 대로 성장하는가? 모두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외부 정보에 많이 의존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참 많은 비교를 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분명히 뭔가 최선을 다했는데 그 결과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반적으로 보상이 낮게 돌아온다.


 나는 최선을 다해 먹였다고 생각했는데, 평균보다 작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놀아줬는데 옆 집 아이보다 말도 잘 못하고, 잘 놀지도 못한다면? 

 

 그러다가 이런 루틴이 반복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고통에 대한 당연한 자기방어기제가 발동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그 불만은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를 향한 분노로 표현될 수도 있다. 


나는 왜 주변처럼 육아를 전담해서 도와줄 가정환경이 안될까?

나는 왜 휴직까지 써가면서 내 인생을 내려놓으면서 육아를 해야 하는 거지?

우리 회사는 육아휴직 한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기는 할까? 아니... 돌아는 갈 수 있을까?

이 나라는 아이는 낳으라고 강조하면서 대체 뭘 지원하는 거지?

 

 이런 모든 자괴감과 질문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당연한 것이며 공동체가 급격하게 파괴된 국내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공동체가 책임지던 육아가 갑자기 엄마라는 특정 개인의 책임으로 온전히 이전되었고 여전히 우리는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세대는 엄마라는 이름의 여성이 희생하면서 산업화 발전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자신들의 딸만은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성장한 여성들은 현재 사회에 당당히 진출하여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이 인생의 과정에서 맞이하는 출산과 육아에 대해서 여전히 제도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을 희생할 준비는 더욱 되어 있지 않은 자존감이 높은 여성일수록 오히려 갑자기 마주하게 되는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더 큰 충격을 받는 것이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결과는 자연스러운 출산율 저하와 자녀 계획의 포기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제도는 현실의 변화 속도를 일반적으로 따라오기 어렵다. 그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해줘야 하는 말이 있다면 "부모들아. 너희는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너의 인생을 살아" 라는 이야기 아닐까. 당신이 책임져주지 않을 타인의 일상이라면 부모의 책임을 너무 과도하게 설정하고 그 기준만큼 하지 못하면 마치 제대로 못하는 것인 것처럼 타박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가능하다면 서로 도와주고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열심히 놀았던 일상을 공유하며 예쁜 신발들도 기록하고 싶었던 어떤 엄마의 페북 포스팅에 "애들 신발이 너무 더럽네요" 라는 댓글이 달리는 세상에서 감히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당신은 상상이 되는가? 대체 그런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타인을 평가하며 육아를 하거나, 할 예정인 것인가?


 나는 그저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고 공동체와 어울려 살 수 있는 좋은 인성을 가진 아이로 자라기만 바랄 뿐이다. 남들보다 조금 작으면 어떤가? 남들보다 조금 모르면 어떤가? 나는 그저 우리 아이가 공동체의 건강한 일원으로서 성장하기만 한다면 그 어떤 것도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세상의 기준에서 성적표를 정해놓고 우리 아이들을 결코 재단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기준과 비교하며 나의 아이를 타박하거나 아이가 싫어하는 것들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한글은 늦게 깨치더라도 잘못하면 거짓말하지 않고 그 잘못을 고치려고 하는 아이. 영어 스펠링 같은 것은 모르더라도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아이. 키는 조금 작거나 몸무게는 덜 나가더라도 놀이터나 키즈카페에서 신나게 뛰어놀 줄 아는 아이. 입시 공부는 싫어해도 다양한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할 줄 아는 아이. 인생에서 깨달아야 하는 도덕률에 의한 가치와 그 절대적 기준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소통하며 같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될 수 있도록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아빠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오로지 너희들의 상태만 판단하여 너희들에게 맞는 길들을 제시해줄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그것은 부모가 잘해서 이뤄진 결과라고 오만하게 행동하거나, 부모가 못해서 이뤄진 결과라고 자괴감에 빠지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기 위해 부족한 아빠부터 항상 먼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아이들이 살면서 참 많은 실수를 할 것이고, 아빠도 37살이나 돼서도 참 많은 실수를 여전히 반복하고 있지만... 그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올바른 성적표를 부여하고 내일은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겠다고 노력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너에게 결코 아빠는 성적표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나의 성적표가 아니다. 너는 그저 내 인생의 감동일 뿐이다" 


키는 작지만 무사히 발표를 마치고 스트레스 안 받고 재밌다고 하는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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